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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의 배우들] 빛 속에 숨은 별들
최하나 2007-10-18

발견을 기다리는 미드의 배우 4인

미드가 점거한 광대한 영토만큼이나 그 대지를 밝히는 별들의 수는 적지 않다. 뜨거운 스타덤과 눈부신 스포트라이트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아직 많은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을 탐색해본다면, 그곳에서 독특하고 매력적인 얼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폭발적이라고 할 만한 인기의 방석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당신의 심장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한 마력을 잠재한 배우들. 미드의 성찬을 한층 풍부하게 음미하게 해주는 숨겨진 얼굴들을 찾아보았다.

완소 악당이란 바로 이런 것

<프리즌 브레이크>의 티백, 로버트 니퍼

살인자, 소아강간범, 인종차별주의자. 그는 반론의 여지없이 혐오스러운 인간의 전형이다. 그러나 가능한 독소들을 모두 배합한 듯한 그 화합물은 놀랍게도, 거부할 수 없이 매혹적인 악취를 내뿜는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티백’은 캐릭터의 악행을 향한 미움과 적의를 더욱 커다란 애정의 블랙홀로 빨아들이는 치명적인 악당이다. “바로 주인공에게 처치당해 사라질 악역을 연기할 생각은 없었다. 티백에게 감옥은 그의 성이며 왕국이다. 나는 그를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호주머니를 뒤집어 감방 연인의 손에 쥐어주는 뒤틀린 남자는 적어도, 마흔다섯의 배우 로버트 니퍼에겐 인생 최고의 영웅이었음에 틀림없다. 86년 <페퍼 체이스>와 <대츠 라이프>로 TV와 스크린 커리어를 시작한 지 20여년. <웨스트 윙>에서 <굿나잇 앤 굿럭>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작품들에 발을 담아왔지만 그의 역할은 대부분 과실을 얻기에는 너무나 작고 미약했다. 좀처럼 전환점을 맞이하지 못하는 미지근한 커리어에 지쳐가던 니퍼에게 <프리즌 브레이크>가 다가온 것은 얄궂게도 막 공원 경비로 전업을 결심하던 차였다. “출연이 확정된 뒤에 제작진이 바로 당신 캐릭터는 한번 나오고 죽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래도 돈은 똑같이 받을 테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시즌1을 찍는 내내 언제든지 죽을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제작진의 선택에 의해, 입술을 핥아내리는 교활한 웃음은 시즌3에도 계속되고 있다.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팬레터와 환호, 마침내 스크린에서 제대로 해볼 만한 역할을 안긴 <히트맨>까지. 생애 처음 짜릿한 희열이 찾아왔지만, 요동치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은 채 에미 시상식장 밖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눴다는 니퍼는 뒤늦은 성공의 급류에 혼을 빼앗기기엔 너무도 느긋하다. “더이상 연기를 못하는 때가 온다면? 아마도 난 환경운동을 할 거다.” 면도날 대신 꽃을 든 티백? 그의 인생은 예측불허의 탈출기를 뛰어넘는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녀들이여, 이런 남친을 꿈꾸는가

<원 트리 힐>의 루카스 스캇, 채드 마이클 머레이

헐렁한 후드 티셔츠에 낡은 운동화, 농구공을 튕기며 석양의 거리를 달려가는 소년. 그의 앞에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아버지와 증오로 가득 찬 배다른 동생이 있다. 삶의 난관에 쉬이 꺾이지 않을 만큼 강인하지만, 마음속 깊이 상처를 감춰두었음이 분명한 남자. <원 트리 힐>의 루카스, 채드 마이클 머레이는 소녀들의 로맨스 세포를 자극하는 달콤한 환영이다. 옅은 금발머리에 푸른 눈동자의 외모가 눈을 즐겁게 한다면, 슬픔의 안개를 두른 듯 아련한 향기는 심장을 뛰게 한다. 아이의 테를 벗지 않은 앳된 얼굴에 기묘하게 어린 애잔함. 그것은 어쩌면 드라마 속 루카스의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머레이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10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그때부터 난 바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신문배달, 수위, 접수원… 정말 안 해본 일이 없다.” 풋내 나는 반항 대신 팍팍한 현실로 채워졌던 유년기는 고향 버팔로의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가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LA로 무대를 옮겨 토미 힐피거, 구치 모델로 활동하던 중 TV시리즈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길모어 걸스> <도슨의 청춘일기>에 잇따라 출연하며 소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스물셋. <원 트리 힐>은 머레이를 아이돌의 떠들썩한 무대 중앙에 올려놓았다. <프리키 프라이데이>에서 린제이 로한의 짝사랑, <신데렐라 스토리>의 현대판 왕자님 등 스크린에서의 역할 역시 그 경계 안에서의 인기를 재생산했다. “잘 알고 있다. 멋진 남자친구 역할을 계속하는 건, 결과적으로 나를 망치는 일이 될 거라는걸.” 로버트 드 니로와 숀 펜을 역할 모델로 삼고,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 난 뒤 일주일 동안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머레이는 달콤한 인기가 아닌, 파릇한 열정의 포로다. “앞으로는 판타지보다 정말로 실제 삶에 가까운 작품들을 할 거다. 내 휴대폰을 끄고, 내 삶을 끄고, 캐릭터에 100% 빠져들 수 있는 작품.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성장하는 것.” 100%의 남자친구에서 100%의 배우로, 그런 여행이라면 사랑에 빠진 소녀 팬들도 기꺼이 작별 인사를 건넬 것이다.

