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이냐, 다중인격이냐. 순진한 그녀와 엽기적인 그녀를 오가는 영화 <두 얼굴의 여친>은 캐릭터의 변형과 상황의 역전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코미디다. 화가 나면 뽁뽁이를 터뜨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여자 아니(정려원)는 어느 순간 돌연 발차기와 욕설을 일삼는 하니(정려원)가 되고, 아니에게 반했던 남자 구창(봉태규)의 구걸하던 사랑은 하니의 무지막지함에 산산조각이 난다. 영화는 종잡을 수 없는 여자 아니/하니와 어수룩한 남자 구창의 이야기를 로맨스와 코미디를 섞어 보여준다.
대학 7학년이 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남자 구창은 그야말로 궁상맞다. 조카의 학원비를 탐내고, 남들이 먹다 남긴 과자를 훔쳐 먹으며, 주운 돈으로 점심을 떼운다. 유일하게 선배 노릇을 하고 있는 동아리 해양소년단엔 신입생 한명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주운 돈으로 사먹은 점심이 인연이 돼 아니와 만난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아니는 구창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3학년생이다. 실연의 충격으로 가끔은 엽기적인 하니로 변신하지만 청순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니의 첫인상에 구창은 마음을 빼앗긴다.
<방과후 옥상>의 이석훈 감독이 연출한 <두 얼굴의 여친>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상황을 과장하는 판타지가 코믹하게 삽입되어 있다. 키스 한번 해보지 못한 구창의 가슴에 말 그대로 진짜 화살이 박히고, 하니로 돌변한 아니의 발차기는 360도 슬로 회전으로 반복되어 재생된다. ‘두 얼굴’을 가진 여자와 극단적인 캐릭터를 주요 설정으로 가진 탓에 이런 요소들은 (노골적인 성적 농담과 바이킹 오바이트 장면을 제외하면)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가 두 얼굴의 원인을 다중인격으로 설명하면서 드러난다. 발랄하게 튀던 극의 리듬이 로맨스와 아니/하니의 사연 이후 지나치게 늘어지고, 이야기 중간중간 늘어놓았던 엽기적인 에피소드가 코미디가 로맨스로 수렴되는 걸 방해한다. 다중인격의 의미나 정려원이 왜 하니와 아니라는 두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 혹은 그녀의 진심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드라마와 코미디를 조율하는 톤이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단 사랑을 배워가는 구창의 모습은 신선하다. 자신이 사랑한 아니가 다중인격이어도 상관없다고 울부짖는 그의 목소리는 사랑이 기억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더이상 나아가진 않지만 구창이란 캐릭터를 구원해주는 대목이다. 봉태규의 로맨스 연기, 정려원의 애교스럽거나 엽기적인 캐릭터 연기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