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삼성영화제가 올해도 피렌체에서 개막했다. 이번으로 5회째를 맞는 이 영화제는 임권택 감독 회고전과 임상수 감독 초대전을 비롯하여 30여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됐다. 관객은 <축제> <창> <하류인생> <길소뜸> <춘향뎐> <태백산맥> 등을 통해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음미할 수 있었고, 현지 미개봉작인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과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 소녀>를 프리미어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지난해 말 로마의 한국영화주간을 다녀갔던 임상수 감독과 이재용 감독이 다시 피렌체에서 피오렌티나들(토스카나주의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과 만나 즐거움을 더했다.
현지인들은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과 시선으로 영화제나 영화주간을 통해서나 만날 수 있는 이국의 영화들을 좇는다. 개봉관에서 1년에 고작 한두편밖에 볼 수 없는 현실 탓에 현지 관객은 상업영화나 장르영화를 가리지 않고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지난해보다 관객 수가 30%나 늘었다며 흐뭇해하는 영화제 위원장 리카르도 젤리는 “영화제를 기억했다가 기다리는 한국영화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며 “앞으로 이미 알려진 영화들 말고도 전주영화제가 한국의 독립영화 생산에 큰 몫을 하듯 한국독립영화들도 소개하고 싶다”는 적지 않은 욕심을 내비쳤다.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영화들이 다수 선별된 덕에 지난해보다 더 많은 관객이 몰렸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내용을 담은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뜻일까? 피티팔라스 호텔 테라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은 <그때 그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소재로 삼은 이유와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딸이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가능성 여부를 묻는 등 한국 정치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임상수 감독은 “박근혜가 대선에 나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며, 당선도 안 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영화제는 한국영화를 얄팍하게만 대했던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치는 데도 한몫한다. 영화제에서 9편의 한국영화를 본 로베르토는 “한국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가장 일상적인 문제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세계적인 공감대로 풀어가는 방식”이라고 감탄했고,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로 임상수 감독의 <눈물>을 거론하며 “내가 교사였다면 <눈물>을 교내에서 상영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관련 직종에 오랫동안 재직 중인 티지아나는 <하류인생>을 보고 나오며 “관심을 가지고 동양영화를 보지만 한 나라의 영화를 중심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다. 개봉관에서 한국영화를 접할 수 없는 것은 이탈리아 배급사들이 한국영화의 수준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피렌체시와 전주시는 자매결연을 맺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미 21개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피렌체시가 전주를 눈여겨보게 된 것은 전주영화제 덕이다. 한국의 독립영화들이 피렌체에서 보여지는 날도 이제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