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들을 태울 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각자의 사연을 남겨둔 채 그들이 군용열차에 올라타 훈련소로 향한다. 지금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으로 간다. <제9중대>는 구소련이 일으킨 아프가니스탄전쟁 당시인 1988년과 89년 사이를 배경으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각자의 꿈이 꺾인 뒤 병사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전쟁과 평화>로 유명한 러시아 감독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아들인 표도르 본다르추크가 연출했으며 감독은 영화에 교관 포그레브야크로 출연한다. 실제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을 뼈대로 구성했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이제 막 결혼한 신랑, 화가 지망생, 교생 등으로 다른 과거를 갖고 있지만 같은 목적의 병사로 키워져 전장에 나간다. 영화는 그들의 모습을 그리는 과정에서 다소 모호하다. 우선 이 영화는 그들의 전우애에 많은 걸 할애한다. 그러나 139분짜리 전우애를 본다는 게 그리 흥겨운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미약하게나마 깔린 전쟁과 폭력의 세계에 대한 허무함, 전쟁이 인간 개개인에 미치는 광기의 상태를 감지하게 한다는 데 장점이 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 전쟁은 슬퍼하는 이상한 태도.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말이 흐른다. “우리 9중대는 작전을 완수했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지키려던 조국이 사라지고 훈장도 무용지물이 되리란 걸…. 제대 뒤 우리 생활도 참혹했다. 이겨낸 이도 있지만 도태된 이도 있다. 그때는 몰랐다. 까맣게 몰랐다. 대규모 철수작전 중에 우릴 잊었단 것도. 아프가니스탄을 떠났다. 9중대의 우리는 승리했다.” <제9중대>는 승리했으나 패배한 자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