1947년. 삭막한 LA의 변두리에서 한 무명 여배우의 시체가 발견된다. 몸이 절반으로 나뉘어지고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채 발견된 그녀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청을 대표하는 스타 복싱선수인 벅키(조시 하트넷)와 리(아론 에크하트)는 악마가 저지른 듯한 ‘블랙 달리아’ 사건에 긴급히 투입되고, 전도유망한 두 젊은이는 부패한 경찰권력이 지나친 수많은 실마리들을 되짚으며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사건에 집착하던 리가 살해당하고, 리의 수사 파일을 몰래 조사하던 벅키는 여배우의 죽음과 리의 죽음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드 팔마는 아슬아슬하다. 무시무시한 걸작을 만들어냈다 싶으면 이듬해에는 대학생 졸업영화처럼 야심찬 범작을 만든다. 이건 거의 자연 법칙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탓에 팬들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드 팔마가 그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팜므파탈>로부터 6년 만에 만든 이 ‘제임스 엘로이 원작 영화’는 가슴 아프게도 후자에 속한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우주전쟁>의 각본가 조시 프리드먼의 종잡을 수 없는 각색이다. 시간과 공간에 맞춰 듬성듬성 잘라붙인 듯한 여러 개의 플롯은 도무지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지 않으며, 그 앞에서는 드 팔마의 황홀한 잔기술도 예전만한 재미가 없다. 아론 에크하트를 제외한 출연진들의 연기는 꽤 성마르다. 특히 조시 하트넷과 스칼렛 요한슨은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키아누 리브스와 위노나 라이더 커플을 연상시키는데, 종종 어른인 양 허세부리는 고등학생들의 연극 무대를 보는 것도 같다. 드 팔마의 충직한 팬들이라면 (아마도) 돌아올 걸작을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