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작 <슈퍼맨>의 광고 문구는 “당신은 인간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였다. 그렇다면 <트랜스포머>의 광고 문구는 “당신은 거대 로봇이 움직이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정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는 마이클 베이의 지장이 선명한 여름용 블록버스터인 동시에, 코믹스와 놀이동산에서 소재를 착취해온 할리우드가 완구와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로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트랜스포머>라는 신종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살펴보고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베이와 메건 폭스의 인터뷰를 첨부한다.
2005년의 어느 날 마이클 베이는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전화를 받았다. 장난감 회사 하스브로의 변신 로봇을 소재로 장편영화를 하나 연출할 생각이 없냐는 전화였다. “날더러 장난감으로 영화를 만들라고? 바보 같은 장난감 영화에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하긴 세상의 어떤 정신나간 감독이 장난감 로봇에 감화받아 “그래. 지구로 떨어져 내려온 우주의 로봇종족에 대한 사실적인 액션블록버스터를 한번 만들어볼까”라며 흥분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하스브로 장난감의 컬렉터를 자처해온 스필버그야 “언젠가 트랜스포머 장난감이 거대한 여름영화로 ‘변신’할 것을 꿈꿨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마이클 베이는 아니다.
어쩌면 2005년작 <아일랜드>의 피골이 상접한 박스오피스 성적이 마이클 베이로 하여금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일랜드> 이전만 하더라도 베이는 <진주만>에 진주만식 폭격을 쏟아부은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나쁜 녀석들2>는 평론가들을 향한 ‘빅 퍽유’(Big Fuck-you)였다. 정말 거대하고 시끄러운 영화, 지나칠 정도로 지나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평론가들이 미워하지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영화 말이다.” 하지만 베이의 가장 야심만만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아일랜드>는 1억2500만달러의 제작비를 투여하고도 미국 내에서 겨우 36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첫주 성적이 아니라 최종 성적이었다. 전세계적으로도 <아일랜드>는 한국을 위시한 몇몇 국가들에서만 괜찮은 흥행성적을 거두는 데 그쳤다.
사실적으로 재탄생한 장난감 로봇 영화
그러나 <아일랜드>의 실패 때문에 베이가 <트랜스포머>에 도전했으리란 억측에는 무리가 따른다.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도대체 어떤 정신나간 감독이 장난감 회사가 창조한 변신 로봇으로 1억5천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를 만들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트랜스포머>는 인간형 로봇의 정체성 혼란을 다루는 SF가 아니라 스포츠카나 트럭으로 변신하는 거대 로봇에 대한 액션영화다. 베이에게 <트랜스포머>는 (모두가 줄기차게 뜯어말렸다던) <진주만>보다도 훨씬 위험 요소가 큰 도전이다. “왜 이 영화를 내가 만들려고 하는 걸까.” 마이클 베이는 스스로에게 끝없이 반문했다고 고한다. “나뿐만이 아니다. 제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 또한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베이는 변신 로봇들을 설득력있게 스크린에 되살려내는 모험을 거절할 만큼 재미없는 감독은 또 아니었던 것 같다.
막상 영화화에 뛰어든 마이클 베이는 영화의 이야기를 보기좋게 다듬는 것보다도 장난감 회사의 대량생산 변신 로봇으로 장편영화를 만든다는 개념 자체를 먼저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의 결론은 “최대한 사실적인 영화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변신 로봇 영화와 리얼리즘의 결합이라니, 한마디로 그는 말도 안 되는 도전을 스스로에게 납득하려는 고통과 싸워 이기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오리지널 완구와 애니메이션 시리즈 로봇들의 디자인을 변형할 필요가 있었다. 클래식한 상자 모양의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었던 베이는 “좀더 자잘하고 많은 디테일이 첨가된 진짜 금속성의 기계”를 원했고, 이 같은 변형은 오리지널 팬들의 격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하지만 하드코어 오리지널 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울버린에게 검은 가죽 슈트를 입히려는 브라이언 싱어에게도 무한한 저주를 퍼부을 만치 완고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팬보이들의 세계와 다르다. 울버린에게 노란색 타이츠를 입히거나 변신 로봇들을 파랗고 빨간 박스 형태로 유지하면서 1억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회수할 방도는 이 냉정한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하고, 시끄럽고, 빠르다
문제는 아무리 디자인을 섹시하게 바꾸어도 <트랜스포머>의 이야기가 마이클 베이에게 딱 맞는 옷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프로페셔널한 12살처럼 살고 있는 기크(Geek)”라고 일컫는 코믹스 작가 존 로저스가 다듬어낸 시나리오는 기본적으로 아동용 변신 로봇 애니메이션의 한 에피소드에 딱 어울릴 만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1977년형 스포츠카를 선물로 받은 소년 샘 윗위치(샤이어 라버프). 물론 소년의 첫 자동차는 변신이 가능한 외계 로봇 종족 ‘오토봇’의 일원 ‘범블비’다. 그와 동시에 ‘오토봇’의 적인 ‘디셉티콘’들이 카타르에 위치한 미군 기지를 공습하고 1급 정보를 빼간다. 멍청한 대통령을 위시한 미군은 삽질을 거듭한 끝에 오토봇과 디셉티콘이라는 로봇 종족들이 샘의 할아버지가 20세기 초에 북극에서 발견한 메가트론과 에너지원의 위치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년만화적인 방식으로 순결한 시나리오는 어쩌면 3D애니메이션으로 만들더라도 제작비 환수를 두려워해야 할 종류의 모험일 수 있다.
