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6일 오전, 영화기자들에게 보도자료 하나가 전달됐다. 강우석 감독이 신작으로 <공공의 적> 1편의 속편 격인 <강철중>(부제: 공공의 적1-1)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담고 있는 이 자료에는 이 영화가 <투캅스> 1편에 가까운 코미디를 지향할 계획이고, 코미디에 일가견있는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며, 강철중 역의 설경구 외에도 정재영, 강신일, 임원희 등이 출연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실, 요즘의 강우석 감독은 좀 느끼했던 게 사실이다. <실미도> 이후 그는 <공공의 적2>에서 검사 강철중과 <한반도>에선 역사학자와 대통령의 입을 빌려 현실에 대한 발언을 우렁차게 해왔지만, 그 언어들이 너무나도 직설적이면서 일방적이었던 탓에 충분한 공감대를 얻어낼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신작 소식을 반기는 이유는 그런 ‘설교조’의 영화 대신 ‘강우석표 코미디’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투캅스> 1, 2편과 <마누라 죽이기> <공공의 적> 1편에 이르기까지 그의 코미디영화는, 무엇보다 관객을 제대로 웃겼다. 게다가 골통 기질이 강하지만 괴이한 매력을 가진 독특한 캐릭터 ‘형사 강철중’의 컴백이라니, 기대를 걸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즐거워 보이기만 하는 그의 선택에는 한 발짝 뒤에 깊은 낭떠러지를 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비장한 각오가 실려 있다. 그는 시네마서비스의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이 보유한 시네마서비스와 프리머스 주식 모두를 담보로 맡기면서 영화 투자자금을 빌렸고, <강철중> 또한 그 ‘벼랑 끝 전술’의 일환이니 말이다. ‘올인’을 선언하고 자신의 칩을 모두 밀어넣은 이 승부사의 손에는 과연 어떤 패가 잡혀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드디어 본격 코미디영화로 컴백한다. =굉장히 즐거운 영화를 한번 찍고 싶었다. 상황이 주는 즐거움에 대한 관객의 그리움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공의 적> 1편의 강철중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 캐릭터를 다시 살릴 방도가 없을까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겨울 설경구와 약속을 했다. 내가 이 영화를 할 거니까 시간 비워놓으라고. 애초에는 올해 말쯤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제목을 <공공의 적3>이 아니라 <강철중>으로 정했고, 부제를 ‘공공의 적1-1’로 붙였다. =내용이 <공공의 적> 1편에 나온 강철중의 5년 뒤를 그리는 것이니까. 지금 생각으로는 1편의 좋았던 장면을 빠르게 보여주면서 타이틀을 띄운 뒤 ‘5년 뒤’ 이렇게 가려고 한다. 강철중도 다섯살 늙었고, 그 집 아이들도 5년 성장해 있고, 강신일이 맡았던 강력반장도 늙어서 말년 반장이 됐고. <공공의 적>이 2002년 개봉했으니까 딱 5년 되지 않았나. 한 가지 내가 설경구에게 부탁한 것은 1편 때 강철중 모습 그대로 몸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결국 8월10일쯤 <싸움> 촬영이 끝나면 살을 또 찌워야 한다. 눈 아래 흉터도 그대로 가져갈 생각이다. 스탭도 1편 때와 거의 똑같이 꾸릴 계획이다.
