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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라 히틸로바의 즐거운 조롱, <데이지>

1960년대, 세계 영화사의 ‘새로운 물결’에 발맞추어 동유럽 국가에서도 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된다. 특히 이 시기는 체코영화의 부흥기라고 할 만한데, 당대 프라하 영화학교 출신 감독들(밀로스 포먼, 이리 멘젤, 베라 히틸로바, 야로밀 이레스 등)의 활약이 두드러진 때다. 이들은 스탈린주의의 억압에 맞서 다양한 형식적 실험과 비판의식을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세계 영화사에 강렬한 흐름을 새기지만,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각지로 흩어진다. EBS <세계의 명화>는 6월 한달 동안, 60년대 체코의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아 방송할 예정인데, 그 두 번째 순서로 체코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 베라 히틸로바의 <데이지>가 소개된다.

2006년 <대책없는 인생>이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베라 히틸로바는 도발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여성과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감독이다. 그녀의 두 번째 영화인 <데이지>(1967) 역시 실험적인 형식 속에서 개별 여성에게 카메라를 집중하면서도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는 작품이다. 똑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여자, 마리‘들’의 유쾌한 놀이를 따라가는 과정은 때때로 자크 리베트의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를 연상케 하기도 하지만, 베라 히틸로바의 이미지와 형식은 좀더 카오스적이다. 두명의 마리가 먹고 마시고 춤추는 가운데 나누는 대화와 유희는 비생산적인 행위로 영화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소모될 뿐이다. 이를 담아내는, 정확히 말하자면, 이 행위들과도 충돌하며 자신만의 존재감을 새기는 사운드와 몽타주는 모험을 거듭한다. 화면은 조각나고 신과 신의 연결은 불연속적이며 공간의 안과 밖은 철저히 분리되고 인물들은 무성 영화에서 극단적인 실험 영화기법까지 자유자재로 오간다. 그러한 틈에서 두 여인의 가치전복적인 일탈이 형상화되며, 거기서 에로틱하면서도 무정부주의적인 에너지가 샘솟는다. 이는 당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권위적인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베라 히틸로바식 저항이자, 즐거운 조롱이다.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라스트신의 위력에 맞닥뜨린 순간, 우리는 그녀의 실험이 단지 창작자의 자기만족적인 장난이 아니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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