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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의 배우들] 드라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스타들
안현진(LA 통신원) 2007-10-18

<어글리 베티>의 아메리카 페레라부터 <히어로즈>의 마시 오카까지, 미드가 키운 배우 7인

필생의 배역은,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행운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열풍 속에 ‘필생의 배역’을 만나 인기를 누리는 미드의 배우 7명을 소개한다. 드라마의 인기가 오롯이 배우에 기대 있다고 하기엔 비약이 있지만, 이들 없이는 드라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배우들이 누리는 지금의 명성 뒤에는 1%의 행운을 만나게 한 99%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미스 어글리: <어글리 베티> 아메리카 페레라

‘못생긴 베티’는 45분간의 분장으로 태어난다. 제작진이 스타일리시하다고 입을 모으는 아메리카 페레라가 가짜 눈썹과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파란 고무줄로 묶인 교정기를 물면, 사랑스러운 못난이 <어글리 베티>가 완성된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1400만 시청자를 사로잡음과 동시에 인터넷에 시청소감이 빗발치는 현상을 낳은 <어글리 베티>는 코미디지만 생생한 현실감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예쁜 얼굴에 주근깨 몇개를 그리는 것으로 못생겼다고 우기는 대신 진짜 ‘베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못난 외모 덕에 패션잡지의 편집장과 놀아날 염려가 없어 개인비서로 채용된 여자의 분투기는 성공적으로 시즌1을 마무리했고, 지난주 미국 현지에서 시즌2를 시작했다.

<어글리 베티>

<어글리 베티>의 제작자인 샐마 헤이엑이 직접 발굴한 다이아몬드 아메리카 페레라는 <청바지 돌려 입기> <진짜 여자는 굴곡이 있다> 등의 인디영화로 데뷔했다. 베티의 아름다운 내면이 외모에 가리지 않듯 숨길 수 없는 영민함과 열정을 가진 ‘진짜 여자’ 페레라는 “캐스팅을 위해 몸무게를 감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연예산업의 아찔한 기준을 조소한다. 또 “패리스 힐튼이나 니콜 리치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하다면 그건 대단한 거다”라고 당찬 면모를 보인다. 아메리카 페레라는 그가 맛본 성공을 라틴계 여배우의 도약으로 읽는 시선을 거부한다. “라틴계 여배우의 성공으로 읽히지 않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베티가 노력한 것처럼 나 역시 그래야 한다”며 굳은 심지를 내비친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많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비극”이라고 말하는 아메리카 페레라와 <어글리 베티>의 성취는 “양키가 수호해온 낙천주의와 근면, 성실, 온화한 마음 등의 덕목으로 성공을 이룬 드라마”라는 <타임>의 찬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어글리 베티>로 골든글로브 TV시리즈 코미디 부문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페레라의 소감을 빌리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깊은 곳에 자리한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의 드라마다.

성공의 증거: 영국의 한 보험사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페레라의 미소에 10만달러를 보장했다.

미세스 뷰티: <위기의 주부들> 에바 롱고리아

대중이 에바 롱고리아에게 원하는 이미지는 하나다. <맥심>이 2년 연속 가장 섹시한 여자로 그녀를 추앙하는 것도 그 요구에 충실한 결과다. 남성 잡지의 표지에 사슬만 걸치고 등장해 화제가 됐고, 드라마에서의 그녀는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요가 중이거나, 카탈로그에나 나올 법한 속옷 차림으로 상대를 유혹한다. 최근 시즌4를 출항한 <위기의 주부들>은 미국 중산층을 배경으로한 블랙코미디로, 권태롭고 무료한 삶에 아슬아슬한 외도를 시도하는 전직 모델 가브리엘 솔리스는, 롱고리아에게 찾아온 최고의 기회였다.

