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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낭만시 <페인티드 베일>
김민경 2007-03-14

눈과 귀에 확실히 호소하는 고운 서정시. 원작과는 사뭇 다르지만 나름의 촉촉한 맛은 있다.

때때로 연인은 오직 서로 다른 품성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받는다. 존 큐런 감독의 <페인티드 베일>은 상대방이 갖지 못한 것들에 얽매여 스스로 마음의 감옥에 갇힌 연인의 사연을 따라간다. 1925년 영국, 사교 모임과 카드 게임을 즐기는 쾌활한 미인 키티(나오미 왓츠)는 영국 정부에 소속된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에드워드 노튼)를 따라 상하이로 건너온다. 월터의 사랑은 깊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 키티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한다. 열정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키티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외교관 찰리 타운센드(리브 슈라이버)와 사랑에 빠진다. 언젠가는 아내가 자신을 돌아봐주리라는 소망이 배신당하자 월터는 그녀의 불륜을 벌하기 위해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로 발령을 자원한다. 후덥지근한 중국 남서부의 낙후된 마을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남편의 철저한 무시 속에 유배나 다름없는 고통스런 시간을 보낸다. 영국에 대한 중국의 악감정과 콜레라의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두 사람은 관계의 잘못된 첫 단추를 조심스레 매만져보지만 운명은 그들에게 또 다른 시련을 던져준다.

원작 <페인티드 베일>은 서머싯 몸(<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이 1920년 중국 여행의 영감을 담아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다. 그레타 가르보가 주연한 1934년작과 로널드 님 감독(<포세이돈 어드벤처>)의 1957년 리메이크에 이어 벌써 세 번째 영화화다. 2006년판 <페인티드 베일>은 낯선 땅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키티의 심리적 여정 대신 키티와 월터의 어긋난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원작의 담담한 인생론은 생략됐지만 몸이 창조한 인물과 대사의 묘미는 <필라델피아>의 각본가 론 나이스워너의 손을 거쳐 웰메이드 러브스토리 안에 매끈하게 안착됐다. 에드워드 노튼은 차갑고 완고한 월터의 캐릭터에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내성적인 남자의 내면을 더한다.

<페인티드 베일>의 멜로는 눈과 귀에 확실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수묵화처럼 푸르스름하게 원경에 녹아드는 기암준령의 능선이 곱게 양산을 받쳐든 영국인 부부 뒤로 고급스런 배경을 이루고,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수상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피아노 선율이 아련한 감상을 자아낸다. 갖가지 꽃으로 오프닝을 수놓으며 문을 연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미 왓츠의 입을 빌려 말한다. 꽃은 이내 덧없이 저버리지만 그 아름다움만으로 의미있지 않은가. <페인티드 베일>은 꽃처럼 사랑도 처연해서 더 아름답다고 속삭이는 한편의 낭만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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