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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낮지만 당당한 목소리를 들어라
ibuti 2007-07-06

<낮은 목소리 삼부작: 낮은 목소리, 낮은 목소리2, 숨결>

내 몸은 너의 부끄러운 죄와 내 정신의 자유가 투쟁하는 곳이다.

1970년대의 어느 날, TV를 보다 ‘일본군위안부’(당시엔 ‘정신대’라는 끔찍한 이름을 썼다)에 대해 처음 들었다. 뜻을 묻자 어머니는 놀란 듯 대답을 얼버무렸으니, 군위안부는 수치스럽고 숨겨야 하는 것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기억에 남았다. 김학순 할머니가 전쟁터에서 성노예로 착취당했다고 처음 증언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뒤에는 화가 났다. 피해자로서 떳떳하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야 할 사람들이 권리를 빼앗긴 채 음지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어쩌다 언론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흥밋거리로 다루거나,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는 TV물이 나돌 때면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즈음, 변영주와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은 <낮은 목소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어떠한 제작지원도 받지 못한 그들은 ‘100피트 회원’을 모으고, 기념품을 만들어 팔고, 영화가 완성된 다음엔 직접 필름을 들고 다니며 독립영화 제작·배급방식을 개척했다. 오가와 신스케의 작품을 보고 필름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었던 변영주는 오가와쪽에서 장비를 지원받아 <낮은 목소리>를 찍었다. 필자는 오가와 다큐멘터리의 완결부에서 매번 무게를 헤아리기 힘든 감동을 받곤 했지만, 솔직히 도입부의 지루함을 견디기 힘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낮은 목소리 삼부작>은 달랐다. 1부 <낮은 목소리>부터 전해지는 떨림은 꼭 한국인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할머니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변영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애하는 과정’을 거쳐) 관계를 맺은 자의 진심이 관객의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마침내 대상이 주체가 되는 완결편 <숨결>에 이르러 <낮은 목소리 삼부작>은 다큐멘터리에서만 가능한 위대한 순간을 창조해낸다.

1992년 1월8일, 첫 번째 ‘수요시위’.

당당하게 촬영에 임한 이용수 할머니.

삼부작의 한글제목도 좋지만, 영화를 더 잘 설명하는 건 영어제목이다. 1부는 ‘속삭임, 중얼거림’(The Murmuring)이다. 할머니들에게 카메라는 낯선 존재이고 카메라를 보고 말하는 건 어색한 일이며 과거가 그들의 얼굴을 돌리게 만든다. 2부의 제목 ‘일상적인 슬픔’(Habitual Sadness)은 역설적이다. ‘나눔의 집’에 모여 사는 할머니들은 텃밭을 가꾸고 손님을 맞으며 일상의 즐거움을 터득해 나가고, 폐암 선고를 받은 강덕경 할머니는 카메라가 자신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주길 원한다. 3부 ‘나의 숨결’(My Own Breathing)에서 할머니들은 당당하다. 이용수 할머니가 다른 할머니와 마주 앉아 진실을 꺼내며, 과거를 수필로 기록해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김윤심 할머니에게선 이제 부끄러움을 찾을 수 없다. 변영주의 바람대로, 삼부작은, 용기와 희망을 가르쳐준 그들 할머니를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게 만든다.

챕터 기능이 없는 DVD다. 여기저기 넘기며 보지 말라는 뜻일 게다. 영상과 소리에 대해선, 나쁘다고 불평하기가 쑥스러운 경우다. 넘어가도록 하자. 매편 제공되는 ‘감독 코멘트’(19분, 9분, 12분)는 일반적인 음성해설을 대신한 것으로서, 제작 과정, 에피소드, 후일담 등을 상세하게 전달한다. 그 외에 할머니들의 투쟁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끝나지 않는 목소리’(13분), 감독이 영화평론가 김소영,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영각과 ‘역사적 트라우마와 그 치유의 과정으로서 다큐멘터리 작업’, ‘<낮은 목소리>가 독립영화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각각 나눈 대담(61분, 32분)을 수록했다. 제작노트 등에서 발췌, 구성한 150페이지짜리 자료집도 빼놓을 수 없다. 감독은 단지 과거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할머니들을 느끼는 데 DVD가 유용하게 쓰였으면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어디 그것뿐이겠나, <낮은 목소리 삼부작>을 본다는 것은 전쟁과 착취와 폭력에 의해 짓밟힌 여성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 신념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독립영화데이터베이스’에서 구입 가능하다.

1997년에 세상을 떠난 강덕경 할머니의 그림 <빼앗긴 순정>.

영화평론가 김소영과 대담하는 변영주(왼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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