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 태양에 다가가는 꿈을 꾸었던 소년. 아버지의 경고를 뒤로한 채 날아오른 그의 하얀 날개는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녹아버려 결국 그의 작은 몸과 함께 푸른 에게해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2057년, 죽어가는 태양 앞에서 전멸 위기에 놓인 인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운의 이름을 딴 우주선 이카로스 2호를 쏘아 올린다. 핵탄두로 태양을 다시 점화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각 분야에서 엄격하게 선별된 8명의 승무원들이 태양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그들은 7년 전 똑같은 임무를 띠고 쏘아 올려진 뒤 홀연히 사라졌던 이카로스 1호기와 마주치게 된다. 유령선처럼 우주를 표류하고 있는 1호기에 대해 8명의 의견이 각자 갈리고 이카로스 2호기는 예정된 항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프로젝트는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평소부터 색다른 SF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던 알렉스 갤런드가 당시 과학 관련 정기간행물에 실린 태양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우주 공간을 이동하게 되는 인간이 그 광대한 공간에서 발견하게 되는 진실, 그와 동시에 대면하게 되는 의식의 기저에 깔려 있는 심리에 대해 흥미를 느끼게 된 그는 태양의 죽음이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난다면, 실제로 우리가 태양의 죽음과 대면하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이는 곧 거대한 태양 앞에서 스스로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지를 확인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손에 전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없는 한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심리적인 부담은 어떤 것일까에 이르게 된다. <비치>와 <28일후…>로 함께 호흡을 맞춘 감독 대니 보일과 프로듀서 앤드루 맥도널드가 가세한 <선샤인>은 이후 3년이 지난 2007년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트레인스포팅>이나 <28일후…>처럼 작은 규모이지만 최적화된 영리한 영화를 만들던 대니 보일은 알렉스 갤런드가 시나리오에 펼쳐 보인 태양을 둘러싼 거대하고 깊은 아이디어에 매료되었다. 태양에 물리적으로 다가간다는 것은 오래전에 폭발했던 별의 잔해들로 만들어진 우리가 자신의 근원으로 가는 심리적인 여정이기도 하다. 태양에 가까이 간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가 종교적인 신성한 경험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꿈꿔온 순수한 과학적 이상에 다가서는 것일 수도 있다. 시나리오 초안에 있던 카파(킬리언 머피)와 캐시(로즈 번)의 애정라인도 가차없이 들어내버릴 정도로 대니 보일은 영화를 통해 인간에게 우리의 근원인 태양의 죽음을 저지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집중하고 있다.
<선샤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스타트랙>이나 <스타워즈>가 아님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제작팀은 NASA와 러시아쪽 자료를 섭렵했고, 나아가서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핵연구센터의 영국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 박사를 비롯해 20년 전에 이미 무선 찻주전자를 디자인한 바 있는 미래 디자이너 리처드 세이무어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기 시작했으며, 브라이언 콕스 박사는 컨설턴트로서 본격적으로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다. 50년 뒤의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서는 아시아 국가의 역할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여겼던 대니 보일은 3명의 아시아 배우를 포함시켰는데, <라스트 사무라이>로 할리우드에 얼굴을 알린 히로유키 사나다와 아시아 스타에서 할리우드로 안착한 양자경, 영국 출신의 베네딕트 왕이 그들이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캐스팅된 8명의 배우들은 우주비행사로서의 캐릭터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상당한 강도의 특별 훈련과 함께 런던의 작은 기숙사에서 이례적으로 2주일간 합숙 훈련을 하며 함께 생활해야 했다.
<선샤인>은 대니 보일이 말했듯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질문이 너무 크면 쉽게 가슴에 다가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질문이, 그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창공에서 추락하기 직전 신화 속 이카로스가 바라본 태양을 <선샤인>은 그리고 있다.
<선샤인> 감독·배우 인터뷰
“결국 영화의 본질은 과학과 신에 대한 논쟁이다”
양자경과 히로유키 사나다가 빠진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에는 인터뷰 내내 말을 아끼는 킬리언 머피, <판타스틱4>로 우리에게 얼굴이 익숙한 크리스 에반스, 소문대로 열정적인 감독 대니 보일, 영화가 자기만 겁쟁이로 만들었다는 트로이 개러티, <웨일 라이더>의 뉴질랜드 출신 클리프 커티스, <스타워즈>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로즈 번, 영국 출신 아시아계 배우 베네딕트 왕이 함께했다.
-왜 ‘선샤인’인가. =대니 보일: 처음부터 항상 그 타이틀이었다. 햇빛은 지구상에서 가장 명백한 사실이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언제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태양이 한번 깜박거리는 것으로 인류는 한순간에 전멸해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햇빛은 우리 모두를 똑같이 비춘다. 또 우리 영화의 엔딩이기도 하고. 사실 그 타이틀을 계속 고수하는 데에는 복잡한 절차가 따랐다. 동명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의 저작권자에게서 사용허가를 받아야 했다.
-영화의 영상 스타일에 대해 설명해달라. =대니 보일: 태양의 거대한 힘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화 내내 색 사용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우주선 안은 푸른색과 회색 톤으로 붉은 톤이 철저히 배제되다가 서서히 태양에 가까이 갈수록, 위험에 가까이 갈수록 오렌지빛, 붉은빛이 화면을 차지하기 시작해 끝에 가서는 붉은빛으로 넘쳐나게 된다.
