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영화> Chacun son Cinema
칸영화제가 갈수록 심심해진다고 빈정대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 사람들은 1953년 칸영화제를 예로 드는 것만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심사위원 명단에 장 콕토와 아벨 강스가 있는가 하면, 알프 시에베리, 루이스 브뉘엘, 존 포드, 앨프리드 히치콕, 비토리오 데 시카, 자크 타티의 영화가 경쟁부문에 진출하던 시절이다. 거장이 없어 영화제가 심심하다는 말에 가장 먼저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칸영화제 현 집행위원장 질 자콥이지 싶다. 그래서일까, 그는 칸영화제의 60주년 기념작 <그들 각자의 영화>를 기획하면서 보란 듯이 세계의 거장들을 불러모았다. 알파벳순으로 테오 앙겔로풀로스로 시작해 장이모로 끝나는 감독 35명의 리스트는 하늘의 별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바친 <그들 각자의 영화>의 주제는 ‘극장으로부터 얻은 영감’이다. 33편의 영화는 4분을 넘기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의 전율을 담아낸다. 그리고 우리는 기타노 다케시, 아키 카우리스마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빔 벤더스의 영화를 보며 아직도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은 감독이 있음에 기뻐하고, 테오 앙겔로풀로스,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허우샤오시엔, 다르덴 형제, 아톰 에고이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를 보며 페데리코 펠리니와 로베르 브레송과 장 뤽 고다르의 옛 영화를 기억하고, 제인 캠피온, 차이밍량, 라울 루이즈의 영화를 보며 영화의 판타지를 생각하고, 난니 모레티,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엘리아 슐레이만, 라스 폰 트리에,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영화를 보며 수다와 웃음과 섬뜩한 풍자에 감탄한다. 영화 대신 축구를 선택하는 부자의 모습을 그린 켄 로치의 <해피엔딩>을 끝에 배치한 <그들 각자의 영화>는 르네 클레르의 <침묵은 금이다>의 마지막 장면- 모리스 슈발리에가 옆자리 여성에게 해피엔딩이 좋은지 묻는- 을 에필로그 삼아 막을 내린다. <그들 각자의 영화>는 영화에 대한 사랑 고백이다. 영화를 만드는 자와 영화를 보는 자의 구분이 사라진 자리는 해피엔딩의 행복감으로 절정에 오른다. <그들 각자의 영화>는 거장의 부재를 아쉬워하기 전에 좋은 영화를 보며 누리는 즐거움을 잃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들 각자의 영화>의 DVD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33편 영화 중 코언 형제의 <월드 시네마>를 수록하지 않은 것. 결국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법칙>과 누리 빌게 세일란의 <기후> 사이에서 갈등하는 카우보이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부록으로는 허우샤오시엔 영화의 흑백 컬러 삽입 버전과 엘리아 슐레이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마이클 치미노 영화의 긴 버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