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들)의 이름은 ‘지나’다. 지나는 미국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동양인 여자다. 20대의 지나는 갱단으로부터 도망쳐 로스앤젤레스를 유랑하고(첫 번째 에피소드), 30대의 지나는 꿈을 잃고 라스베이거스의 밤거리를 헤매며(두 번째 에피소드), 40대의 지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알래스카의 혹독하게 추운 벌판에 뛰어든다(세 번째 에피소드). 이처럼 세개의 에피소드는 동일한 이름과 동일한 일로 삶을 버티는 세 여자를 다루고 있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는 겹치지 않는다. 이것은 낯선 땅에서 동양인 여자가 매매춘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세대별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한 내면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허스>는 그녀(들)의 삶을 성, 인종, 계급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그녀들을 관통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 에피소드를 이어주는 끈은 이 여자들의 비루한 삶을 지탱해주는 동시에 그 삶에 끊임없이 쓸쓸한 공허감만을 안겨주는 ‘사랑’이라는 환상이다. 20대의 지나에게 그 환상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도 있을 희망이지만, 30대의 지나에게 그것은 아픈 체념이며 40대의 지나에게 그것은 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망상이 된다.
영화는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 알래스카의 공간적인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외로운 여자들의 내면을 부각한다. 이를테면 사막같이 황량한 도로(로스앤젤레스), 번쩍이는 밤거리(라스베이거스), 흰 눈으로 뒤덮인 허허벌판(알래스카)과 이 여자들의 작고 초라한 영혼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영화는 인물들의 대사를 최소화하고 자연의 고유한 풍경과 인물들의 상징적인 행동에 치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장면들을 건져내지만, 오히려 그러한 방식이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왜냐하면 영화가 여자들의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고통의 지점들을 미학적이고 추상적인 표상들로 메우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인물들에게 한편으로는 가장 고통스러운 현실적인 조건을 부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의 모순을 개인화하고 초월하는 낭만을 감상적으로 환기시킨다. 양극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으며 그 사이를 채워줄 이야기는 부족하다. 그래서 <허스>는 내러티브보다는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에 주안점을 두는 감각적인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