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이 이번에는 무기력한 40대 가장들을 스크린에 불러냈다. 전작에서 애정을 기울인 대상들, 이름없는 ‘거시기’들(<황산벌>), 천대받는 광대 무리(<왕의 남자>), 지금은 한물간 왕년의 스타 로커(<라디오스타>)를 떠올리면 일관성이 느껴지는 소재다.
학교 선생인 아내에게 생계를 의탁한 백수 기영(정진영), 낮에는 택배 기사,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바쁘게 일하는 성욱(김윤석), 자식들과 아내의 캐나다 생활을 성실하게 뒷바라지하는 기러기 아빠 혁수(김상호)는 대학 시절 결성한 록밴드 활화산 밴드의 리더였던 상우의 장례식장에서 간만에 마주한다. 상우의 때이른 죽음이 가져온 충격 때문일까. 먹고사느라 정신없는 두 친구들에게 기영은 다시 밴드를 하자 졸라대고,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했던 성욱과 혁수는 20년 만에 옛 열정의 불꽃을 되살린다. 여기에 보컬로 활동하던 상우의 아들 현준(장근석)이 가세하면서 활화산 밴드는 홍대 일대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치는 등 좀더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즐거운 인생>의 등장인물들은 크게 두 차례 선택을 강요받는다. 첫 번째가 지금 악기를 잡느냐, 마느냐라면 두 번째는 가족의 반대에도 계속 밴드를 하느냐, 마느냐일 것. 녹록지 않은 현실에도 그들이 음악을 계속하리라 다짐한 뒤에는 어려운 선택을 응원이라도 하듯 열광적인 공연신이 등장한다. 주요 레퍼토리로 등장하는 두곡, <터질 거야>와 <즐거운 인생>을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즐거운 인생>은 음악영화로서 매력이 있다. 배우들이 직접 실연하는 음악은 피나는 연습을 증명하듯 라이브로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고, 다소 단순하고 소박한 멜로디는 오히려 쉽게 마음에 와닿는다. 그러나 전작들, 특히 <라디오스타>에서 배우의 인생관이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배어나도록 이끌었던 이준익 감독의 장기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40대 남자들에게 세상사에 가벼워질 기회, 꿈을 좇을 기회를 제공하려 한 의도는 긍정적이나 자신의 희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하거나 반대하는 가족을 진지하게 설득하는 과정을 생략하는 바람에 이들의 고뇌는 깊이를 잃은 듯하다.
프로젝트 그룹 복숭아의 멤버인 이병훈, 방준석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극중 공연신을 좀더 뜨겁게 연출하는 데 일조했다. 드라마 <황진이>로 인기를 끈 장근석이 냉소적인 면이 엿보이는 보컬 현준으로 출연해 경험 많은 배우들 속에서도 인상적인 기운을 발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