에바 롱고리아가 못생긴 아이였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가난한 부모가 해줄 수 없었던 성인식을 위해 ‘웬디스’로 나섰다는 것과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섯 군데에서 일해야 했다는 사실은 생경하다. <위기의 주부들>은 그녀의 서른에 찾아왔다. 잔치가 끝나는 나이에 축제를 시작한 롱고리아에게, 서른은 연기를 시작하며 그녀가 정한 성공의 시한이었다. “하지만 29살이 되도록 성공의 기미가 없어서 35살로 미뤘다.” 2007년 7월, NBA 스타 토니 파커와 결혼해 진짜 주부가 된 롱고리아는 가족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에서 가브리엘보다는 브리나 리네트에 가깝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언니를 위해 발달장애자를 돕는 재단을 운영하고, 라틴계 미국인의 인권수호에 앞장서는 것 역시 뿌리를 아끼는 마음에 근거한다. 그녀를 소비해온 이미지가 단일하다고는 하지만 ‘섹시한 라틴 디바’라는 족쇄를 채우기에 롱고리아의 신체는 재능이 많다. 비교적 단신임에도 슬랩스틱이 자연스러운 그녀는 미간의 움직임만으로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고 호소력 짙은 눈과 입술을 지녔다. <센티넬>의 정장 속 감춰진 육체를 안타까워했던 이들도 많겠지만, 능숙한 사격술로 키퍼 서덜런드와 마이클 더글러스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잠재성을 상기시킨다. 이제, 롱고리아 스스로 추녀로 변신하는 미녀 배우의 성공 공식 외에 새로운 루트를 발견해야 한다.

성공의 증거: 연예전문지 <OK!>는 롱고리아의 결혼식 사진에 200만달러를 지불했다.

닥터 댄디: <그레이 아나토미> 패트릭 뎀지

때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법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시작이 <24>의 ‘땜빵’이었던 것처럼 시즌 휴지기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그레이 아나토미>의 운명도 그와 같았다. 종합병원 ‘시애틀 그레이스’에서 외과의를 꿈꾸는 인턴들의 이야기 <그레이 아나토미>는 첫 시즌 1850만명의 시청자를 모았고, 9월27일 시작한 시즌4의 첫회는 2100만명을 불러들여 주요 시청자그룹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패트릭 뎀지가 연기하는 외과의 데릭 셰퍼드는 부정한 아내에 대한 상처로 원 나이트 스탠드에 나선 첫회에 이미 TV 앞 여성들의 마음에 들어섰다. 극중 그의 별명인 ‘맥드리미’ 역시 꿈속에나 있는 남자라는 의미다.

깊고 푸른 눈매가 말해주듯 내성적인 성격의 패트릭 뎀지가 배우가 된 것은, 재미로 시작한 외발자전거 묘기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며 느낀 희열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독증을 겪은 그에게 연기는 도전이었다. “도전이 필요했다. 연기는 죽음과 대면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라앉거나 발버둥치거나 둘 중 하나다.” <러버보이> <캔트 바이 미 어 러브>로 틴코미디를 점령했던 20대의 뎀지는 코미디와 로맨스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젊은 배우였지만, 27살 연상과의 실패한 첫 결혼처럼 달짝지근하지만 강단없는 연하남의 역할이 반복됐다. 이미지가 굳어질 것을 우려한 그는 TV로 무대를 옮겨 성숙한 역할에 도전했지만, 출연한 파일럿이 본방송으로 이어지는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되는 일이 너무 없어서 영화조차 보기 싫었다”는 그의 90년대는 일견 암흑기로 보이지만, 역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채워진 필모그래피는 그가 영화를 쉽게 떠날 수 없었음을 대변한다. 2002년 <스위트 알라바마>에서 리즈 위더스푼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금 스크린에서의 지평을 넓힌 뎀지는 <프리덤 라이터스>에서 힐러리 스왱크의 자상한 남편을 연기했고, 최근에는 디즈니의 <인챈티드>에 출연했다. 차기작은 <메이드 오브 어너>로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남자가 그의 역할이다.

성공의 증거: 돈이 성공의 척도는 아니지만, 2006년 패트릭 뎀지의 출연료는 회당 20만달러로 뛰어올랐다.

