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을 사랑하는 소심한 괴물 슈렉(마이크 마이어스)이 헤어나오기 힘든 늪 속으로 자꾸 빠져든다. 1편에서 차지한 공주의 사랑과 2편에서 공주의 가족에게 인정받은 사랑이 거꾸로 그의 발목을 수렁으로 인도한다. 개구리 왕이 돼버린 피오나 공주의 아버지는 슈렉에게 왕위를 물려받으라는 유언을 남긴다. 짝퉁 할리우드인 ‘겁나먼 왕국’을 다스린다는 건 자유로운 패러디의 영혼 슈렉에게 끔찍한 고문이다. 화려한 옷치장부터가 고통이며 거대한 소동의 원인이 된다. 슈렉에게 다행스러운 건 피오나의 먼 친척 아티(저스틴 팀버레이크)를 찾아 대신 왕위를 물려주면 된다는 것이다. 슈렉의 인기를 능가할 지경에 이른 동키(에디 머피)와 장화 신은 고양이(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함께 아티를 데려오는 모험이 시작된다.
또 하나의 수렁은 피오나(카메론 디아즈)가 베이비 슈렉을 낳을 예정이라는 점이다. 통제 불가능한 아기를 다스린다는 것 역시 슈렉에겐 악몽이다. 아티 같은 타협책이 있을 리 없으니 계속 악몽에 시달리거나 정신 재무장으로 기꺼이 순응하거나 양자택일일 뿐이다.
슈렉의 수렁 탈출기를 관전하는 행위 자체가 수렁 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건 슈렉의 놀라운 내공일까. 아니면 패러디를 패러디로 착취하며 생명 연장을 꿈꾸는 이 시리즈의 음모일까. 괴물 슈렉을 물리치고 갇힌 공주를 구해내는 밥벌이 공연으로 비웃음을 사는 프린스 차밍(루퍼트 에버렛)을 슈렉의 상대역으로 또다시 출전시키기로 한 첫신부터 그 지루한 운명을 예고한다. 차밍은 왕위 찬탈의 음모를 위해 후크 선장 같은 동화 속 루저(패배자)들을 선동하고 마침내 쿠데타에 돌입한다. 차밍과 그의 일당은 너무나 나쁜 루저들이어서 쿠데타에 성공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이들에 맞서 겁나먼 왕국을 사수하는 네 공주의 역할이 극적이기 어려운 것도 쉽게 예상된다. 조느라 정신없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 숲속의 야생동물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 괴팍한 성격의 백설공주, 결벽증에 가까운 청결주의자 신데렐라, 탑에 가둬두는 게 결과적으로 옳았을 라푼첼이 피오나와 어울려 차밍 일당에 대적한다.
유쾌한 응집력을 흐트러놓는 또 하나의 적수는 훈계다. 슈렉은 약골에 잔머리를 쓰며 왕따당하는 아티를 용감하고 지혜로운 아더 왕자로 가르쳐야 하고, 베이비 슈렉들의 난장판을 즐거운 가족 만들기로 수용하도록 스스로 세뇌해야 한다. 훈계극이 즐겁지 않다는 걸 가르친 건 바로 슈렉 자신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