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랬다. <토이 스토리>가 막 나왔을 때, 최초의 장편 디지털애니메이션이 지닌 기술적 표현력에 탄성을 연발하느라 모두들 간과했지만, 픽사 스튜디오가 무엇보다 세심하게 공을 들인 것은 이야기였다. <벅스 라이프>가 그랬고, <니모를 찾아서>가 그랬으며, <인크레더블>이 그랬다. 그리고 이제 픽사의 주방장은 영양가 높은 메시지를 풀어 넣은 풍성한 이야기를 능숙한 조리법으로 요리해 <라따뚜이>를 만들어냈다. <라따뚜이>는 생생한 캐릭터를 만드는 법에서부터 힘주어 남기고 싶은 주제를 이야기 속에 자연스레 녹여넣는 법까지, 하나씩 뜯어가며 공부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모범적인 이야기 영화다.
뛰어난 미각을 타고난 생쥐 레미(패튼 오스왈트)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를 꿈꾼다. 생쥐라는 처지 때문에 꿈을 실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던 레미는 어느 날 파리의 최고급 레스토랑 주방으로 떨어진다. 청소부로 레스토랑에 취직한 청년 링귀니(루 로마노)와 우여곡절 끝에 팀을 이루게 된 레미는 링귀니의 모자 속에 숨어 지시하는 방식으로 요리를 시작한다. 레미의 도움으로 링귀니가 환상적인 요리 솜씨를 발휘하자, 주방장 스키너는 의심의 눈길을 번득이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에서 감독은 덜 중요하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지만, 브래드 버드는 좀 다르다. 걸작 <아이언 자이언트>를 내놓고 픽사에서 <인크레더블>을 만들면서 시나리오작가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동시에 증명한 그는 다시금 <라따뚜이>를 성공시킴으로써 미국 주류 애니메이션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감독이 됐다.
<라따뚜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교훈적인 ‘디즈니적 스토리’지만, 도입부의 설정이 신선하고, 결말이 <슈렉> 1편을 연상시킬 정도로 파격적이면서 건강해 구태의연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과 쥐를 결합시키는 의외의 발상으로 시작한 이 작품은 관객을 어떻게 안심시키거나 놀라게 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무대가 프랑스 파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야기의 속내를 채우고 있는 것은 지극히 미국적인 가치관이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이 영화의 아메리칸 드림이 진짜로 품고 있는 메시지는 ‘(인종이나 계층에 상관없이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평등한 배분이 아니라 평등한 기회를 강조하고, 뛰어난 재능이 자기 몫의 영예를 온전히 차지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작품은 분명 좋은 영화지만 미국인들에게 더 좋은 영화다. 생쥐 레미를 흑인이나 여성으로 치환해놓고 보면, 할리우드의 익숙한 마이너리티 휴먼드라마로 읽히기도 한다.
이야기 이외의 측면에서도 <라따뚜이>의 성취는 적지 않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표현되는데다가, 완성된 요리의 모습도 충분히 미각을 돋워 ‘음식영화’로도 성공했다. 레미가 만드는 최초의 음식이 평범한 수프이고, 클라이맥스에서 내놓은 요리가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잡탕 요리인 라타투이란 설정에도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캐릭터의 외모에서 프랑스인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고, 작은 벽돌이 촘촘히 박힌 차도의 질감까지 고스란히 표현해냄으로써 파리라는 매력적인 도시의 분위기를 훌륭히 재현한 것도 평가받을 만하다. 레미가 질주하는 몇몇 장면에서 스피디한 전개를 보이기도 하지만, 점점 빨라지고 있는 최근 픽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들의 변화에 비할 때 한결 여유로운 리듬도 좋다. 고급 양장본 동화의 삽화 같은 그림체, 황색과 갈색 위주로 우아하게 가라앉힌 색감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미각이 불러내는 최고의 플래시백 장면이 이 작품에 있다. 레미가 만든 라타투이를 누군가가 입에 넣는 순간, 어머니가 해준 그 음식을 맛보던 어린 시절을 향해 순식간에 시간이 소거되는 장면은 너무나 유쾌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주인공이 홍차에 마들렌을 찍어 먹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간여행을 시작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