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에도 찬바람이 불고 밤이 되면 뚝 떨어진 기온은 몬트리올의 여름이 이미 지나가고 있다는 징조다. “여름이 끝난 걸까요?” 물어보면 퀘베쿠아(퀘벡 사람)들은 그런 슬픈 질문은 삼가라고 할 정도로 몬트리올의 여름은 짧기만 하다. 매장에는 장갑과 목도리가 벌써 등장한 가운데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서 하는 아웃도어 스크리닝을 보면서 저만치 가고 있는 여름을 아쉬워한다.
올해로 31번째를 맞이하는 몬트리올국제영화제가 온갖 ‘방해공작’을 무릅쓰고 또다시 열렸다. 8월23일부터 열린 이번 영화제는 세계 각국 215편의 장편영화와 194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하게 된다. 경쟁부문에서 한국 성지혜 감독의 <여름이 가기 전에>가 무려 4차례 상영되며 다큐멘터리 부문에서는 독일에서 큰 성과를 거둔 조성형 감독의 <풀 메탈 빌리지>(Full Metal Village)가 상영된다. 영화배우 강수연은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국제영화제에서 흔히 하는 실수인데 강수연의 방문 소식을 알리는 신문에서 <왕의 남자>의 배우 이준기의 사진이 실려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 서지 로지크는 영화제의 존재 이유와 미디어의 독설, 관객의 냉담함에도 이번 영화제를 지켜냈고 새로운 이벤트와 다양한 영화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축제 분위기를 살려보려 애쓰고 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여배우이자 감독 소피 마르소가 다녀갔고 미국배우 존 보이트가 방문할 예정이다. 하지만 관객과 미디어는 오랜만에 방문한 옛 스타를 환영하면서도 이미 프랑스에서 상영돼 좋지 못한 평을 받은 그녀의 새 영화를 오마주 섹션에서 굳이 상영했어야 하는지에 대해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존 보이트 역시 블록버스터영화에서 다양한 역할로 인정받는 배우지만 미국 배우인 그를 위한 공로상을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주는 것은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모든 영화제가 그렇듯이 심야상영의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새로 마련된 미드나이트 슬램은 젊은 영화 관객의 눈길을 끌 만한 프로그램으로 환영받고 있다. 피튀기는 살육장면들이 난무하는 롭 좀비 감독의 <할로윈>, 제드 윈트롭 감독의 <스카> 같은 고어영화들이 매일 밤 대기하고 있다. 점점 위상이 커져가고 있는 토론토영화제보다 앞서 열린다는 점만 빼면 캐나다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그럼에도 몬트리올영화제는 다양한 캐나다 혹은 퀘벡영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고 학생영화제를 개최하여 젊은 예비 영화인들을 북돋워주고 있으며, 야외 무료상영으로 여름이 가기 전에 시민들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