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대형 트레일러를 요구하는 스타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영화 자체가 단기적으로 조성된 스타덤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포머>는 아예 트레일러가 주인공이다. ‘트랜스포머’는 영화 속에서 선악의 두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변신 로봇들을 통틀어 일컫는데 지구에 잠입한 이들은 주로 탈것으로 변장(?)하여 암약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N.B.T.’, 즉 비생물 외계인 (non-biotic extraterrestrial)으로 불리는 트랜스포머들은 사이버트론 행성 출신으로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조종되지 않는다. 사이버트론의 권력 투쟁 결과 평화를 애호하는 오토봇 진영에 축출된 호전적인 디셉티콘 일파는, 우주를 뒤흔들 가공할 에너지가 담긴 큐브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한다. 19세기 말 하필 지구에 떨어진 이 큐브의 위치 정보는 탐험가였던 고조할아버지의 유품을 멋모르고 갖고 있는 미국의 10대 샘(샤이아 라보프)의 손에 있다. 자동차와 여자친구 갖기를 소원하는 평범한 소년 샘을 디셉티콘이 추적하는 동안 오토봇의 일원 범블비는 노란 중고 카마로 자동차로 변신해 소년의 벗이 된다.
일본과 미국의 완구회사가 합작으로 만든 장난감 로봇이 기원인 <트랜스포머>는 이를테면 <아이, 로봇>이나 <A.I.>처럼 “로봇은 어떻게 인간과 다른가”를 고민하는 영화가 아니다. 거대하고 육중한 금속덩어리들이 유연하게 움직이고 싸우는 광경을 실사영화로 볼 수 있는, “꿈은 이루어진다”형 이벤트다. 따라서 <트랜스포머>를 가장 알차게 즐길 집단은, 저 장갑차의 본명은 ‘본 크러셔’라든가, 구급차의 정체는 위생병이라거나 하는 정보와 캐릭터를 가려내는 눈썰미를 갖춘 젊은 관객일 것이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트랜스포머>에 기대할 수 있는 구경거리는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사이보그 형태 로봇이 아닌 거대로봇을 실물 이미지로 즐기는 쾌감이고 다른 하나는 기계가 다른 기계로 변형되는 마법 같은 과정을 목격하는 묘미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전자쪽에 좀더 무게를 실었다. 로봇의 인간적인 개성과 메커니즘의 아기자기한 변신을 기대한 관객은, 샘의 친구인 범블비와, 포터블 라디오와 휴대폰으로 민첩하게 변신하는 해킹 로봇 프렌지 정도로 허기를 달래야 한다. 선한 편의 지휘자인 옵티머스 프라임(목소리 피터 쿨렌)은 설교를 즐기는 성격이 <토이 스토리>의 버즈 라이트이어와 비슷하지만 매력이 처진다.
물론 <트랜스포머>는 할리우드 여름 생산 라인의 고가 조립품답게 성공작들의 처방들을 눌러담았다. 멋진 차와 여자를 갈망하는 남성 호르몬은 007 시리즈 및 무수한 할리우드 청춘영화로부터 흘러왔고, 아무도 모르는 신비한 능력의 친구를 갖는다는 환상은 <E.T.>에서, “당신의 휴대폰이 잠복 중인 외계인일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맨 인 블랙>에서, 강력한 보디가드를 만나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되는 모험담은 <터미네이터>에서 마력을 입증한 성분들이다. 이 밖에도 늘어놓자면 여름이 다 간다.
<트랜스포머>를 보는 일은 금속성의 체험이다. 차갑고 불꽃 튀고 전기가 오른다(실제로 파라마운트와 드림웍스사의 로고가 나오는 화면부터 쇳덩이가 삐걱대는 음향이 들린다). 마이클 베이 감독은 감각을 자극하는 동시에 충족시키는 성마른 스타일을 이번에도 밀어붙인다. 사물의 파편과 빛은 스크린 저편에서 관객 얼굴을 향해 직통으로 날아들고 편집의 리듬은 게임에 몰두한 아이들의 마우스 클릭처럼 작렬한다. 영화학자 조프 킹이 ‘임팩트 미학’이라고 부른 이러한 스타일은 섬광으로 시야를 하얗게 비워버리는 스트로보 조명처럼 짜릿하지만 보는 이를 얼어붙게 한다.
러시아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영화의 위력을 “관객의 의식과 정서에 가하는 연타”라고 표현했다. 따옴표 안의 표현은 사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에도 어울린다. 다만 이때 에이젠슈테인은 관객을 일깨워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닫게 하는 몽타주의 힘을 말하고 있었으나, 마이클 베이 영화의 효과는 신경에 가하는 물리적 연타에 가까우며 방향을 찾기보다 잃게 한다는 점이 차이다. <트랜스포머>는 135분간 펼쳐지는 푸짐한 영화지만, 누군가가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워낙 창졸간에 당한 일이어서…”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