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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중대

9-ya rota The 9th Company

2005 러시아,우크라이나 15세이상관람가

드라마, 액션, 전쟁 상영시간 : 139분

개봉일 : 2007-09-13 누적관객 : 276명

감독 : 표도르 본다르추크

출연 : 알렉세이 차도프(바라비) 아서 스몰랴니노프(류타예프) more

  • 씨네217.00
  • 네티즌7.50

세상에 맞선 마지막 전투

빛나는 젊음, 사랑, 꿈을 가슴에 묻고 한곳에 모이다!

1988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9년째, 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대결의 접점으로 젊은 청년들이 또 한 번 징집되었다. 화가를 꿈꾸는 예술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교생실습생, 결혼식을 치른 지 하루 만에 소집되어 온 새 신랑, 어린 딸을 둔 젊은 가장. 그들은 사랑하는 연인, 가족과 이별하고 비가 내리는 어느 겨울 밤 훈련소로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지옥 같은 3개월의 훈련이 시작되고, 젊은 병사들은 하루하루 치열한 삶의 모든 순간들, 희망의 한 자락까지도 함께 나눈다.

마지막 전투에 우리를 던졌다!

D-Day, 아프가니스탄의 땅을 밟은 그날, 임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후송되기 위해 수송기에 오르는 선임 병사들과 마주친 제9중대. 하지만 이들은 선임병들이 탄 수송기가 이륙한 지 5분도 안되어 폭격 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전쟁터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숨긴 채, 게릴라 무자헤딘과 맞서기 위해 자르단 3234 고지에 오른 그들은 최고의 전투를 맞이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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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1명참여)

  • 7
    황진미스펙터클과 반전의식이 살아있는 수작. 전쟁은 ‘삽질’이다!
제작 노트
About Movie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블랙 호크 다운>을 잇는
이 시대 최고의 전쟁영화!


전쟁 반대를 표방하는 것도, 군국주의를 외치는 것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전쟁을 실질적으로 그려낸 영화 <제9중대>. 마지막 총격까지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병사들에 관한 이야기 <제9중대>는 인생의 농익은 즐거움과 성숙의 단계를 맛보지 못한 채, 아프가니스탄의 산 중턱에서 죽어가는 젊은이들이 함께 했던 전장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 꿈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는 이들이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뒹굴어야 하는 이유가 국가의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마지막에 폭로하고 있다. 희생을 강요 받은 작은 개인들의 비운을 씁쓸히 낭독하고 있는 <제9중대>는 정치적 입장 표명과는 거리를 둔 채 ‘진실’ 그 자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는 극단의 상황, 그곳에서 꽃피운 감동적 우정의 이야기 <제9중대>는 드디어 2007년 한국에 상륙, 우리에게 진실한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제9중대>는 ‘러시아의 <지옥의 묵시록> 내지는 <플래툰>’으로 평가되며 비평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게도 강력한 지지를 받아왔다. 전쟁을 통해 변화되어가는 인간의 내면과 갈기갈기 찢어진 영혼들의 참혹한 모습을 치밀하게 폭로한 <지옥의 묵시록>처럼 인간 내면의 조명을 담고 있는 <제9중대>에는 살인에 무뎌지는 과정, 인간 고유의 가치를 잊어가는 무서운 광경이 섬세하게 그러나 심오하거나 무겁지 않은 톤으로 플롯과 화면에 스며들어있다. ‘중대’를 제목에 명시한 <제9중대>와 같이 ‘소대’를 제목에 명시한 <플래툰>은 특정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 라인과 명확하게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한다는 면에서 <제9중대>와 차이를 보이지만, 리얼한 전쟁 씬 묘사로 두 영화는 확연히 닮아 있다. 훈련소와 전쟁터라는 확실하게 장소로 구분되는 이야기 구성을 가지고 있는 <제9중대>처럼 <밴드 오브 브라더스> 또한 훈련소에서부터 전장까지 부대원들이 겪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특정 주인공 없이 전우들의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행크스 공동 제작, 2001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 시리즈는 병사들의 캐릭터가 잘 묘사되어 있으며 그들의 전우애를 포착하고 있다. 전우애를 강조한 것은 <블랙 호크 다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제9중대>를 빛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전쟁터에서 꽃피는 우정이다. 영웅의 등장 없이 특정 임무수행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 두 영화는 동료의 목숨을 구하려고 끝까지 안타까운 사투를 벌이는 병사들의 모습에서 똑같이 닮아 있고, 함께 했던 그 날들을 잊지 못하는 생존자 류타예프는 사실상의 패배조차 ‘우리들만의 승리’로 바꾸어 놓으며 죽은 전우들과 함께 승리를 나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리얼한 감동의 재현!

