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나 결혼이라는 척도는 여자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물론 현실에서야 어중간한 여자들이 더 많겠지만 적어도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자주 쓰이는 분류법이다. <어깨너머의 연인>식으로 말하자면, 속옷을 짝짝이로 입는 여자와 세트로 갖춰 입는 여자 혹은 결혼보다는 연애 타입의 여자와 결혼이 체질인 여자, 이런 분류가 가능하다. 바야흐로 요즘은 이렇게 다른 부류의 여자라 할지라도 섹스에 있어서만큼은 큰 시각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전신운동 되겠다.” “일주일에 세번만 하면 따로 운동할 필요가 없대.” 이건 타입이 다른 두 여자가 나란히 앉아 포르노를 보면서 나누는 대사다.
포토그래퍼 정완(이미연)은 자신이 일하는 스튜디오 사장 영후와 우연히 가까워지지만 그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나 ‘쿨’하고 싶은 정완의 생각과는 달리 그와 함께 나누는 일상은 제도와 관습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을 일깨워준다.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어.” 섹스하는 순간 영후가 내뱉는 숨가쁜 토로는 폐쇄된 호텔 방을 나서는 순간 차갑게 식고 만다. 스스로 결혼이 어울린다고 믿는 희수(이태란)는 촌스럽고 아저씨 같아서 자신만을 바라볼 것 같은 남자와 결혼했는데 어이없게도 남편이 겨우 22살인 여자아이와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된다. 희수는 외도 자체가 아니라 어린 여자아이가 남편에 대해 별 애착이 없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희수는 어린 여자아이조차 집착하지 않는 대상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자신이 견딜 수가 없다. 사실 정완과 희수는 쿨하고 싶을 뿐이지 쿨하지 않다. 그래서 둘은 서로의 위로가 필요하다.
상당히 절제된 화면과 감칠맛나는 대사가 군데군데 포진했지만 이 영화는 혼란스럽다. 아무리 희수가 예쁘다 해도 “남자들은 나빠. 날 행복하게 해줘야 하잖아”라고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의아하다. 할머니와 엄마와 정완, 이렇게 여인 삼대가 모여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여성영화, 좀더 부드럽게 표현하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에서 ‘모성’이라는 결론은 이제 아껴서 처방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모성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당면한 갈등이 ‘임신’과 같은 사건으로 일시에 날아갈 순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빛나는 부분은 메시지가 아니라 섹스의 흔적으로 카우치에 남은 한 방울의 와인 자국을 클로즈업하는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