-어떤 내용인가. =시나리오는 장진 감독이 쓰는데, 내가 던져준 내용은 이런 거다. 예전 TV 시사프로그램 <생방송 세븐 데이즈>를 보는데, 조직폭력배들이 고등학생을 스카우트하려다가 이 아이가 조직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자 죽여버린 사건을 다루더라. 거기서 착안한 이야기다. 강철중이 ‘고삐리’들과 맞붙는다든가 하는 설정도 들어갈 것 같다. 강철중이 혈혈단신으로 조직과 ‘맞장’뜨거나 하는 것도. <공공의 적> 1편의 톤과 캐릭터를 놓치지 않으면서 모든 상황을 유쾌하게 그리고 싶다. 시사프로그램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영화를 보면 훨씬 재미있을 수 있다. 하여간 아직 시나리오 초고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더 설명할 수가 없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장르적으로 <투캅스> 1편에 가장 가깝다’고 밝혔다는데, 어떤 의미인가. =<투캅스> 때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빨간 옷 입은 여자들이 죽어가는데, 그게 하나도 엽기적이거나 하지 않다. 이번 경우에는 그래서 “조폭들 미화한 감독 새끼들 다 잡아들여야 돼”, 뭐 이런 식의 대사가 나올 수 있다. (웃음) 비교적 그런 가벼운 톤으로 가겠다는 얘기다.
-<투캅스>와 통하는 면이 또 있다면. =<투캅스>를 보면 악당이 최종원씨잖나. 덜떨어지긴 했지만 매력있는 악당이다. 내가 이번에 정재영을 선택한 이유도 조폭 두목을 통해서 코미디를 하고 싶었던 거다. 이 사람 자신은 아주 진지한데 객관적으로 보면 웃기는 캐릭터다. 만약 정재영 캐릭터가 너무 나쁘기만 한 놈이 되면 이 영화는 실패한다. 나쁘긴 한데 아주 재밌는 놈으로 가야 한다. 정재영을 캐스팅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재영의 눈빛은 강하면서도 또 풀린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리고 액션이 많이 나오지는 않는데 굉장히 육감적인 액션을 해보려고 한다.
-시나리오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본격적으로 쓴 것은 일주일쯤 됐다. 이 아이템은 장진에게 이미 얘기를 해놓았는데, 일주일 전쯤에야 장진이 ‘이제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하더라. 사실, 진이는 원래 내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했지만 <공공의 적2>나 <한반도>나 톤이 너무 달라서 못하고 있었는데, <공공의 적> 1편의 속편을 하자고 했더니 자신있다고 하더라. 그 영화를 워낙 좋게 봤기 때문에 그 캐릭터는 잘 살릴 자신이 있다는 거지.
-시나리오를 장진 감독에게 굳이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봐라. 만약 <강철중>이 <투캅스> 1편이나 <공공의 적> 1편을 못 넘어선다면 난 코미디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다른 젊은 감독에게 찍게 하는 게 낫지 왜 내가 바보 소리를 들어가면서 코미디를 하겠냐. 결국 장진 정도의 필력이 따라붙어줘야 내가 코미디를 만드는 명분도 생긴다. 내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속편을 만든다면 죽는 거다. 5년 전 영화를 다시 꺼내면서 퇴보한다면 그걸 내가 왜 하겠냐.
-장진 감독의 기발한 상상력이 강우석 감독 영화 스타일과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다. =장진하고 워낙 오래 작업했기 때문에 어떻게 써도 다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내가 그랬다. ‘네가 여기서 웃겨라, 그러면 내가 다른 방식으로 웃길게’라고. 똑같이 웃기는데 내 식으로 웃기게 될 거다. 그래서 진이에게 일단 이야기와 캐릭터를 많이 벌여놓아 달라고 했다. 분량을 많이 써놓으면 내가 축약하겠다고. 7월 말쯤 초고가 나올 텐데 그것을 바탕으로 함께 고쳐나갈 생각이다.
-<공공의 적2>와 <한반도>에는 ‘설교조’ 대사가 너무 많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당연히 그런 것은 없다. 굳이 있다면 “왜 너희는 깡패가 되려고 하느냐” 같은 대사일 텐데, 그건 설교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2편의 강철중은 검사이기 때문에 딱딱한 톤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공공의 적> 1, 2편은 강철중이라는 캐릭터가 혼자 끌고간 셈인데, 이번에는 달라질 것 같다. =이번에는 정재영의 악역을 강철중과 팽팽한 구도로 내세울 거다. 강철중은 이미 한번 보여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혼자서 원맨쇼하고 돌아다니면 재미가 없다. 적과 주변 인물을 통해서 강철중도 빛을 발휘하는 형식이 될 거다.
