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서관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런던에 있는 영국 필름인스티튜트(BFI) 국립도서관은 역사적인 영화잡지와 신문자료, 스틸사진, 영화제 카탈로그와 시나리오에다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에 관한 5만여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도서관일 것이다.
1934년에 “국내외의 제작, 상영, 배급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일에 관한 정보를 해결해주는 곳”으로 설립된 BFI 국립도서관은 과거 70년 동안 증가하는 수집목록을 적재하고 공적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해 적어도 다섯번은 자리를 옮겼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이곳의 독서실에서 아시아영화를 연구하며 5년을 보냈다. 도서관은 소수정예의 지식을 갖춘 인간들로 가득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버라이어티>에서 최신 영화평들을 읽으려는 경쟁이 대단했다. 사람들이 붐비는 날에는 그저 입장하기 위해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할 정도였다.
월드와이드웹 시대 이전, BFI 국립도서관은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영화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1930년대부터 시작한 종이 인덱스 카드의 상호참조 시스템을 사용했고, 1980년대에는 도서관 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에 수작업으로 입력됐다. 일반인들은 도서관 독서실에 있는 단말기를 통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관료주의와 두려움으로 인해 BFI는 1990년대에 더 많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온라인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기회들을 놓쳤다. IMDb의 분산된 접근법과는 반대로, BFI는 품질을 유지해주는 식견이 넓고 꼼꼼한 관내 팀이 자료를 모은다. 2002년 정도까지도 BFI는 여전히 세계 최고의 영화 데이터베이스로 자리잡고 있었다.
1996년, 나는 서초구에서 4주를 보냈다. 한국영상자료원과 그곳의 열람실에 걸어갈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있었다. 잠기지 않은 캐비닛에 있는 VHS 테이프들을 갖다가 누구나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비디오 모니터들이 있는 걸 보고서 충격받았다. 런던에서 관람은 엄격하게 규제되어 약속을 잡고 지하에 있는 방에서 시간당 돈을 지불하고 봐야 했다.
BFI 도서관에서 특정 영화에 대해 읽어 내려가며 며칠을 보내면서, 결코 쉽게 그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심술궂은 일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마치 영화에 관해 의견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그 의견에 대해 들을 만한 자격밖에 못 갖춘 사람들이 있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과도 같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최근 180억원을 들인 상암동 센터로 위치를 옮겼다. 그곳엔 일반인들이 무료로 DVD를 볼 수 있는 도서관 독서실에 26개의 단말기가 있다. 연말까지 자료원은 900편의 한국 장편영화를 비롯해 700편의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도서관 내에 디지털 스트리밍할 수 있도록 준비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 여름 BFI 도서관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었다. 5월과 6월은 학생들이 시험에 집중하는 때이기 때문에 한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수의 감소가 현저하다. 영화도서관과 자료원들은 대중이 구글, IMDb, 위키피디아 등으로 돌아서면서 영화사 기록에 대한 자신들의 독점권을 잃었다.
한국, 홍콩, 대만의 영화도서관들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반면, BFI 도서관은 2008년 일반인들에게 개방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료 회원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BFI 도서관은 현재 위치에서 개방을 유지할 만큼 “경제적으로 실용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새로운 사옥도 못 찾고 있다. 인터넷이 세계 최고의 영화도서관을 물러나게 한 게 아니라, 그 도서관이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