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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충성하는 멜로디의 향연
박혜명 2007-07-12

2007 이병우콘서트 7월21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문화 02-515-6560

영화음악의 최대 미덕은 영화가 목적하는 바에 따르는 것이다. 이병우는 그런 점에서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음악가다. <세 친구>(1996)로 시작해 <장화, 홍련>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왕의 남자> <호로비츠를 위하여> <괴물> <> <그놈 목소리>까지 16편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병우의 영화음악은 ‘이병우만의 색깔’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적응에 능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듯 변화무쌍한 이병우의 영화음악 밑바탕에는 ‘한국적이지 않다’라는 특성이 깔려 있다. 단적인 예가 바로 한국적 색채를 완전히 지워내고 완성한 <왕의 남자>와 <스캔들…> 두편의 사극 오리지널 스코어다. 물론 한국의 전통악기를 쓰고는 있지만 그 사용 방식은 마치 한국 음악을 잘 모른 채 ‘한국 음악=동양 음악’이라는 등식을 가진 서양 음악가가 오리엔탈리즘을 구현하는 듯한 인상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황제> <리틀 부다>의 스코어가 그랬듯이. 이병우는 서양의 현악 앙상블로 왕과 조선 귀족의 기품을 표현하고,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영화처럼 집시풍 음악으로 서민들의 우스꽝스러움을 표현한다(<괴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1번가의 기적>). 그의 음악은 철저하게 동시대적이고 서구적이고, (유쾌한 사실은 아니지만 서구적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보편적이다. <>에 이르러 이탈리아 가곡을 닮은 보컬 트랙까지 담은 걸 보면 이병우 본인도 ‘서구적’이란 단어로 곧장 치환될 수 있는 영화음악의 보편성을 자신이 추구한다는 걸 굳이 숨기려는 것 같지 않다.

유럽 고전음악의 규칙을 따른 관현악 편성을 기반으로 하면서 서구 여러 나라의 음악적 전통으로부터 작업의 출구를 찾아가는 이병우의 영화음악은, 흔히 ‘할리우드적’이라고도 설명되지만 그쪽 음악보다 멜로디 라인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병우는 멜로디를 정말 잘 써내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구슬픈 선율에 특히 강하다. <장화, 홍련>의 왈츠 테마, <왕의 남자>의 프롤로그 및 에필로그 테마 같은 것이 영화를 보는 중에 흘러나오면 두귀가 자연스레 그쪽으로 간다. 데자뷰를 가진 멜로디이든 그렇지 않든, 이병우가 작곡한 선율은 현재 들을 수 있는 한국의 영화 스코어들 가운데 가장 예쁘고, 심장이 저릴 정도로 애(哀)를 동반하고 있어 감성적 힘도 크다. 이런 점에서 이병우의 음악은 종종 엔니오 모리코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차이라면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특정 장르를 다작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구축된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고 이병우의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오는 7월21일 토요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병우가 네 번째 콘서트를 갖는다. 지난해 5월 콘서트 이후 <괴물> <> 등 대작성 음악들이 추가된 무대여서인지 기본 세션 외에 50인조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한다. 발표된 영화음악에는 없던 일렉트로니카적 색채도 느낄 자리가 될 듯싶다. 어쨌거나 이병우라는 이름 석자는 현재 한국 영화음악계에서 가장 완성도있는 오리지널 스코어를 만들어내는 음악가란 뜻이다. ‘모든 장르에 걸맞은 영화음악가’는 당연히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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