영화 <제9중대>는 당시 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발레리 대령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거의 불가능한 임무를 명령하고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파견했었다는 대령의 진술은 지옥 같은 훈련소 생활과 전쟁터의 처참한 광경으로 생생하게 재현되었다. 1980년대 말 소련군의 군복, 아프가니스탄 주민과 무자헤딘의 의상까지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양상과 소련군의 병영문화와 훈련모습까지 만나볼 수 있어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처참한 곳에서 꽃피었던 우정 그리고 삶에 대한 유머, 치가 떨리는 두려움, 비행기 폭파와 총격전의 리얼한 묘사까지 생생한 당시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으로의 파견이 가벼운 원정 탐험 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에 필요보다 많은 인원이 지원했고,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훈련을 통해 노련한 군인으로 거듭났다. 이들 가운데 9중대는 수송 부대가 안전할 수 있도록 방어하는 임무를 주로 맡았었다. 전쟁 막바지 후퇴하는 호송대를 방어하기 위해 끝까지 맞서 싸웠던 자르단 고지 3234에서의 마지막 전투는 죽음 앞에서 조차 함께하고 싶어했던 이들의 우정과 더이상 함께일 수 없었던 비극을 보여준다. 라디오 통신은 끊겼고, 그들은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들을 수 없었다. 제9중대에서 혼자 살아남은 마지막 병사의 절규 어린 외침은 아프가니스탄의 산 전체에 공명으로 남았다. 이제 세계가 그 절규를 들을 차례이다.

처절한 삶의 끝, 우리는 함께였다

비가 내리는 어느 밤 징집된 젊은이들이 기차역에 모인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바라비, 물감과 팔레트를 챙겨 들고 온 지오콘다, 손 잡은 부녀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어린 딸에게서 건네 받는 스타쉬. 어둡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 계속해서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는 목소리가 기차역을 가득 메운다. 기차에 몸을 실은 이들은 훈련소로 이동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한 올 남김 없이 머리를 밀고, 강한 성격의 류타예프를 중심으로 바라비, 지오콘다, 스타쉬, 추가이노프 등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전쟁터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이 교차되는 가운데 각자 자신들이 처한 다양한 처지와 개성들을 이야기하며 급기야는 ‘함께’ 이 시기를 헤쳐나가기로 마음 먹는다. 아프가니스탄으로의 징집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선택권이 주어지던 날, 가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던 바라비 조차 마음을 돌이키면서 진정으로 함께하는 여정이 시작된다.

지극한 현실주의자지만 동료 전우들을 리드하며 챙기는 유일한 생존자 류타예프, 연약하고 세상물정 모르지만 동료들의 사랑을 받는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바라비, 그러나 자르단 고지에서의 전투 중 부상을 입어 더이상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프로이드와 미켈란젤로를 들먹이며 없어야 할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기 때문에 전쟁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지론을 펼치는 이상주의자 지오콘다, ‘백설공주’로 불렸던 소녀를 아름답다고 칭송하며 ‘바다의 여신’, ‘성스러운 창녀’의 이름을 붙인 것도 바로 그다. 어린 딸과 가족을 그리워하던 스타쉬는 아프가니스탄의 작은 마을을 탐험하러 간 날 겨우 10살이 되었을 법한 어린 소년의 총에 난사 당한다. 다양하고 강한 개성들로 ‘하나’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은 어느새, 죽음까지도 함께 하는 특별한 우정으로 뭉치고, 그들의 전우애는 차가운 전쟁터마저도 따뜻하게 데운다.

아름다운 우정과 죽음의 허무함이 교차되는 전쟁터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 하는 <제9중대>는 삶의 끝, 절박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곳에서 함께였던 전사들의 우정 때문에 더욱 빛난다. 거대한 국가의 목적을 위해 희생당하는 작은 개인들, 전우의 죽음을 옆에서 봐야 했던 살아남은 자의 절규, 젊고 아름다운 청년들이기에 더욱 가슴저린 전쟁의 현실이 뭉클한 공감과 함께 마음에 박힌다.


PRODUCTION NOTE

<제9중대>는 총 제작비 9백만 달러(한화 약 83억원), 비행기 폭파 씬에만 45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17일에 걸쳐 촬영되었다. 2004년 5월 25일부터 10월 12일까지 모스크바와 크림반도에서 111일간 촬영했으며, 18개의 로케이션지에서 총 150일 동안 촬영을 진행했다. 엑스트라까지 대략 2천 명의 스태프 동원, 거대한 스케일로 진행되었고, 아프가니스탄 마을 주민들의 의상은 전통 아프간 의상을 그대로 사용했다. 우크라이나 해군과 공군 모든 부대로부터 1,500명이 동원되었고, 크림반도에서 현지 촬영을 감행했다. 탱크 30-T-64-B부터 헬리콥터 10 MI-24와 10 MI-8 그리고 전투용 비행기 22 AN과 MIG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술장비가 사용됐다. 전체적으로 건조한 사막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장비들과 훈련소 세트를 데저트 카키 색으로 페인트칠 했고, 거의 1천 킬로그램의 페인트가 들었다.

