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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녀석들> 웃다 죽어도 좋다
문석 2007-06-26

이 영화, 제목처럼 뜨겁다. 6월21일 개봉하는 영국발 코미디 액션영화 <뜨거운 녀석들>은 재기발랄하면서도 거침이 없고, 과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튀어나오는 황당한 영화다. 잠깐, ‘황당한’? 그렇다. <뜨거운 녀석들>은 3년 전 ‘로맨틱한 좀비영화’라는 새로운 서브장르를 열어젖힌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감독과 배우들이 다시 힘을 합쳐 만든 영화다. 물론 <새벽의…>를 사랑했던 관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온갖 장르를 넘나들면서 수많은 영화를 즐겁게 인용하고 경쾌하게 패러디하며, 또 그들에 경의를 바친다. 덕분에 <뜨거운 녀석들>은 전작에 못지않은 호평과 전작보다 월등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영국 영화계뿐 아니라 세계의 극장가를 웃음의 도가니로 만든 <뜨거운 녀석들>은 어떤 영화인가,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대체 어떤 녀석들인가.

만약 누군가가 런던경시청에서 가장 잘나가는 형사가 어떤 자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답할 것이다. 니콜라스 앤젤(사이먼 페그)이라고. 이견이 있을 리가 있나.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이면서도 육체적 능력 또한 대단하며, 무엇보다 의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니콜라스는 시위진압, 운전, 자전거, 달리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범인 검거율도 다른 형사의 4배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경찰 상부가 그를 승진시키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뭔가 잘못됐다. 그는 승진과 함께 샌포드라는 오지 중의 오지로 발령이 난 것이다. 경찰 간부들이 밝히는 인사의 배경은 “혼자 너무 튀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뜨거운 녀석들>의 초반부는 마치 한국영화 <마지막 늑대>를 떠올리게 한다. ‘행동과잉장애’에 걸린 성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그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할 일이 도대체 뭐가 있겠는가. 결국 스스로 사건을 만들어내고 해결해서 도시로 복귀하거나 마을 사람들과 어울렁더울렁 지내거나, 두 가지 중 하나 아닐까. 하지만 니콜라스가 처한 상황은 좀 묘하게 돌아간다. 20년 동안 살인사건이 한건도 일어나지 않은 마을답게 초콜릿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게 일과의 절반이 될 정도로 느슨한 동료 경찰 틈에서 한심하게 지내야 하는 나날도 갑갑하지만, 니콜라스를 더욱 힘들게 하는 일은 살인사건으로 추정되는 일이 잇따라 터지는데도 모두들 사고사라고 우기면서 넘겨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니콜라스가 누군가. 타고난 형사이자 일 중독자 아닌가. “법이란 정확하고 정의로우며 인간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고 믿는 그는 동료 경찰들과 마을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도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려 노력하고, 점점 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뜨거운 녀석들>이 본색을 드러내는 것도 이때부터다. 니콜라스가 마을 주민들의 잇단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그에 따라 숨겨졌던 진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된다. 니콜라스의 파트너이자 경찰서장의 아들이기도 한 대니 버터만(닉 프로스트)이 찬양해 마지않는 <폭풍 속으로>와 <나쁜 녀석들2>뿐 아니라 <다이하드>와 <리쎌 웨폰> 시리즈,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저수지의 개들>과 <첩혈쌍웅>의 장면이 인용되거나 패러디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놀드 슈워제네거, 척 노리스, 스티븐 시걸 등이 어느 영화에선가 보여줬던 대사와 동작으로 스크린은 가득 찬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우며 진지함이나 심각함 따위는 탈탈 털어버린 채 보여지는 탓에 유쾌한 웃음 말고는 화답할 길이 없다. 또 가끔 잔혹한 장면들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지만 이내 빠르고 흡인력있는 이야기가 그 충격을 빨아들여주니 그리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영국 전원 배경의 제리 브룩하이머식 액션’이라는 발상