-설경구는 형사 강철중으로의 복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굉장히 좋아한다. 어쩌면 지금 내가 설경구에게 끌려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경구는 빨리 들어가자고 보채기도 하고, 빨리 계약도 끝내자고 한다.
-촬영은 언제쯤 시작하게 되나. =10월쯤 시작할 계획이다. 설경구 분량을 먼저 찍다가 정재영이 <신기전>을 끝내고 합류하는 11월 중순쯤부터 두 사람이 마주치는 장면을 찍을 생각이다. 어차피 영화에서 두 사람은 몇번 안 만난다. 그러다보니 내년 구정 개봉은 힘들 것 같고, 3월쯤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제작비는 40억원대가 될 전망이다.
-이 영화를 만든다고 발표한 뒤 주변 반응은 어떤가. =<공공의 적2>이나 <한반도> 당시 보도자료를 냈을 때보다 반응은 훨씬 크다. 영화인들에게서도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전화가 온다. 분위기가 좋은 게, 보도자료 내기 전날 설경구, 정재영, 강신일씨하고 술 한잔을 했는데 벌써 자기들끼리 술자리에서 서로 웃기고 하는 모습이 정말 코미디영화를 찍는 느낌이 들더라. 경구도 이상하게 “이 영화, 무조건 돼요”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하는 배우가 아니거든. <실미도> 찍을 때도 만날 “감독님 이거 되긴 되는 거예요?”라고 묻곤 했다.
-영화산업노조의 시스템 속에서 촬영을 진행하게 된다. =나는 노조의 출범을 처음부터 반가워했던 사람이다. 하여간 이번에는 영화를 짧은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찍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공공의 적> 1편 때도 오죽하면 우리 제작진의 별명이 ‘공무원팀’이었겠냐. (웃음) 웬만하면 오후 4시에 촬영을 끝내곤 했으니까. 밤샌 적은 한번도 없고.
-올해 시네마서비스 영화의 성적은 매우 좋지 않다. <밀양> 정도만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을 뿐이고 큰 손해가 난 영화도 많다. =그렇다. <밀양> 외에는 <바람피기 좋은 날> 정도가 나쁘지 않은 정도의 흥행을 기록했다. 아마도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신기전>과 <모던보이>, 그리고 <강철중>이 개봉하는 내년이 우리에게 고비가 될 것 같다.
-그중에서도 <황진이>의 흥행실패는 좀 아팠을 것 같다. =안 될 수도 있지만 한번 가보자는 차원의 영화가 있고, 무조건 흥행이 된다는 차원에서 시작하는 영화가 있는데, <황진이>는 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 됐다. 기가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네마서비스가 참여하는 영화는 굉장히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KnJ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드는 <신기전> <모던보이> 말고도 씨네2000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영화사 아침의 <궁녀>, 아이필름의 <기다리다 미쳐>가 있다. 시네마서비스 또는 KnJ의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싸움> <뜨거운 것이 좋아> 등도 있다. 8월15일 <지금 사랑하는…>을 시작으로 2~3주 간격으로 영화가 계속 개봉된다.
-시네마서비스의 개인 지분을 담보로 설정하고 CJ엔터테인먼트로부터 100억원을 대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네마서비스의 내 지분이 40%쯤 되는데 모두 담보로 잡혔고, 프리머스 지분도 10% 이상인데 그것도 담보로 설정했다. 만약에 돈을 못 갚으면 시네마서비스는 CJ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여간 그 돈이 없으면 영화를 못 찍는데 어떻게 하냐. 진짜 ‘몰빵’인 셈이다. 회사도 ‘몰빵’이고, 개인적으로도 ‘몰빵’이다.
