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위해 <클로저>(2004)를 또 보았다. 누군가 이제 막 연애의 설렘에 젖어 행복해하고 떨림을 느끼고 있다면 지금은 이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할 때다. 혹은 누군가 만약 연애의 마지막에 접어들어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이 영화는 꼭 보아야만 한다. 이렇게 내 기준에서 마음대로 <클로저>를 보아야 할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를 나눈 건 내가 봐도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몇명쯤은 공감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랑은 없다고 크게 소리치고 있는 이 영화에 난 왜 도대체 열광하는 걸까? 그걸 지금 글로 표현하려니 압박감이 느껴진다. 한편으론 ‘류띨(나의 별명)의 영화노트’를 찾아봐도 몇줄 적혀 있지 않은 것이 참… 안타깝다. 그렇긴 해도 내 인생 최고의 영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영화 <클로저>의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꼭 내가 맞닥뜨리기 싫어하는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클로저>의 그 현실은 너무나 가깝게 찾아왔고, 내가 말한 <클로저>를 봐야 할 시기, 연애의 마지막에 있는 시기, 그때 이 영화를 보면 공감가는 대사들이 많다. 사랑의 처음과 끝을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래서 불쾌함과 평온함을 동시에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게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것일 수 있고, 또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라서 그런 걸까?
시원하면서도 씁쓸한 그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있으면 신비로운 뭔가가 있을 법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없는 뻥튀기된 공기가 사랑 안에 있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어쩔 수 없는 것에 이끌려 상처받고 또 상처받는 사람들. 상처받은 앨리스, 마음에 큰 아픔을 지니고 눈물을 머금고 코끝까지 빨개지는 앨리스가 혹시 안나의 어릴 적 모습은 아니었을까? 엔딩에서 자신의 고향을 활보하며 걸어가는 제인의 모습, 또 안나의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맘이 찡하면서 씁쓸했다. 어쩜 이런 걸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려낼 수 있을까? 보는 나는 마음이 미어지는데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히…. 이 영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앨리스와 안나 또는 내철리 포트먼과 줄리아 로버츠. 이 두 여인 때문에 이 영화의 매력이 더욱더 잘 드러난다(사실 댄과 래리도 남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긴 하지만, 나도 여자인지라 왠지 모르게 그들이 밉고 싫고, 또 말하는 것도 보는 것도 서글퍼져서 그들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 두 여인의 모습은 많이 닮아 있다. 나뿐만 아니라 사랑을 하는 모든 여자들과 상처받은 여자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상처받고 배신감을 느끼는 앨리스의 모습을 연기할 때 내털리 포트먼의 그 작은 체구는 마치 퍽 터질 것처럼 커 보인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안쓰럽다. 또 한 가지. 줄리아 로버츠가 맡은 안나라는 인물의 무표정에는 오히려 상처가 있는 것 같고, 수만 가지 긁힌 상처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나도 예전에는 앨리스 같았겠지? 그 많은 상처와 배신과 진실된 거짓(?)에 묻혀 살다가 결국 표정없는 안나가 된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랑의 끝과 시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를 두고 내 인생 최고의 영화라고 지금 말하면서도, 나는 항상 사랑의 공기를 찾아 두눈에 하트를 그리고 있으니, 이건 정말 아이러니다.
(추신: 영화를 보고 나서 그냥 생각나는 낱말이나 짧은 문장으로 적어놓는 습관만 있어서 그런지 이렇게 글로 써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지금 다시 보니 내 노트에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이 이렇게 쓰여 있다. ‘볼 수 없어도 볼래/ 냉소/ 평온/ 우울/ 자조.’ 그리고 두 번째 봤을 때는 ‘<클로저>는 항상 접어서 가지고 다녀야 할 영화라고요. 마음속에 접어서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요’. 이렇게 쓰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