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9일부터 23일까지 베를린에선 아시아여성영화제가 열렸다.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주최한 이 행사는 황해도 축원굿에 이어 대만 감독 제로 추의 <스파이더 릴리>로 막을 열었다.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다머광장에 위치한 아르제날영화관에서 진행된 이번 영화제에서는 현대사회, 여성, 이주, 노동, 세계화를 주제로 한 아시아 8개국의 영화 30여편이 상영됐다. 특히 서울여성영화제에 출품되었던 단편, 다큐멘터리영화들이 선별되어 소개됐다. 또한 <자유부인> 등 한국 근대화 속의 여성상을 보여주는 50, 60대 한국 고전영화 다섯편도 독일에선 처음으로 선보였다. 60, 70년대 독일에 온 간호사, 유학생 출신 여성들이 주축을 이루는 재독한국여성모임은 “이 영화제를 통해 지금까지 아시아 여성에 대한 유럽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현재의 다층적이고 모순적인 아시아 여성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베를린 유학 당시 재독여성모임에서 활동했던 이혜경 서울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베를린에서 아시아영화제를 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영화제 개최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이 위원장은 “세계화 시대에 국가와 민족을 넘어선 자본의 이동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문화적 이해, 소통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유럽에선 오히려 70, 80년대에 비해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줄어들어서 안타깝다”며 “이번 영화제로 문화소통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쇼킹패밀리>의 경순 감독, <노가다>의 김미례 감독이 이번 영화제를 위해 베를린을 방문해 영화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를 나눴다. 경순 감독 자신을 포함한 20, 30, 40대 스탭들의 가족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 ‘정상적 가족’이라는 통념에 도전하는 <쇼킹패밀리>는 긍정적이고 폭발적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경순 감독은 “정보의 교류차원을 넘어서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식을 독일인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이번 영화제를 평가했다.
김미례 감독의 <노가다>는 노가다로 통칭되는 일본과 한국의 건설노동자들의 삶과 모순적 건설 산업구조를 카메라를 통해 고발한다. 그는 “노동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남성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여성들이 소수자 약자의 입장을 경험했으므로 가장 소외된 자의 시선이 가장 진보적이고 대안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또 “여성가족부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안주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음을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