-아무리 자금사정이 안 좋았다 해도 너무 위험한 시도라는 생각도 든다. =일단 흥행성적이 안 좋았으니 돌아올 돈이 없는데다 제작 중인 영화 편수가 워낙 많다. 조금 짜증이 나서 그렇지, 이렇게 몰빵할 때 훨씬 큰 에너지가 생긴다. 따지고 보면 영화라는 게 다 위험한 것 아니냐. <실미도>를 시네마서비스가 전액 투자해서 찍는다고 했을 때 다들 날보고 미친놈이라고 했잖나. 그런데 그게 회사를 구할 줄 누가 알았냐.
-100억원이면 이자만 해도 엄청날 텐데. =그렇다. 그래도 나는 그 돈을 빌려준 CJ가 너무 고맙다. 담보로 맡긴 주가의 평가액이야 당연히 100억원이 넘겠지만, 만약 빌린 100억원을 다 날린다면 회사가 문닫게 생겼는데 그 주식이 더이상 무슨 가치를 갖겠냐. 결국 잘못하면 휴지가 될 수도 있는 주식을 담보로 인정해준다는 것 자체가 신뢰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CJ 관계자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다. 혹자는 개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건 도와주는 것이다. CJ가 굳이 내 지분을 담보로 잡은 것은 ‘책임을 지면서 더 열심히 찍고 잘 관리해라’, 이런 뜻 같다.
-시네마서비스가 CJ로 넘어가게 되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토종 한국영화 자본은 영영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몇몇 사람들도 그러더라. 잘못하면 토종자본이 소멸되는 것 아니냐고. 그러면 이제 다들 메이저 아래 줄을 서야 한다는 얘긴데, 그게 가장 두렵다면서.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차라리 영화도 찍지 말고 소멸될까?’라고. 그러니까 이게 다 소멸되지 않기 위해서 하는 짓이라는 얘기다. 내가 <강철중>을 찍는 것도 혹시 앞서 개봉한 영화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더라도 이 영화로 커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나 또한 배를 같이 타는 거다.
-마치 최후의 카드를 꺼내는 심정 같다.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이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만약 잘 안 되면 우리는 시장에서 퇴출이다. 자본이 없으니 투자·배급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 결국 내년은 우리가 CJ, 쇼박스, 롯데 이런 메이저와 견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집단인가 마지막으로 테스트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그동안 300억~400억원에 회사를 팔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돈을 그대로 영화로 넣어서 마지막 게임을 해보는 셈이다.
-CJ로부터 온 100억원은 어디로 투자되나. =<신기전>과 <모던보이>, 그리고 나머지 영화들이다. 어차피 이 많은 영화들이 자본을 완전히 다 확보해놓고 시작한 프로젝트들이 아니니까. 이제 개봉될 <지금 사랑하는…>부터 <강철중>까지는 한편당 20%~50% 정도의 앵벌이한 돈이 들어가게 된다.
-앵벌이라면 이번 대여금뿐 아니라 신용으로 융자받은 돈, 비디오 판권 선급금, 사옥을 담보로 융자받은 돈이 다 포함되는 것인가. =사옥은 담보로 맡긴다고 얘기해놓은 상태지만, 그렇게 할 정도까지 은행에서 돈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맡긴 건 아니다. 하여튼 상황이 그러니 이번에 쓰러지면 장렬한 전사를 하는 거다.
-지금 진행 중인 영화에 투입된 돈은 대체 얼마나 되나. =잘 모르겠지만, 시네마서비스와 내 개인 자본을 합쳐서 아마 400억원 정도 될 거다.
-지금 시네마서비스 영화들에서 시네마서비스의 투자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시네마서비스와 나 개인의 비율이 대략 80% 되고, 나머지는 CJ가 넣고 있다.
-그외에는 돈줄이 아예 없는 것인가. 충무로 자금 상황이 안 좋은 게 사실인가보다. =허 참, 요즘 통 사람들을 안 만나나보네. (웃음) 다들 얼굴이 바싹 말라 있지 않던가. 정말이지 지금은 돈을 구할 곳이 없다.