컬트적 매력의 알파걸

<베로니카 마스>의 베로니카 마스, 크리스틴 벨

캠퍼스가 정글이라면, 소녀는 명민한 생존자다. 낙제에 대한 고민 대신 살인과 폭력이 그늘을 드리운 학교에서 그녀는 허를 찌르는 기지로 사건을 해결한다. 아버지뻘의 어른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시니컬한 유머를 구사하는 소녀 탐정의 기지는 중년 남성 탐정들의 텁텁한 테스토스테론이 안겨주지 못했던 상큼한 쾌감을 선사한다. <베로니카 마스>는 히트작의 반열에 든 적은 없지만, 신도에 가까운 열혈 팬을 거느린 컬트드라마로 명성을 얻었다. 히로인인 크리스틴 벨이 그 열기의 대다수를 흡수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13살 때 이미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금발의 예쁜 아역배우로 신문과 TV광고를 장식하기 시작한 벨은 일찌감치 평범한 소녀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대학교 3학년 때 <톰 소여의 모험>으로 브로드웨이 데뷔를 했고,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던 중 자연스레 카메라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버우드> <쉴드: XX강력반> 등 드라마에 게스트로 출연하고, TV영화를 거쳐 <스파르탄>으로 극장가를 찾은 벨의 행보는 그러나 기대만큼의 또렷한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왔기 때문에 별로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베로니카 마스>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이런 사랑을 받으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마니아 팬들의 숭배는 대중의 레이더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 몹쓸 놈의 드라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는 스티븐 킹의 공개적인 애정 선언도 저조한 시청률을 부활시키지 못했고, 결국 <베로니카 마스>는 시즌3 중반에 종영되는 불운을 맞이했다. 그러나 벨의 매력에 주목한 이들은 적지 않았다. 팬들의 눈물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히어로즈> <로스트> 제작진으로부터 동시에 출연 제의를 받았고, 행복한 고민은 결국 <히어로즈> 출연으로 매듭지어졌다. 최근 개봉한 영화 <펄스>는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팬 보이즈> <포게팅 사라 마셜> 두편의 영화가 스크린에서의 만회를 꿈꾸며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다. “정말 날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지하철을 애용하고, “컬트가 뭐가 나빠? 어차피 돈 벌려고 이 세계에 들어온 게 아니다”라 말하는 벨은 소녀 탐정 베로니카의 당찬 기질을 빼닮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지금 그녀의 가슴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말랑한 로맨스가 아닌, 시원한 코미디다. “여자배우가 코미디를 한다는 것은 굉장한 카리스마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난 토니 콜레트와 제니퍼 쿨리지를 존경한다.” 웃음의 뒷면, 또 다른 차원의 카리스마를 만끽하는 것은 아마도 영특한 소녀 탐정의 매력에 뒤지지 않는 즐거움일 것이다.

완벽한 남편에게 없는 딱 한가지

<고스트 앤 크라임>의 조 드부아, 제이크 웨버

매력적인 연인보다 매력적인 남편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렵다. 아니, 적어도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는 그것이 의심할 바 없는 진실이다. 한눈에 숨을 멎게 하는 외모는 드물지 않지만, 비루한 일상에 발맞출 단단하고 성실한 미덕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뿐더러 대부분 지루함의 늪에 빠져 있게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아내와 아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이해는 물론, 재치와 유머감각까지 두루 갖춘 <고스트 앤 크라임>의 조 드부아는 완벽한 남편을 위한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만장일치로 입성 티켓을 얻을 만한 남자다. 별안간 나타나 여성들의 가슴에 결혼의 판타지를 한껏 불어넣은 제이크 웨버는 사실 스크린 경력만 18년차의 ‘해묵은’ 배우다. <7월4일생> <펠리칸 브리프> <조 블랙의 사랑> <아미스타드> 등 커다란 이름들로 가득 찬 필모그래피와 미약한 인지도의 간극이 입증하듯 웨버는 오랫동안 배경에 무리없이 용해되는 조연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브라운관에서의 활동은 더욱 부진해, 그가 비중있게 출연한 드라마들은 하나같이 대참패를 기록했다. <조 블랙의 사랑>으로 인연을 맺은 프로듀서가 <고스트 앤 크라임>의 출연을 제안했을 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심령스릴러에서 결국 내 역할은 시작과 끝에 잠시 얼굴을 비쳐주는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살인사건 못지않게 가족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을 알았고, 흥미로운 드라마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2004년, 비평과 흥행에서 모두 흡족한 성과를 거둔 <새벽의 저주>를 기점으로 웨버의 커리어는 눈에 띄는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달라진 것은 잘 모르겠다. 내 배우 인생은 지금까지 줄곧 느리고, 꾸준하게 이어져왔다. 욕심 부리지 않고, 그 속도 그대로 오래 연기하고 싶다.” IMDb의 제이크 웨버 메시지 보드에는 “대체 할리우드는 이런 배우를 두고 뭘 하고 있는 거냐?”는 성토와 함께 “내가 발견한 남자”라며 은근한 자부심을 뽐내는 포스팅들이 뒤섞여 있다. 현재 웨버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바로 그 지점, 스타덤의 둘레 바깥에서 개척을 기다리는 비옥한 영토다. 불혹의 나이에 막 도약의 가능성을 엿본 그는 분명, 앞으로 더 많은 발견을 기다리고 있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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