하지만 액션영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트랜스포머>는 더할 나위 없는 마이클 베이의 영화이기도 하다. 거대하고 시끄럽고 빠르다는 의미다. 그것 때문에 베이의 영화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동시에 비평적인 몰매를 받아왔다. 사실 초창기 작품인 <나쁜 녀석들>과 <더 록>을 제외한다면 그의 영화들이 클라이맥스에서 감정적인 충만 상태에 도달했던 적은 별로 없다. 베이 자신은 최근 몇년간 그의 영화들에 쏟아진 악평들의 의미를 잘 깨닫고 있다. “세상에는 나와 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사람들은 내가 시네마를 파괴했다고 말한다. 너무 빠르게 편집한다고 비난한다.” 물론 베이는 아무것도 고치지 않았다. <트랜스포머>에서도 베이는 카메라를 가만히 놔두지 않으며, 더욱 극단적으로 빠른 편집을 통해 액션을 펌프질한다.
올바른 방법이 아닐 수도 있다. 수천만달러를 들여서 창조해낸 로봇들이 도심 한복판을 파괴하며 벌이는 격전을 꼭 <블랙 호크 다운>처럼 찍어낼 필요는 없다. 베이는 관객의 오감을 로봇들의 전장터 한가운데 던져버리겠다는 야심을 지닌 채 모든 장면을 몰아치지만, 오히려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에서 필요한 것은 값비싼 특수효과의 경이로움을 확실하게 관객의 눈에 각인하는 것이다. <킹콩>의 진정한 명장면은 뉴욕 시내를 파괴하는 킹콩의 격전이 아니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서 바라보는 노을의 아름다움이었고, <쥬라기 공원>의 명장면은 굶주린 랩터들의 추격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본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우아한 곡선이었다. 하이퍼 리얼리즘의 대가인 제임스 카메론 역시 서서히 가라앉는 타이타닉을 원경으로 비추이며 특수효과의 서정성을 획득한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베이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장면 전환과 편집의 속도가 빠른 영화다. 게다가 금속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로봇에 첨가된 수많은 디테일 때문에 로봇들이 격전을 벌이는 순간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조차 힘들다. 뭉개진 금속들의 아귀다툼이 시야를 교란시킨다.
