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이 밀집한 지역을 다니다보면 가끔 언제 이렇게 변했지, 싶을 때가 있다. 주로 강북에서 생활하다보니 종로, 신촌, 홍대 앞 등을 자주 들르게 되는데 얼마 전 홍대 앞에 고깃집이 밀집했던 지역을 지나다 깜짝 놀랐다. 야외에 불판을 내놓고 고기를 굽던 집들이 거의 없어져서다. 삼겹살 집이 없어진 자리에 들어선 것은 이자카야라 불리는 일식 주점들이다. 한집 건너 하나씩 비슷한 메뉴를 파는 이자카야가 빼곡히 들어섰다. 예전에 신촌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돼지갈비로 유명했던 골목이 어느 순간 모조리 닭꼬치집으로 변하더니 몇년 뒤엔 조개구이집으로, 다시 이듬해엔 찜닭집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물론 홍대 앞과 마찬가지로 이자카야가 우세종으로 자리잡았다. 전통을 고집하는 음식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행에 따라 순식간에 바뀌는 식당들을 보노라면 사람들 입맛이 정말 그렇게 바뀌는지 의심스럽다. 지지난해엔 돼지갈비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지난해엔 찜닭만 찾고 올해는 이자카야를 선호하는 건지 말이다. 입맛이 보수적인 나 같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자카야가 뜬다는데 오늘도 내일도 거기서 먹어야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어제 돼지갈비를 먹었으니 오늘은 찜닭을 먹어볼까 하는 게 좀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다른 걸 먹고 싶은데 찜닭집만 몰려 있다면 문제는 문제다. 사정에 조금 밝은 사람들은 골목에 맛있는 다른 식당이 있다는 걸 알겠지만 휩쓸려 먹다보면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여유가 없다. 신경 써서 미리 검색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대로변에 유행 따라 급조된 식당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주는 대로 먹는다는 주의라면 할 수 없지만 이왕 먹는 거 맛있는 걸로 골라 먹겠다는 주의라면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영화를 고르는 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일단 멀티플렉스에 가서 주어진 영화만 보겠다면 할 수 없지만 가끔은 멀티플렉스가 이자카야나 찜닭집만 몰려 있는 골목 같은 느낌을 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몰려오는 여름은 특히 멀티플렉스에 걸리는 메뉴가 단출하다. 다양한 영화를 걸 수 있다는 멀티플렉스의 장점이 여름 시즌엔 휴가를 가는 건지 몰라도 입맛을 충족시키려면 조금 품을 들여서 숨은 맛집을 찾아봐야 한다. 블록버스터들이 승승장구하는 계절에도 작은 영화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면 몰라서 그렇지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타인의 삶> <우리학교> <시간을 달리는 소녀> <초속 5센티미터> <스틸 라이프> 등이 장기 흥행에 성공하고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이나 미쟝센영화제가 매진 행렬을 기록한 것은 <트랜스포머>의 400만명 돌파 못지않게 의미있는 소식이다.
올 여름은 특히 영화의 다양한 맛을 즐길 기회가 많은 것 같다. 우선 7월12일 개막한 부천영화제가 있고 부천영화제가 끝날 즈음엔 시네마 디지털 서울 2007이 시작된다. 서울지역 아트플러스 체인 7개 극장과 서울아트시네마가 진행하는 넥스트 플러스 여름영화축제도 좋은 영화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데이비드 린치의 <인랜드 엠파이어>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가 개봉하는가 하면, 하워드 혹스와 잉마르 베리만의 회고전도 8월에 열린다고 한다. 입맛을 잃기 쉬운 계절, 땀이 좀 나더라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맛있는 것을 찾아드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