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베를린이나 칸에서 가장 흥미로운 아시아영화는 본영화제가 아닌 마켓에서 발견된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공식적으로 출품된 여러 편의 한국영화 외에, 마켓에서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미녀는 괴로워>나 <바람피기 좋은 날>처럼 흥미진진한 영화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마켓에서 단 1회 시사를 가진 대만과 한국의 공동제작 영화 <6호 출구> 또한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6호 출구>는 타이베이 젊은이들의 메카인 시멘딩을 배경으로 한 청춘드라마다. 대만 수도의 20대들은 마치 일본의 20대들이 시부야나 신주쿠보다는 긴자를 선호하듯, 약간 동쪽으로 위치해 있는 상대적으로 럭셔리한 쇼핑지구 시멘딩을 더 선호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그 시멘딩 구역에서도, 타이베이의 주요 영화 트레일러들이 펼쳐지는 비디오 전광판과 대만의 가장 오래된 영화 스튜디오 사무실들 바로 아래 있는 주요 만남장소로 나가는 지하철 출구를 의미한다. 한때 대만 영화관람 문화의 활발한 심장부였던 시멘딩은 지금도 여전히 타이베이에서 극장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자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지금은 디지털화된) 스크린들을 보유한 곳이기도 하다.
<6호 출구>의 한국 투자사는 매니지먼트사로, 18살 생일을 앞두고 환상적인 시멘딩의 하위문화를 맛보기 시작한 순진한 (한국인) 십대 역할에 자사 소속의 신인 배우 유하나를 출연시켰다. 매니지먼트사는 철저히 십대 관객을 겨냥한 호감있고 매력적이며, 유하나를 스타로 만들어줄 멋들어진 장면까지 포함된 이 영화를 통해 투자한 돈만큼의 가치를 충분히 뽑아낼 것이다. 이 영화는 <애정영약>(Better Than Sex)과 <열일곱살의 하늘>(Formula 17) 같은 대만 코미디의 전통을 따르고는 있지만, 그 작품들을 마니아 성향의 고전으로 만든 반권위주의적인 날카로움(<애정영약>)이나 퀴어영화적 감수성(<열일곱살의 하늘>)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든 영화다.
그러나 한국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6호 출구>은 <애정영약> 이후 가장 “일본적인” 대만영화다. 다큐멘터리영화 <점프 보이즈>를 만들었던 린유시엔 감독은 유키사다 이사오의 <고>, 오타니 겐타로의 <나나>, 소노 시온의 <자살클럽> 등의 영화로부터 인용들을 끌어옴으로써 자신이 일본영화의 팬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간 대만 관객은 한국의 영화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대만의 영화제는 일본과 프랑스영화들로 가득하고 타이베이의 유일한 해적판 DVD 상점은 한줌의 한국영화들을 제외한다면 모조리 일본에서 수입된 작품들로만 넘쳐난다.
<6호 출구>는 사실 한국과 대만 영화사간의 첫 합작품이 아니다. 10년 전 대만감독 왕샤우디는 자신의 영화사인 라이스 필름과 한국의 플러스원 애니메이션간의 합작으로 <또또와 유령친구들>을 만들었다. 곽재용은 대만 금마장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가 다재다능한 촬영감독 진정창의 작품을 보고는 현재 진행 중인 <무림 여대생>에 기용했다. 몇몇 대만 스타들은 한때 한국을 주요 수출시장으로 누렸으며 한국 영화에도 직접 출연하기도 했는데, 특히 서기는 <조폭마누라3>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었고 오천련 역시 제작이 무산된 이승수 감독의 스파이스릴러 <비너스>에 캐스팅된 적이 있다.
베를린 황금곰상 수상작인 중국 영화 <투야의 결혼>의 국제 배급은 열의를 가지고 배급권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가를 지불한 한국 회사가 맡았다. 중국은 지난 2006년에 330편의 장편영화를 제작했으나 그것들을 세계적으로 소개할 만한 전문적인 배급사를 갖고 있지 않으며, 대만의 사정도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5년에 촬영된 <투야의 결혼>은 걸작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유럽시장에도 수출될 만큼 주연들의 강렬한 연기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영화다. 한국의 영화업계(투자사와 배급사들)와 중국어권 영화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둘 사이에 더 많은 연애가 지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