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납치 사건 때문에 탈레반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의 감독상인 은곰상을 수상한 마이클 윈터보텀과 매트 화이트크로스의 작품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끝없는 전쟁에 놓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뜻하지 않게 정치적 희생양이 된 네 청년의 여정을 따라간다. 1984년에 만들어진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이 지배국의 눈으로 식민주의의 비인도주의적 태도를 비판하는 낭만적인 길을 걸었다면, 이 영화는 정반대의 출발선상에서 정치적, 민족적 약자들이 세계 정치의 권력구도 안에서 인권을 유린당하는 현장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고통스러운 ‘길’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인다.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은 이미 2002년작인 <인 디스 월드>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난민캠프에서 태어나 오로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향했던 자말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세미다큐 형식으로 만든 바 있다. ‘로드무비’라는 이름이 너무나 낭만적으로 들릴 만큼 이 소년의 행로는 고난 그 자체이며, 수많은 죽음의 고비들을 가까스로 피해서 그가 닿았던 런던은 소년이 꿈꾸던 희망과는 전혀 다른 비전을 보여주었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런던에 사는 아시프(아르판 우스만)라는 파키스탄 청년이 결혼을 위해 본국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모가 정해준 여자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결혼식을 위해 친구들을 초청하고 루헬, 샤픽, 모니즈는 그의 결혼을 축하하고 여행도 즐길 마음으로 가볍게 여행길에 오른다. 파키스탄에 도착해서 별다른 할 일이 없었던 그들은 남는 시간에 뭔가를 좀더 보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도와보자는 마음으로 아프가니스탄행을 택한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직후 미국의 공습이 시작되고, 느닷없는 폭격 속에서 한명의 친구를 잃은 세 청년들은 탈레반의 포로로 잡혔다가 다시 미군에 넘겨진다. 얼굴이 가려지고 꽁꽁 묶인 채 그들은 미군이 쿠바의 작은 어촌에 설립해놓은 ‘관타나모 수용소’로 끌려간다. 이 세명의 파키스탄계 영국 청년들은 그곳에서 심문관에 의해 반복적으로 탈레반이, 더 나아가 알카에다가 될 것을 강요받는다. 미군은 흐릿한 화질의 사진과 비디오 자료 속에서 세 청년을 지목해내며 그들이 있지 않은 곳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이 그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였으나, 그것마저도 폭력 앞에서는 여의치 않은 일이 된다.
세 청년의 증언이 담긴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재연을 통해 만들어진 이 영화의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고 분명하다. 수용소에 갇힌 이들의 비인도적인 처우에 대해서 ‘그들은 살인자이므로, 우리와 동등한 인간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부시의 태도가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인간들을 폭력적인 절차를 통해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그들은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원래 살고 있던 곳으로 돌아갔지만 문제는 여전히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한 청년들은 이 경험을 통해 세상을 달리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졌다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고. 그러나 과연 세계는 폭력을 통해 인간의 삶을 산산조각낸 그 경험들이 부끄럽지 않을 그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는 더이상 지속 불가능한 삶의 모습을 깨닫기 위해 우리가 그 길을 직접 걷지 않도록, 혹은 그 길을 다시 걷게 될 누군가를 묵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 네 청년의 목소리와 경험을 통해 세계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이 작품은 영화가 심미적, 오락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외에 얼마나 중요한 소임을 지니고 있는지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