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골목 안 어떤 풍경. “곽선주… 너 말이야. 너 도대체 뭐냐?” “뭐긴요, 신용불량자지.” 무슨 일인가. 덩치 큰 남자가 봉고차 바깥에 서서 그 안에 있는 가발 쓰고 화려한 옷 입은 내레이터 모델 언니를 다그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아저씨는 뭔데요? 깡패예요? 형사예요? 왜 다 큰 어른이 쌈질하고 코피나 흘리고 다녀요?” 그는 깡패도 아니고 형사도 아니다. 힘들고 지친 소시민 구창식이다. 6월22일 금요일 새벽, <버텨라 구창식> 현장이다.
“컷, 컷, 야 소리 안 잡히잖아. 여기 있지 말고 가서 소리 잡아.” 거듭되는 사운드 NG 때문에 홍현기 감독의 신경이 약간 날카로워진다. 금요일 밤 홍대 인근에서 동시녹음하며 영화 찍는다는 게 쉬운 일이겠나. “죄송합니다. 슛 들어갑니다.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연신 양해를 구해봐도 이미 술 취한 건너편 고깃집 ‘육갑하네’ 손님들 목소리가 도대체 잦아들 줄 모른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우레처럼 애간장을 긁어대는 오토바이 소리들. 결국 정 안 되면 후시로 가자며 이 장면을 마무리. 촬영이 끝나 잠시 쉬던 구창식 역의 이두일이 “이럴 때가 참 난감하다. 간헐적으로 갑자기 소음 날 때 내가 내 호흡으로 그걸 커버해야 한다”고 속내를 들려준다. 그래도 곽선주 역의 류현경은 밝다. 여자 사진기자가 “왜 예쁜 몸매를 그렇게 옷으로 다 가렸냐”고 하자 재치있게 한마디 “아니요. 몸매가 안 되거든요.”
<버텨라 구창식>은 채권추심원과 신용불량자로 만난 구창식과 곽선주의 이야기다. 하지만 구창식은 결국 선주에게서 돈을 받아내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돈이다. 구창식은 돈을 받기 위해 곽선주를 다그치지만, 구창식 역시 돈 때문에 한 무리에게 쫓긴다. 홍현기 감독의 말대로라면 구창식은 “빚을 받으러 다니는 사람이지만 사실 빚쟁이”다. 그리고 미혼모로 힘들게 살아가는 억척이 선주에 대해 류현경이 한마디. “미혼모인 선주 마음을 이해 못할까봐 걱정이에요. 두달 된 아기도 있어서… 근데요, (다시 밝은 표정 지으면서) 선주는 AB형인 것 같아요. 약고, 다혈질이고 마음도 여리니까.” 구창식과 곽선주는 어떻게 될까? 이날 밤, 홍대 어귀, 스탭들은 사운드에 쫓기고 구창식과 곽선주는 돈에 서럽다. 하지만 연신 바쁘게 움직이는 스탭들을 보며 응원 한마디. ‘버텨라 구창식!’ HD제작지원작이기도 한 <버텨라 구창식>의 현장은 이날이 27회차였고 29회차를 끝으로 촬영 종료했으며 올해 말쯤 개봉예정이다.
카드빚 아비규환 속 인물군상에서 떠올렸다
<버텨라 구창식>으로 데뷔하는 홍현기 감독
-얼마나 준비했나. =준비기간은 많지 않았다. 원래는 촬영장소가 무척 많았다. 영진위에서 HD제작지원을 받았지만 예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시나리오상의 장소들을 줄였다. 장소 줄이면서 신도 줄였고. 장소들을 가깝게 모았다. 아무래도 이동이 많으면 안 되지 않겠나.
-구상은 어떻게 했나. =오래됐다. 4년 전쯤. 그때 IMF 시기 뒤끝 아니었나. 신용불량자 많을 때였고. 우연히 신문 보다가 개미들이 주식에 올인했다가 깡통 찼다는 걸 읽었다. 소시민들만 홍어 거시기인 거지. 괜히 그런 거 보면 열받지 않나. 나도 그때 실업자였으니까. (웃음) 카드빚으로 아비규환 되어 있는 그 틈에서 일하는 사람 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에 착수했다.
-이창동 감독에게서 영화를 배웠다던데. =김유진 감독님 소개로 유영길 감독님을 알았고, 유영길 감독님 덕에 <초록물고기> 때 이창동 감독님을 알게 됐다. 원래는 유영길 감독님 촬영부였다가 연출로 바꾸게 된 거다. <박하사탕> 때는 연출부를 했고, <오아시스> 때는 조감독을 했다.
-주안점이 있다면. =인물을 중심으로 갈 거다. 지금으로서는 비주얼에 대한 욕심을 많이 버렸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처음에는 20억원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하루에 평균 20컷씩 찍어나간다. 내가 하루에 세컷 네컷 찍는 분한테 영화 배웠는데 말이다. (웃음) 지금은 뭐 거의 군인정신으로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