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구현된 ‘실사 거대 로봇 영화’
그러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는 비일상적인 시각적 경이로움을 구현하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 이는 <트랜스포머>가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제대로’ 구현된 ‘실사 거대 로봇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0년작인 스튜어트 고든의 <로봇족스>(Robot Jox)가 있긴 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적 설정을 그대로 도입한 고든의 영화는 당시의 특수효과로는 단 10초도 감당해낼 수 없는 실패작이었다. <트랜스포머>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단골 손님인 거대 로봇을 소재로도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이 영화를 특수효과 스펙터클의 신기원으로 묘사하는 것은 대단히 식상한 표현이다. 사실 킹콩처럼 동물적인 질감을 가진 이물들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것이 금속성의 로봇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트랜스포머>는 특정한 소재에 대한 할리우드의 심리적 저항감을 무너뜨린 첫 영화로 대접받는 것이 합당하다. 특수효과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소재를 과감하게 주류 트렌드로 끌어올리려는 모험정신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더욱 중요한 인물은 마이클 베이가 아니라 제작자 중 한명인 스티븐 스필버그다. <쥬라기 공원>은 거대한 생물체가 도시를 파괴하는 모습을 현대의 특수효과로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는 신념을 할리우드에 안겨줬고, ‘거대한 해파리 로봇의 지구 침공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을 <우주전쟁>은 복고적인 SF의 매력과 키치적인 세기초의 상상력이 진지한 블록버스터와 결합할 수도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다. 두 편의 영화가 없었더라면 <트랜스포머>는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필버그에 이어서 두 번째로 공을 치하받아야 할 대상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 지금 서구의 젊은이들은 TV와 DVD를 통해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을 어린 시절부터 접하며 성장한다. 로봇물의 고전 <마크로스>는 <로보텍>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서구인을 사로잡았고, <건담>은 이미 서구 팝문화의 고정적인 아이콘 중 하나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가 특수효과회사 웨타와 손잡고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 역시 일본의 거대 로봇물에 익숙한 서구 관객층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신종 블록버스터의 가치를 지닌 영화
<트랜스포머>는 훌륭한 블록버스터인가. 마이클 베이의 신작은 <스파이더맨 3>처럼 약삭빠른 블록버스터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는 할리우드의 새로운 트렌드와 향후 십여년간 이어질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낸 블록버스터로서 대담한 가치를 지닌 영화다. 많은 것이 ‘<트랜스포머> 이후’가 될 것이다. 샘 레이미나 브라이언 싱어가 코믹스 원작 영화에 뛰어든 것처럼 비주류에 속해 있던 사려깊은 작가들이 ‘장갑기병 보톰스’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의 영화화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화력에 힘입은 새로운 괴물들이 도착했고, 이제 할리우드가 건드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이클 베이의 1억5천만달러짜리 스펙터클이 마음에 드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트랜스포머>는 값비싼 예고편이다. 블록버스터 스펙터클의 신전에 감히 도전하려는 우리를 향해 할리우드가 던지는 ‘변신’의 최초 예고이자 최후 경고다.
완구 영화의 전성시대 열리나
<무적의 왕자 라이온> <히-맨> 등 완구 원작 영화 제작붐, 영화 실패해도 완구 시장 수익 짭짤
<트랜스포머>는 박스오피스에서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본전을 챙길 수 있는 영화다. 영화시장만큼이나 거대한 완구시장이 2차 수익원으로 든든하게 도사리고 있는 덕이다. 사실 완구회사 하스브로는 변신로봇 장난감의 방대한 시장수요를 미리 예측한 뒤에야 <트랜스포머>의 영화화에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영화 중간에 잠시 등장하는 하스브로 ‘그렘린’ 완구의 간접 PPL은 또 어떤가). 하스브로는 <트랜스포머>의 개봉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트랜스포머 완구 라인을 출시할 예정이며, 앞으로 몇달간 온 세상의 아이들(그리고 성인 수집가층)은 월마트와 ‘Toys R us’에서 엄청난 수의 변신 로봇들을 사들이게 될 것이다.
사실 <트랜스포머>는 완구 원작 영화의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예고편에 가깝다. 현재 할리우드의 스튜디오들이 앞다투어 제작에 돌입한 작품만도 한두편이 아니다. 먼저 워너브러더스는 미국에서는 완구 라인으로 더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무적의 왕자 라이온>(Thundercats)을 3D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이미 90년대에 돌프 룬드그랜 주연으로 영화화한 바 있는 완구회사 마텔의 <히-맨>(He-Man)을 실사영화로 제작할 예정이다. 조 단테의 <토이 솔저스> 같은 작품들에 영감을 줬던 하스브로의 장난감 라인 ‘지.아이.조’(G.I.Joe) 역시 <트랜스포머>의 제작자 로렌조 디 보나벤추라에 의해 영화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제작자 아비 아라드 역시 뒤질세라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출시돼 성인 수집가층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로봇 완구 ‘로보사피엔’(Robosapien)’의 실사영화를 계획 중이다. 완구 원작 영화가 모조리 거대 로봇과 영웅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마텔사의 바비를 누르고 서구 소녀들의 가장 친근한 친구로 떠오른 인형 ‘브랏츠’(Bratz)는 이미 <브랏츠 더 무비>(Bratz The Movie)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해 오는 9월 미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