닥터 압카: <하우스> 휴 로리

<하우스>

<하우스>는 의학 드라마지만 수사극의 모양새를 지녔다. 경찰서를 병원으로, 형사를 의사로 대체하면 현장 조사와 증거 수집 과정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심지어 용의자의 혐의를 지워나가는 소거법마저도 똑같다. 알려진 대로 <하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의 모델은 명탐정 셜록 홈스로, 하우스의 아파트 호수는 221B이며, 악기에 능하고 약물에 중독된 것 또한 동일하다. 뛰어난 진단학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하우스는 오히려 심술궂은 어린아이로 생각해야 이해가 갈 정도지만, “내가 틀리면 환자는 죽는다”는 프로정신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그를 살짝 존경하게까지 만든다.

“완벽한 미국식 발음” 때문에 제작자 브라이언 싱어가 미국인이라고 착각한 영국 배우 휴 로리는 시대착오적으로 말하면 ‘현대의 귀족’이다. 의학박사이며 조정 경기 메달리스트인 아버지를 둔 그는 명문 예비학교를 나와 케임브리지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가입한 공연 클럽 ‘각광’(Footlights)은 그의 배우 인생에 밑천이 됐는데, <블랙애더> 시리즈와 <어 빗 오브 프라이 앤드 로리> 등을 함께한 스티븐 프라이도 이 시절 만난 친구다. 빼곡한 필모그래피에서 <센스, 센서빌리티> <스튜어트 리틀> 정도가 알려진 영화의 전부일 로리는 영국에서 소설가로도 유명한데 처녀작 <건 셀러>는 ‘제임스 칼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차기작 <페이퍼 솔저>는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연기를 모니터하지 않는 배우 중 하나로, 에피소드를 본 적은 없지만 “악인인지 선인인지 규정되지 않는 모호함”을 <하우스>의 매력으로 꼽는다. 촬영 때문에 미국에 머무는 이 영국 배우는 “LA는 날씨도 사람들도 햇살뿐이다. 잔인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들의 런던이 그립다”며 특유의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장면별로 하우스가 몇알의 진통제를 복용한 상태인지까지 면밀히 분석하는 완벽주의자이며, 동료 배우들에게 암기력과 체력을 시샘받는 타고난 배우는 <하우스>의 인기가 지속되는 한 미국을 떠날 수 없을 듯하다.

성공의 증거: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휴 로리의 출연료는 회당 30만달러다.

부패한 형사: <쉴드: XX강력반> 마이클 치클리스

<쉴드: XX강력반>

귀청을 때리는 강렬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쉴드: XX강력반>의 첫 에피소드는 드라마 파일럿 사상 최대의 반전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파일럿으로 순조롭게 출발한 <쉴드: XX강력반>는 회당 400만이라는 케이블 채널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드문 케이스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타락한 거리는 햇볕이 있을 뿐 ‘신시티’나 ‘고담’과 거울을 보듯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의를 구현해야 할 영웅과 악당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중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구도를 보이는 마초 형사 빅 매키와 아세베다 국장조차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적군과 아군의 경계가 희미한 살벌한 생태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세상엔 두 가지 경찰이 있다.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쉴드: XX강력반>는 ‘더 나쁜’ 경찰들의 이야기다.

존 벨루시의 전기영화 <와이어드>(Wired)에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마이클 치클리스는 TV시리즈 <커미시>에서 풍채만큼이나 사람 좋은 경찰관으로 5년간 브라운관을 찾았다. 그래서 그가 20kg을 감량하고 <쉴드: XX강력반>의 기동대장 빅 매키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도 높은 운동과 삭발로 인상을 바꾸는 데 성공한 그의 메소드 연기 탓에 사람들은 종종 빅 매키와 동일시하지만 그 둘의 공통점은 아이들에게 자상하다는 것뿐이다. 코믹스 <판타스틱4>의 열렬한 팬으로 18살부터 괴력의 ‘씽’ 역할을 소망해왔다는 치클리스는 실제로 영화에서 씽을 연기했다. 꿈의 배역에 캐스팅 된 행운의 배우는 추하게 변한 외모를 표현하기 위해 CG 대신 특수분장을 선택했는데, 체중을 감량할 때보다 더 오래 러닝머신 위를 뛰었고, 특수분장 중에는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 생체주기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치클리스는 추한 육체에 속박된 캐릭터의 정신적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대신 그를 동정할 만한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나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입체감을 갖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라고 말하는 장인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증거: 꿈의 배역 <판타스틱4>의 ‘씽’은 <쉴드: XX강력반>의 성공없이는 불가능했다.