사실, 이 새로운 감각의 액션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세개의 꼭지점이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의 삼각형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영화가 가진 요상방통한 매력의 실체는 금세 파악된다. 조지 로메로의 ‘시체 3부작’을 기본으로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시리즈, 그리고 <28일후…> <블레이드 러너> <디어 헌터> <레지던트 이블>까지 버무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로맨틱한 좀비코미디’를 만들었던 3인방의 신작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나. 물론 많은 사람들은 에드거 라이트,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로 이뤄진 이들 3인조의 신작이 액션영화, 그중에서도 경찰영화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새벽의 황당한 저주> 이후 수많은 호러영화 연출 제의를 받았다. 심지어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속편 제의까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영화를 만들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는 경찰영화 장르에 대한 오랜 전통이 있지만 영국에서는 경찰영화를 찾아보기가 드물었다. 오랫동안 경찰영화를 제작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들이 생각한 경찰영화는 물론 지극히 장르적인 의미에서의 경찰영화와는 거리가 있었다. 배경이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경찰은 좀처럼 총기를 휴대하지 않는데다 그 인상적인 모자를 쓴 채 관광객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총을 들고 설치는 미국 경찰영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제작사인 워킹 타이틀은 ‘제복을 입은 경찰이 주인공’이라는 이들의 아이디어에 대해 “제복은 너무 안 섹시하잖아”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결국 이들이 역발상의 아이디어를 끄집어낸 건 당연하다. “우리는 영국의 시골 마을에 제리 브룩하이머를 떨어뜨리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에드거 라이트 감독) 너무 조용해서 졸음이 밀려오는 영국의 전원을 배경으로 브룩하이머식 액션이 펼쳐진다는 아이디어를 기본으로 이들은 연쇄살인, 부패, 음모, 버디무비 같은 할리우드 경찰영화의 요소를 이들만의 방식으로 버무리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니콜라스와 대니의 관계를 동성 애인처럼 묘사한 것도 버디무비에 대한 이들 특유의 해석이리라. 만약, 이들이 <뜨거운 녀석들>을 통해 선보인 경찰영화 장르 안의 ‘신기원’이 있다면 그건 서류작업에 대한 묘사다.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라이트 감독과 페그는 많은 일선 경찰들을 만났는데, 이들 대부분이 ‘일의 절반 정도가 서류작업’이라고 말했다는 것. 이러한 경찰들의 푸념은 영화에서 니콜라스가 양손으로 볼펜을 철컥 누르며 ‘전투적’으로 조서를 꾸미는 장면으로 반영됐다.

영국적인 현실은 경찰 캐릭터뿐 아니라 다양한 장면에서 반영됐다. 어떤 와인이 있냐는 질문에 술집 주인이 “음… 레드, 그리고… 화이트?”라고 답하는 장면은 영국 일반인들을 풍자하는 농담 정도지만, “오프닝에서 주인공이 시골 마을로 보내지는 것은 누군가를 타겟으로 만들려는 조직적인 강박관념에 대한 풍자이고, 진정으로 일어나는 깊은 문제점을 보지 않고 자부심만을 내세우려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또한 풍자하려고 했다”는 에드거 라이트의 말처럼, <뜨거운 녀석들>은 영국사회에 대한 비판을 은근하게 담고 있는 영화다. 특히 모범마을 선정이라는 ‘공동 선’(the greater good)을 위해 이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내치는 집단의 속성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비슷한 설정을 가진 영국영화 <위커 맨>이나 <어둠의 표적>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스릴러 장르의 컨벤션과 클리셰의 축제”

이처럼 영국적인 상황을 녹여냈지만, 일단 경찰영화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상 이 장르의 왕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영향을 뿌리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이들 3인조가 화끈한 할리우드 경찰영화들에 큰 감명을 받은 세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80년대에 10대를 맞았던 이들(사이먼 페그는 70년생, 닉 프로스트는 72년생, 에드거 라이트는 74년생)의 마음을 두드린 것은 <다이하드> <리쎌 웨폰> <코브라> <48시간> 같은 경찰영화였다. 에드거 라이트는 이 영화가 “영화 속의 많은 조크와 인용들이 미국영화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관객을 미리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말한다. 미국 경찰영화는 이 영화의 후반부 30분을 지배하는 정조다. 마을에서 퇴각하던 니콜라스는 편의점에서 <나쁜 녀석들2>와 <폭풍 속으로>의 DVD 재킷을 본 뒤 미국식 액션히어로로 돌변하는데, 두장의 DVD 주변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척 노리스, 스티븐 시걸, 장 클로드 반담의 DVD가 죽 꽂혀 있는 상징적인 장면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식 영웅으로 ‘변신’한 니콜라스가 자동차를 몰면서 총을 쏘고, 공중을 날면서 쌍권총을 발사하는 건 매우 자연스럽지 않은가. 그리고 미국 경찰영화와 액션영화의 클리셰를 대담하게 사용하는 이들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웃긴 대목이다. 대부분의 패러디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또한 클리셰를 노골화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는 게 틀림없지만, 에드거 라이트와 사이먼 페그는 <뜨거운 녀석들>이 단순한 ‘패러디영화’로 불리는 게 기분 나쁘다는 눈치다. “이 영화나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그 장르를 기리기 위한 것이며, 우리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 영화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클리셰에 관해 말하자면,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컨벤션과 클리셰의 축제인 셈이다. 덕분에 시나리오를 쓸 때 즐거울 수 있었다.”(에드거 라이트)