헬리콥터 씬

베케토보에서의 촬영된 이 장면은 장소가 가진 문제들로 인해 속을 썩였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포로스에서 헬리콥터가 날아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러시아 그리고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공식 외무회담이 열리고 있던 터라 헬리콥터 장면 촬영에 제한이 가해졌다. 빨간색 소련 국기가 박혀있어 눈에 띄는 헬리콥터들이 회의가 열리는 대통령 궁 위를 낮게 날아다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이미 떠난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영화 촬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결국 헬리콥터 씬 촬영 다음날, 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은 경고를 받았지만 허가서가 발휘되어 무사히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헬리콥터 충돌 사고

헬리콥터 MI-24 두 대가 산 위에서 선회하는 씬을 촬영하는 현장에서 마주 오던 행글라이더와 충돌했다. 감독은 비행 촬영에 동원됐던 모든 승무원들을 보내어 행글라이더가 추락한 지점을 재차 확인케 했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마을 폭파 씬
가장 촬영하기 어려웠던 씬. 얄타필름 스튜디오의 전문가들이 4개월에 걸쳐 만든 아프간 마을 세트는 실제 느낌과 분위기를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진흙으로 만들어졌고 약 2만 평방미터에 달했다.

영화의 절정, 후반의 마지막 전투 씬은 쿠축에서 촬영되었고, 42대의 화물 자동차로 돌과 쇄석이 운반되었다. 먼지가 흩날리는 효과를 위해 3톤의 시멘트와 토탄이 쓰였다.

Fyodor Bondarchuk on “9th company”

“나는 전쟁에 관한 그리고 내가 겪어온 세대에 관한 거대한 스케일의 메이저 영화를 원했다. 1987년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데, 1989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제1차 체첸 사태가 발발했을 때 세계 언론은 ‘어떻게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소년들을 징집하여 험악한 체첸의 전장으로 내몰 수 있는가’에 대해 떠들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10년에 걸쳐 낯설고 먼 땅 아프가니스탄으로 어린 소년들을 보낸 우리 정부의 끔찍한 행위를 기억하지 못한다. 삶에 대해 아무런 가치관도 온전히 성립되지 못한 나이, 계속해서 ‘나는 이곳에서 무시무시한 무기를 들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이들에게 해답은 쉽사리 얻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오직 군사들에게 동기가 된 것이 무엇이었을까가 궁금했다. 그들은 이렇게 질문했을 것이다. ‘내 모습은 겁먹은 짐승과 같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 전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데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렇게 죽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등…. 영화를 통해 비추어보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전장에서 그들만의 승리를 이루어낸 부대원들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선택. 무엇이 진정한 영웅인지, 무엇이 진정한 우정인지 우리 모두는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The Afghanistan War historical details

1979-1989
전쟁 지속 기간: 9년 1개월 19일

1978년 이루어진 소련-아프가니스탄 합의에 의해 1979년 12월 25일 소련 군대가 아프간을 침공했다. 소련군 침투의 공식적 이유는 외국 군대의 개입 방지였다. 그러나, 소련의 파견 부대는 점점 빠르게 붉어지고 있던 아프간 내전에 휘말렸다.

12월 27일 소련 군대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위치한 대통령 궁에 급습했고, 그 과정 중에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아민’을 살해했다. 이후, 여당의 파벌 바브락 카말이 이끌던 ‘파캄’당이 세력을 차지했다. 1979년 12월 25일에서 1989년 2월 15일 사이 62,000명의 소련이 참전하여 약 15,051명의 사상자, 417명의 실종 내지는 포로가 생겼으며 전쟁 종료 후 130명이 본국으로 이송되었다.

The true story of the 9th company
-소련의 영웅 발레리 보스트로틴 대령 345 낙하산부대 사령관의 증언


제9중대의 이야기는 매우 독특하다. 제9중대는 아프간에 잠입하기 위해 처음으로 파견된 부대였다. 그 당시 나는 사령관으로 있었고, 긴급 배치를 위해 연대 사령관은 우리 가운데 중대 소집을 위해 병사들을 선택하도록 명령했다. 아프간에서의 승리를 위해 이바지하도록 그들을 데려왔다. 그 당시에는 아프간으로의 파견이 가벼운 원정 탐험같이 보였다. 그래서 필요 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스스로 지원했다. 그들은 훈련을 통해 최고의 포수, 최고의 운전사, 최고의 정비사, 최고의 조준수, 최고의 저격병들이 되었다. 그리고 두 달 후, 제9중대는 명백히 우리의 파견부대 중 가장 훌륭한 부대가 되어있었다. 아프간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제9중대는 항상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보내졌다. 후에 나는 연대를 지휘하고 있었지만, 변함없이 제9중대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나는 매우 복잡하고 불가능한 임무를 주고는 했다.

1987년이 끝날 무렵, 파키스탄 국경 근처에서 발생한 전투 기간 동안, 제9중대는 바로 그 중앙에 있었다. 코스트 지방으로 운송되는 수송부대를 고지 ‘3234’라는 최후방에서 보호하는 것이 임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제9중대가 본 부대로부터 거리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3234 고지의 전투는 1988년 1월 7일 시작되었고, 이틀 반나절에 걸쳐 계속되었다. 게릴라 무자헤딘의 12차례 공격을 격퇴했고, 39명 중 6명의 사상자와 12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전쟁에 참여했던 비아취슬라프 알렉산드로프, 안드레이 멜니코프가 사후에 소련의 영웅으로 추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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