-강우석펀드는 완전히 물건너간 것인가. =그런 분위기다. 게다가 지금은 결성이 된다 해도 내가 참여할 수가 없다. 이렇게 몰빵해놓고 있는데 내 영화들을 챙겨야지, 어떻게 남의 영화를 투자해주고 있겠냐.
-결과적으로 강우석펀드에 대한 기대가 일을 꼬이게 한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게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영화들을 질렀겠냐 말이다.
-요즘은 메이저들조차 신규 투자작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상황이 안 좋다고 영화를 아예 안 만들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영화들과 SK텔레콤이나 KT에서 자금 지원받는 영화들 말고는 잘 굴러가지 않는 것 같더라. 제작사들은 OCN이니 채널CGV니 케이블TV 드라마나 따오려고 뛰어다니고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그다지 초조해하지 않는 걸 보면 승부사는 승부사인 모양이다. =승부사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맛이 가서 그렇다. (웃음) 더이상 엄살 부려봐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예전에는 자금을 구하려면 투자자를 만날 필요도 없이 전화로 끝냈다. ‘야 여기 좀 넣어라’, 그러면 돈부터 넣고 계약서 썼다고. 이제는 턱도 없다.
-SK텔레콤을 비롯한 새로운 자본들이 진입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 자본이 상황을 호전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투자를 많이 한다면 긍정적일 수도 있다. 만약 SKT가 규모 면에서 과거 CJ나 쇼박스보다 크게 했으면 좋겠지만, 과연 예전 SKC 시절에 앗 뜨거워라 하면서 나갔던 사람들이라 어떨지 잘 모르겠다. 콘텐츠가 필요하니까 당분간 손해를 보더라도 밀어붙인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양질의 자본을 투자한다면 모르겠지만 작품마다 돈벌이하겠다, 그런 식이면 바로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별다른 게 있겠나. 영화를 잘 만들어야지. 물론 그리 짧은 기간 안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최근의 한국영화들이 젊은 관객과 호흡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목소리도 높다.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거지.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다고 얘기를 못하는 거지. 요즘 미국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글을 써주는 작가도 있고, 저렇게 CG로 그림을 만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돌파구는 없다고 생각하나. =영화들이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코미디인 줄 알고 봤더니 멜로드라마이고, 정말 무서운 영화라고 해서 가봤더니 이상한 미스터리물이고. 도대체 무엇으로 관객에게 돈을 받냐는 거다. 그 정도는 TV드라마에도 다 나오는데 말이다. 아니, 치정을 다룬다면 김수현 선생의 <내 남자의 여자>가 훨씬 영화적이고, 야망을 그린다면 <하얀거탑>이 훨씬 영화적이다. <주몽> 같은 사극들도 상당히 영화적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근래에 정말 영화적으로 죽이는데도 망한 영화가 있냐. 관객이 조금 냉혹하게 잣대를 들이대는 면이 있어서 덜 본 영화는 있을지는 몰라도. <우아한 세계>는 좀 아쉽더라. 한 100만명 정도는 더 들 수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 찍는 영화들에 조금 더 확실하게 가자, 영화답게 가자라고 주장한다. 웃기려면 <투캅스> 1편처럼 웃기든지, 무섭게 하려면 가장 살벌한 할리우드영화보다 더하게 가든지. 그런데 다들 ‘예술’하고 있다. 미장센이며 영상이며, 요즘 영화들은 온통 거기에만 공을 들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쏜 그 화살은 결국 시네마서비스의 영화와 본인의 최근작으로도 날아가는 것인 셈 아닌가. =우리 또한 부분적인 책임은 지고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감독의 이름값만 믿고 영화를 한다든가, 적절한 감독을 못 찾는다든가.시네마서비스 영화도 대부분 그런 덫에 빠져 있었다.
-과연 <강철중>이 이 위기를 극복하는 선봉장이 될까. =기다려봐라. 코미디를 어떻게 만드는 건지 보여줄 생각이니까. 확실히 웃겨주겠다. 다들 그냥 죽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