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이 있다고 생각해.” 지난 5월25일, 파주 아트서비스 C스튜디오에 마련된 <그, 사랑을 만나다> 촬영현장. 극중 미연 역을 맡은 한지혜가 상대역인 이천희의 연기를 돕겠다고 농담을 던진다. 연인의 사고 소식에 지쳐 잠을 자던 준서(이천희)는 자신을 깨우는 미연의 손길에 놀라 그녀를 덥석 껴안는다. 그러나 곧 미연은 눈부신 햇살과 함께 사라질 것이고 준서는 그제야 비로소 꿈에서 깨어날 것이다. 말 못할 슬픔이 묻어나는 장면이지만, 20대의 젊디젊은 두 배우는 간간이 즐거운 수다를 이어간다. 이천희가 “밥먹고 누워 있으니까 머리가 너무 아파”라며 투정하자 한지혜는 “갑자기 아줌마처럼 보인다”며 놀려대고, 그 말에 삐친 표정을 짓는 이천희를 다시 한지혜가 달랜다. 하지만 손 연기를 위해 핸드크림을 바르는 한지혜나, 빨개진 눈을 만들려 연신 눈을 비벼대는 이천희나 섬세한 준비를 놓치는 법은 없다.

<연풍연가> <하면 된다>를 연출한 박대영 감독의 신작 <그, 사랑을 만나다>는 영원한 사랑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다. 6년차 커플인 준서와 미연은 감정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미연은 6년이 지나도 여전히 준서를 사랑하지만, 준서는 6년이 지나자 미연의 사랑이 버거워지기 시작한 것. 미연을 떼놓으려던 준서는 어느 날 갑자기 미연이 교통사고를 당하자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미연은 식물인간이 되어서도 준서의 곁에 흔적을 남겨놓고, 준서는 그 흔적을 쫓으며 맑기만 했던 과거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박대영 감독은 “10년 전 <연풍연가>를 찍을 때만 해도 찰나의 기억들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추억이 있다면 사랑도 영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며 “관객에게 ‘사랑하세요’라고 소곤대는 따뜻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단면을 담는 영화지만 그간 “쉽게 찍는 영화가 재미없어진”박대영 감독은 명랑발랄한 미연의 캐릭터를 통해 암벽등반장, 다이빙 수영장, 북한산 정상 등 다양한 공간을 영화에 담아낼 계획. 이제 30%의 촬영분량을 마무리한 <그, 사랑을 만나다>는 오는 10월 말 개봉할 예정이다.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 신경써야”

미술감독 이봉환

세트에 들어서자 한쪽에 세워진 대형건물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준서의 오피스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일명 ‘호리’로 불리는 세트의 일부다. 이봉환 미술감독이 가르쳐준 정식명칭은 호라이즌 월(horizon wall). 준서의 오피스텔이 서울에 있는 4층 높이의 건물로 설정된 터라 서울 휘문중학교 옆에 있는 빌라 옥상에서 테헤란로를 찍었다고 한다. “영화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아도, 시나리오상에 설정된 공간감과 디테일을 살리는 필수조건이다.” <그, 사랑을 만나다>의 전체적인 미술도 호리의 구실과 닮아 있다. 독특한 비주얼을 만들기보다는 배우를 도드라지게 하는 미술이어야 하기 때문. <소름> <폰> <귀신이 산다> <최강로맨스> 등을 거쳐 <그, 사랑을 만나다>로 입봉한 이봉환 감독은 “준서는 해양연구소 연구원인데다가 사랑이 식은 상태라 색감을 절제하지만, 미연은 사랑으로 가득한 여자라 색감을 많이 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비교적 적은 예산이 걸림돌이긴 하지만 써야 할 때 안 쓰고 넘어가는 건 없다고 한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미술이 신경쓸 건 더 많다. 책상에 놓인 소품 하나도 사소해 보이지만 막상 없으면 허전해 보이게 마련이다. 테이크를 갈 때마다 소품 위치 하나하나에 소심하게 반응하고 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