순결한 살인마: <덱스터> 마이클 C. 홀

“연쇄살인은 모두 나쁘기만 한 걸까?”라는 질문에서 태어난 제프 린제이의 소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는 소설 그 자체로도 성공했지만 드라마로 만들어져 더 많은 팬을 얻었다. 덱스터는 법의 심판은 피했지만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만 골라서 살해하는 ‘기준’있는 연쇄살인범으로, 경찰이 발견하지 못한 세상의 얼룩을 청소하는 그의 직업은 아이러니하지만 혈흔전문가다. 덱스터는 어린 시절 겪은 정신적 충격으로 평범한 감정 대신 살인충동을 얻었다. 양부 해리는 이상한 조짐을 미리 읽어냈지만 정신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범죄자를 알아보는 법, 처리하는 법, 흔적을 없애는 법을 가르쳤고,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 덱스터가 탄생했다.

<덱스터>

“솜씨 좋은 괴물” 덱스터를 연기하는 마이클 C. 홀은 TV데뷔작인 <식스 핏 언더> 이전에 뮤지컬과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 500편에 출연한 우수한 배우였다. <식스 핏 언더>에서 까다롭지만 책임감있는 장의사 데이비드 피셔를 5년간 연기한 까닭에 “세포까지 데이비드를 닮아”가던 홀은 마지막 시즌 촬영 중 <덱스터>를 만났고, 소원하던 무대로의 복귀를 미루고 브라운관에 남았다. 섬세한 데이비드의 내면까지 연기한 탓일까, 사람들은 호모포비아에 시달리는 옷장 속 게이와 그를 혼동하고 커밍아웃을 격려하기도 했는데, <덱스터>로 키퍼 서덜런드, 휴 로리 등과 골든글로브 TV시리즈 정극부문 남자연기자상 후보에 올라 한번 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덱스터>의 시즌2는 시즌1 중반에 제작이 결정됐는데, 에피소드 두편을 선방영했고 9월30일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소설의 속편이 희생자를 난도질해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흉악한 범죄자를 다루는 것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안전망’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난 새 시즌에 대해 “지난해 우리는 캐릭터와 드라마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때와 비교하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쉴드>의 빅 매키, <소프라노스>의 토니 소프라노를 뛰어넘는 어두운 내면의 안티히어로가 또 한번 시청자를 매혹시킬지 기대된다.

성공의 증거: 마이클 C. 홀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거나, 브로드웨이로 돌아가면 확인할 수 있을 듯.

Asian Face: <히어로즈> 마시 오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려한 외모에 옷걸이 좋은 다른 출연자들을 제치고 ‘히로’가 <히어로즈>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뽑힌 것에는. 평범해 보이는 초능력자들을 다루는 <히어로즈>는 흡사 만화책을 넘기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스토리는 물론이요, 마벨이나 DC코믹스의 만화책에 쓰일 법한 폰트로 이뤄진 크레딧과 각 에피소드를 챕터로 표현한 스타일도 이런 의혹을 제대로 겨냥한 고도의 전략이다. <히어로즈>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비범함을 저주로 받아들이거나 숨기려고 노력할 때, 주어진 능력을 운명과 임무로 받아들이는 만화 같은 캐릭터가 있으니 마시 오카가 연기하는 히로다.