-배우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비결은. =대니 보일: 감독은 배우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여건들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나쁜 연기는 나쁜 시나리오나 잘못된 연출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배우는 어떻게 보면 실오라기 한올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테이블에 올라서 관객을 향해 “자,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자신을 내보이는 사람들이다. 그 점을 늘 유념하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과 편집으로 잘 마무리되어야 연기가 빛을 발한다.
-영화가 끝나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영화의 엔딩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본다면. =대니 보일: 결국 본질은 과학과 신에 대한 논쟁이다. 말 그대로 폭탄 안에 서서 폭탄을 터뜨리려고 하는 인간인 주인공은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가 자신의 우주를 바꿀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엔딩은…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캐릭터의 어떤 면이 끌렸나. =킬리언 머피: 그가 내향적이고 외톨이며, 한눈에 호감이 가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이 좋았다. 실제의 나는 수학과 과학에 영 젬병이다.
-영화를 보니 감회가 어떤가. =킬리언 머피: 며칠 전에 처음으로 완성본을 봤다. 무척 지적인 영화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이다.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크리스 에반스: 뭐랄까, 공중에 수많은 공을 띄우며 공을 돌리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표면적으로는 죽어가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임무가 최우선 과제이지만, 그들 내면적으로는 스스로의 자아와 맞부딪혀야 했다.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지를 깨닫지만, 동시에 그 미약한 존재인 자신이 온 인류를 구원해야 하니까. 연기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역할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는 편인가. =크리스 에반스: 먼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캐릭터의 모델이 될 사람을 찾는다.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물을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은 알고 보면 너무나 복잡하고 섬세한 존재들이지 않나. 그 세부적인 디테일들을 무에서 창조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명을 선택해서 연구한다. 그러고나면 사실 연기의 반은 이미 먹고 들어간다. 이번 캐릭터는 우리 아버지가 그 모델이었다. 아버지와 메이스는 서로 다르면서도 그만큼 비슷한 점이 많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매사에 너무나 분명하고 그래서 건조하기까지 한 성격이다. 양심적인 면에서나 도덕성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다. 조금의 허영심도 보이지 않으신다.
-영화 끝나고 달라진 점이 있나. =로즈 번: 과학은 어떤 의미에서 또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또 다른 언어라고 할까. 삶의 경이, 존재의 경이에 대해 질문으로 가득 찬 그런 것.
-자신은 무엇에 매료된다고 생각하나. =로즈 번: 내게는 인간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만큼 경이로운 것이 없을 것 같다. 특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무한한 가능성 말이다.
-바로 전작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피아 코폴라와 <선샤인>의 대니 보일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극과 극이었다고 하는데 어땠나. =로즈 번: 둘은 정말 다르다. 소피아는 내성적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는 모든 것이 즉흥 연기였다. 소피아는 시나리오 없이 우리에게 캐릭터가 할 만한 행동이나 대사를 해보라고 완전히 열어준다. 어떤 의미에서 배우에게 최고의 자유가 주어지는 셈이다. 반면 대니는 성격도 완전히 반대다. 그는 외향적이고 무척이나 열정적이다. 그리고 그의 열정은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 그는 뭐랄까… 마법사 같다. 시나리오에 대한 접근 자세도 소피아와 180도 다르다. 대니는 주어진 시나리오의 대사를 완벽하게 따르기를 원한다.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
-나약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어떤가. =트로이 개러티: 영웅을 연기하는 것은 쉽고 재미있는 데 반해 약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나약한 인물이 좋은 신을 만든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연기한 하비는 지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을 몹시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가족과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그는 막상 그 예상이 빗나가자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종교 커뮤니티와 과학 커뮤니티가 대립하기도 하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트로이 개러티: 눈을 감는 죽음의 순간이 되기 전까지는 그러한 의견의 대립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 다 나름의 자아의 표현일 뿐이다. 다른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지.
-연기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트로이 개러티: 대니는 내가 죽는 그 장면에서 스턴트맨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6시간 동안, 그들이 불과 몇 십분 전에 고안해낸 기구에 의존해서 30피트 높이의 폴에 매달려서 몸을 그대로 고정시키고 있어야 했다. 대니는 “무중력 상태니까 움직이면 안 돼!” 라고 소리쳤다. 나는 강철로 이루어진 기저귀 모양의 기구를 내 고환 주위에 둘러 몸을 지탱해야 했다. 어쩌면 나는 평생 아이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웃음)
-모든 캐스트가 기숙사에서 합숙 훈련을 했다고 했는데 어땠나. =트로이: 아주 작은 기숙사였고, 아주 작은 일인용 침대에 아주 작은 창문이 하나 있었다. 학생들의 자살 기도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작은 창문을 볼 때마다 더 기분이 우울해졌다. 그런데 실상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돌아오자마자 곯아떨어졌던 것 같다.
-우주선 멤버들의 정신상태를 점검하는 의사 역이었는데, 태양을 바라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클리프 커티스: 그렇다. 그의 태양에 대한 집착은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죽어가는 태양을 다시 살리는 것,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태양을 다시 살릴 권리가 있는 것일까라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내가 미쳐가는 것일까, 아니면 신에게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대답은. =클리프 커티스: 대답은 바람에 떠다닐 뿐.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