어찌됐건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단지 이들이 만든 영화가 돈도 벌고 좋은 반응도 얻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기 원치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담았던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그들이 살고 있는 런던의 북부를 배경으로 삼아 실제로 그곳에서 촬영됐고, 소년 시절 이들의 열망과 흥분을 담고 있는 <뜨거운 녀석들>은 아예 에드거 라이트의 고향에서 촬영됐으니 말이다(사이먼 페그의 고향도 그곳에서 멀지 않다고 한다). 하긴, 이 두편은 그렇게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강했기에, 그러니까 진심이 담겨져 있었기에 성공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벽의 황당한 저주>(400만달러)에 비해 <뜨거운 녀석들>의 제작비가 2배로 상승한 것처럼, 이들이 만들게 될 영화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그 초심은 서서히 빛이 바랠 것이다. 그것을 인지상정의 영역으로 밀어두고 “우리의 목표는 영국에서 다양한 장르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는 야심을 한눈팔지 않고 힘있게 밀어붙인다면, 영국 선배 가이 리치처럼 허상만 좇다가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들은 가이 리치를 매우 안 좋아한다)은 없을 듯하다. 게다가 영국의 장르영화가 바야흐로 부흥기를 맞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 3인조의 이름은 당분간 잘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감독 에드거 라이트 1974년생 그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데드 라이트>라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더티 해리>에 영향받은 이 영화는 그의 18살 때 완성됐는데, <뜨거운 녀석들>에 나오는 서머필드 슈퍼마켓이 등장하기도 한다. 20살 때는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Fingers)를 패러디한 서부극 <A Fistful of Fingers>를 만들었는데, 이 아마추어영화는 몇몇 극장에서 개봉됐을 뿐 아니라 위성방송인 <스카이 무비스>에서 방영됐다. 2년 뒤인 1976년 TV코미디 <어사일럼>을 연출하게 된 그는 이 현장에서 사이먼 페그를 만난다. 99년 그는 페그가 대본을 맡았던 <스페이스드>(Spaced)라는 드라마에 연출자로 참여하게 된다. 라이트, 페그, 프로스트 3인방은 이때 처음 함께하게 된다. 라이트는 호러, SF 스타일의 화면 안에 드라마를 담아내는 특이한 시도를 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배우 사이먼 페그 니콜라스 엔젤 역, 1970년생 1993년 런던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생활을 시작한 그는 96년 <어사일럼>에 출연하게 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다. <바지 6장> <미래에 대한 믿음> <큰 열차와 히피들> 등 드라마에 출연하던 그는 1999년 <채널4>의 시트콤 <스페이스드>의 대본과 제작을 맡게 된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는 97년부터 룸메이트로 지내던 절친한 친구 닉 프로스트를 영입했고 에드거 라이트 또한 연출자로 데려온다. 그는 라이트와 함께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시나리오를 썼고 주인공 숀으로 출연했다. 그와 라이트는 원본 격인 <새벽의 저주>의 조지 로메르 감독의 부름을 받아 <랜드 오브 더 데드>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러브 액츄얼리> 오디션에서 떨어진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는 페그는 <미션 임파서블3>에서 작은 역할을 맡기도 했으며, 2006년과 올해에 데이비드 시머(<프렌즈>의 로스)의 연출작에 출연했다.

배우 닉 프로스트 대니 버터맨 역, 1972년생 애초 그의 희망은 배우가 아니었다. 그의 본업은 웨이터였지만, 여러 계기로 엑스트라로 나온 적은 있었다. 그는 사심없이 룸메이트인 사이먼 페그에게 자신이 창조한 마이크라는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고, 이를 기억하고 있던 페그는 <스페이스드>의 대본을 맡게 되면서 마이크 캐릭터를 집어넣었고, 아예 프로스트를 이 역할에 캐스팅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직장도 없이 비디오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는 에드 역할로 나와 본격적인 인정을 받았다. 2006년에는 영화 <킹키 부츠>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들 3인방 중 가장 영화에 대한 지식이 짧고, 발언권 또한 가장 적은 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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