<히어로즈>

도쿄에서 태어나 6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계 미국인 배우 마시 오카의 본명은 마사요리 오카로, 10살 때 ‘미국의 아시아 영재들’이라는 <타임>의 커버스토리로 사진이 실린 적이 있는 그는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IQ 180의 천재다. 조지 루카스의 ILM에서 CGI 아티스트로 근무하며 <퍼펙트 스톰>을 위해 만든 파도 생성 프로그램은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의 그래픽에도 사용됐다. 그런 까닭에 그의 필모그래피는 배우와 CGI 아티스트의 두 가지로 나뉜다. 2000년, 연기자가 되기 위해 LA지사로 옮긴 오카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을 거쳐 <히어로즈>의 오디션에 응했다. 영어와 일본어가 능숙한 오타쿠라니, 제작진이 찾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도쿄의 사무실에서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로 텔레포트한 그가 외친 첫마디 “야따!”(해냈다)는 이미 유행어가 됐고, 길에서 그와 마주친 소년이 “야따맨”이라며 환호한 것도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얼굴이 떨릴 정도로 두눈을 질끈 감는 텔레포트 장면을 연기할 때 “화장실 갈 때”를 생각한다는 재치만점의 배우는 코미디영화의 감독을 꿈꾼다. 아시아 배우의 미국 진출은 새로운 일이 아니고 김윤진, 샌드라 오 등 바람직한 표본도 생겼지만, 그 수요는 아직 부족하다며 채플린처럼 웃음으로 문화적 장벽을 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는 마시 오카가 아시아 배우들의 히어로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성공의 증거: 안티가 판을 치는 인터넷에서도 마시 오카는 “주머니에 넣고 싶은 애완동물(?)”로 사랑받는다.

드라마 한 편으로 이만큼 떴답니다

미드 명예의 전당에 오를 두 배우, <프렌즈> 제니퍼 애니스톤과 <섹스 & 시티> 사라 제시카 파커

드라마 하나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를 꼽으라면 단번에 제니퍼 애니스톤과 사라 제시카 파커가 떠오른다. 두 배우가 새로운 역할에 도전한다 한들 제니퍼 애니스톤은 언제까지나 <프렌즈>의 대책없지만 사랑스러운 레이첼 그린일 테고, 사라 제시카 파커도 <섹스 & 시티>의 섹스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역할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물로 거듭남이 요구되는 배우들에게 가혹한 말일지 몰라도, 그 역할 덕분에 지금의 그들이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까. 제니퍼 애니스톤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지 <프렌즈> 이후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있으며(코트니 콕스의 새 시리즈 <더트>에 우정출연한 적은 있다), 사라 제시카 파커 역시 “더이상의 드라마 출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후광으로 셀러브리티 대열에 오른 두 사람이 그 뒤 어떤 길을 갔는가 하면, 애니스톤은 영화로, 파커는 제작자와 사업가로 항로를 변경했다. 2002년 출연한 저예산 독립영화 <굿 걸>의 호평을 시작으로, 짐 캐리의 여자친구로 출연한 <브루스 올마이티>는 2억430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벤 스틸러와 함께한 <폴리와 함께> 역시 1위로 개봉했으며, 그녀의 유명세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도록 도와준 브래드 피트와 이별 뒤 연인관계로 발전했던 빈스 본과 출연한 <브레이크 업: 이별후애(愛)>도 2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는 등 애니스톤의 필모그래피는 제법 알차 보이지만, 씁쓸하게도 상대 배우 없이 제니퍼 애니스톤 이름 하나만으로 얻을 수 없는 성과였다는 것이 자명하다. 사라 제시카 파커 역시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 <달콤한 백수와 사랑만들기> 등의 로맨틱코미디로 영화에 출연하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는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가니에르’, ‘갭’ 등의 모델로 활동하며 캐리의 이미지를 대량생산했고, 그녀의 이름을 건 패션라인과 향수를 런칭하는 등 패셔니스타로서의 명성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타협안을 찾았다. 아무렴 어떨까, 그 둘은 레이첼 그린이고 캐리 브래드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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