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의 일환인 서울 LGBT 필름페스티벌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6월6일(수)~10(일) 5일간 열린다.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모두 포괄하는 용어인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Transsexual)는 성소수자의 다양성을 좀더 개방적이고도 민감하게 받아들인 용어. 국내 유일의 성소수자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열의를 갖고 장편 극영화, 다큐멘터리, 단편을 포함한 라인업을 짰다. 개막작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영국)을 시작으로 해외 장편 8편과 <후회하지 않아>, <이반검열2>를 포함한 한국 장편 2편이 상영되며, 그 밖에 <그녀의 기억> <Up/going Home> <친구니까 말할게> <우리 결혼해요> <오버 더 레즈보우> 이상 5편의 단편을 묶은 L-SHORT 부문도 있다.
저항과 전위적 정치세력화에서 보편적 공감과 이해의 확장으로 그 정서와 운동성의 방향이 달라진 인상을 주는 이번 영화제의 작품들은 대개가 웰 메이드 장편 극영화들. 영화의 형식뿐 아니라 주제화의 방식까지 기성의 영화제도 안으로 상당부분 편입해 들어온 듯하다. 이번 영화제의 상영작들은 게이-레즈비언 문화를 좀처럼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무리없이 공감하고 즐길 만한 영화들이다. 그러나 성소수자들의 성정치적 의제를 주제화하는 데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보인다. 호모포비아적 시선이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주변화하는가 하는 주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런 차별과 정치성에 대한 자의식없이 투명한 <고, 고, G-보이스>(대만) 같은 영화나, <번지점프를 하다>가 연상되는 빙의 소재 영화 <그대 곁으로>(캐나다) 등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벼운 주제의 영화들. 현실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허무주의에 지지 않는 주인공들의 욕망만세를 보여주었던 퀴어장편누아르(!) <후회하지 않아>의 제목도 눈에 띄어 반갑다. 국내 유일 성소수자영화제 서울 LGBT 필름페스티벌은 단 5일간, 여기엔 ‘편견’을 제외한 모든 것이 있다.
<암네시아> Amnesia-The James Brighton Enigma ‘제임스 브라이튼 수수께끼’라는 부제에서 시사되듯, 게이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 몬트리올의 주차장에서 알몸으로 발견된 한 청년은 이름이 제임스 브라이튼이며 자신이 게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TV를 통해 소개된 그를 보고 연락한 미국의 가족들은 그가 매튜 허니컷이라 한다. 사회에 만연한 호모포비아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무화하고 정체성을 억압적으로 구성하는지 감각적 화면과 설득력있는 서사로 전달하는 장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Picture of Dorian Gray 오스카 와일드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장편. 도리안의 평면 초상은 뉴욕 컨템포러리 예술가 집단의 미디어 아트 속에서 새롭게 편집되고 복제된다. 늙음을 두려워하는 아름다움 강박증이 만들어내는 집요한 욕망을 파고들어가는 예술가와 매체의 강박적 시선이 원색적 화면을 구성한다. 원작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나던 동성애적 관계를 좀더 적극적으로 서사화하되, 원작이 지니는 데카당스하고 유미적인 감성을 살린 개성적이고도 감각적인 영화.
<첫사랑> はつこい 타다시는 자신이 게이임을 자각한 수줍은 고등학생. 단짝인 동급생 코타를 사랑하나, 자신을 게이라고 놀리는 친구들 앞에서 고백할 수 없어 우울하다. 우연히 게이 커플인 히로키와 신지를 만나 이들과의 일상을 통해 자신이 게이라는 점을 점점 여유롭게 받아들이게 된다. 깜찍하고 순박한 소년 게이 타다시의 야릇한 첫사랑의 열병과 더불어 게이들의 커밍아웃, 결혼에 관한 사회적 이슈들이 명랑한 카메라에 담겼다.
<포르노왕국> Cycles of Porn: Sex /Life in LA pt.2 전세계 게이들의 성적 판타지를 제조하는 천국인 미국 LA의 포르노 산업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게이 포르노 배우들의 실제 고백을 통해, 욕망을 만드는 산업의 이면에 보이지 않게 촘촘하게 조직화된 노동과 착취의 기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시각적 외설의 이면에 작동하는 성적 쾌락과 이에 수반되는 고통, 성적 착취의 상관관계를 포착하면서 게이 문화에 깊숙하게 침투한 소비자본주의적 욕망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