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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멕시코를 본다

7월9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제8회 멕시코영화제, 2002~2006년 작품 선보여

사단법인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와 주한멕시코대사관에서 주최하는 멕시코영화제가 올해 8회를 맞는다. 멕시코영화의 전설인 아르투로 립스테인, 루이스 브뉘엘 등 대가들의 회고전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멕시코영화들을 해마다 상영해온 멕시코영화제는, 올해엔 2002년부터 2006년 사이에 제작된 최신 멕시코영화들과 그들의 감수성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들을 공개한다. 근래의 멕시코영화는 할리우드 및 스페인어 영화권에 새로운 감각을 제공하는 3인의 스타감독으로도 유명해졌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의 기예르모 델 토로, <이투마마>의 알폰소 쿠아론, <바벨>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그들로, 낯선 서사와 감각적인 이미지 그리고 대안적인 세계관으로 주류 영화판에서 인정받고 있는 1960년대생 감독들이다. 이번 영화제에 소개되는 감독들은 아직 세계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 의미에서 토착적인 이미지와 감수성들을 보여주는 감독들이다. 도로, 매춘굴, 뒷골목과 복잡한 주택가는 중남미 지역의 도시적 삶의 주무대가 된다. 일상은 범죄의 나날이고, 젊은 얼뜨기들은 뚜렷한 의도없이 범죄의 세계에 발을 담근다. 마법사가 아닌 한에야 이러한 지독한 현실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이드 이펙트> Efectos secundarios 애인은 바람나고, 오디션에선 내리 떨어지고, 공사판은 기울어가고, 대인관계는 소원하다. 되는 일 하나 없는 서른의 마리나, 이그나시오, 아단, 미미의 삶이 꼬이게 된 것은 12년 전의 동창회 탓이다. 그들의 사랑과 전락, 고통과 분열은 그때 시작됐다. 서른이 되어 다시 동창회에서 만난 그들은 기이하게 변주된 유사 경험을 되풀이하며 망각된 기억들을 불러내고 이를 치유해간다. 통계적으로 볼 때 같은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믿는 이그나시오와 논리를 넘어선 운명적 경험이 있다고 믿는 마리나는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서른, 통계낼 수 없는 혼돈의 삶으로 향한 문턱에 선 청춘들을 위한 영화.

<마법사> El mago 시간을 가두는 것을 업 삼았던 전직 사진사 타데오는 이제 시간을 넘어서는 마술을 연마하는 거리의 마법사가 된다. 시간을 넘어서는 마술이란 ‘별세계를 넘나드는 마술’이다. 사진 역시 시간을 멈추고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마술의 하나다.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는 사진들을 통해 과거와 만나면서 현재와 화해하고 자신을 구원하는 타데오는 사람들에게 관대와 베풂을 주고 조용히 죽음을 준비한다. 오직 통찰력있는 사람들만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간과 망각을 넘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리얼 타임> Tiempo real <로프>나 <실제상황>처럼 이 영화는 전체가 플랑-세캉스(one scene one shot)로 전개되며 상영시간이 곧 디제시스적 시간이 된다.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극적인 사건들이 전개되지만,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이 영화엔 서사적 조급함이나 형식적 들뜸은 없다. 영화는 그저 90분이라는 횡령, 살인, 섹스, 총격전의 시간을 잘라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관대하지 않은 시간 동안 발생한다. 그동안 라울과 그의 무리가 꿈꾸던 부귀영화는 날아가버리고, 믿었던 자에게는 살해당하며 돈벼락은 재가 되어버린다. 믿으면 죽는다, 오직 바보만이 이 미친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핑크 펀치> Punos rosas <아모레스 페로스>나 <니코티나>를 잇는 뉴멕시코 시네마의 흐름을 보여주는 잘빠진 범죄영화. 지미 모랄레스는 가업인 장의업을 이어가는 어린 파트타임 권투선수. 그가 수습하는 장례식에는 종종 지역 갱단의 장례식도 섞여 있다. 어찌어찌하다 어린 복서(핑크색 펀치)가 범죄 세계에 연루되는 과정을 담았지만, 전형적인 권투영화는 아니다. 어린 지미의 내레이션으로 열리고 닫히는 이 영화는 얼치기가 뜻하지 않게 거친 범죄 세계에 발을 담그는 전형적인 범죄 신화의 원형적 버전을 보여준다. 처음엔 “단순한 삶에도 배울 건 많다”고 되뇌던 소년은, 영화의 끝에선 이러한 깨달음에 이른다. “누군가가 쓰러지는 걸 본다면, 난 나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세븐 데이즈> Siete dias 젊은 얼뜨기가 범죄계에 뜻하지 않게 발을 담근다는 모티브로는 위의 영화와 유사하다. 그러나 여기서의 젊은 클라우디오는 좀더 영악하다. 클라우디오 가브리엘로는 세계적 록밴드인 U2를 멕시코에 데려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돈인 50만달러를 벌려고 축구 도박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와 조폭이 U2 영입에 나선 우스꽝스럽고도 처량맞은 이야기. 축구와 도박과 록음악과 우스꽝스러운 조폭, 현란한 비주얼과 종종 코믹스러운 스토리. 그러나 좋은 재료에 필수인 양념이 빠진 듯 결론은 싱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