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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되기의 어려움 <비커밍 제인>
정재혁 2007-10-10

제인 오스틴 되기의 어려움, 사랑도 돈도 아닌 펜을 택한 여자의 이야기.

<오만과 편견> <센스, 센서빌리티> <설득> 등. 제인 오스틴의 여자들은 항상 돈과 사랑을 두고 겨룬다. 극성인 어머니와 예의와 이성에 따라 행동하려는 딸의 구도로 벌어지는 싸움이지만 이는 그 시대 여성들이 고민해야 하는 상반된 두 가지 요소를 반영한다. 가부장 중심적인 사회에서 좋은 가문과 결혼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어갈지, 자신의 감정과 사랑을 존중해 결혼의 상대자를 고를지. 간혹 ‘그래봤자 시집 잘 가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하지만 이는 동시에 제인 오스틴의 여자들이기에 제기할 수 있는 문제다. 현실을 고민한다는 건 현실을 불편하게 느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결혼할 나이가 됐지만 남자보다 글쓰기에 관심이 더 많은 여자 제인 오스틴(앤 해서웨이)은 런던에서 온 법학도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와 사랑에 빠진다. 처음엔 자신의 글을 비판했던 리프로이에게 반감이 컸지만 그가 건넨 H. 필딩의 소설 <톰 존스>는 새로운 자극이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남자 리프로이가 오스틴 집안의 적합한 신랑감은 아니다. 제인 오스틴은 그녀의 소설 속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돈과 사랑 앞에서 고민에 빠진다.

그동안 수차례 영화화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작품과 달리 제인 오스틴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비커밍 제인>은 여로모로 그의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연애 고민을 주고받는 여자 형제나 지역 유지의 저택과 맺어지길 바라는 어머니의 캐릭터, 다소 무개성적인 아버지와 말괄량이 동생 혹은 여자의 등장까지. 영화는 소설로 접하던 인물들의 원형을 보여주듯 작가와 주변인물들을 배치하고 그 안에서 소설의 세계에 적합한 주제를 끌어낸다. 젊은 법학도 톰 리프로이는 미스터 다아시(<오만과 편견>)와 유사한 인물이고, 리프로이와 함께 집을 떠나는 제인(앤 해서웨이)의 에피소드는 군인 위컴과 함께 도망가 결혼했던 <오만과 편견>의 리디아와 겹친다. 영화는 소설을 통해 형성된 제인 오스틴의 세계를 작가의 이야기를 가져와 재구성하며 실제에 가까운 픽션, 원형에 대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수십여편의 영화와 TV시리즈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제인 오스틴의 세계를 이렇게 접하는 일은 꽤 흥미롭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내용에서 많이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선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비커밍 제인>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제인 오스틴의 단어들이다. 언니의 결혼을 축하하는 십여장의 축사에서, 혼자 긁적거리던 소설의 초고 속에서, 리프로이에게 상처받은 감정을 반박하는 대사 속에서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단어로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많은 것들이 조금씩 예의에서 벗어났다(Politeness), “분별있는 여자라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열정을 쏟지는 않는다(No sensible)” 등. 영화는 그녀가 펜으로 사는 삶을 택한 이유를 그녀의 단어를 통해 설명하는 촘촘함도 빼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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