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서사와 서정에 그쳤다면, 이 위대한 소설의 가장 뛰어난 영화적 해석은 라울 루이즈의 <되찾은 시간>이었을 게다. 그러나 한해 뒤, 샹탈 애커만의 <갇힌 여인>이 한 남자의 심리의 가장 아래 층위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묘사하면서 프루스트 해석의 또 다른 기적을 이뤄냈다. 애커만 영화에서는 여성들이 종종 공간 안에 갇혀 있으며(그녀는 자기 영화를 ‘아파트 영화’라 부른다), 그들이 공간 사이를 계속 이동한다는 점에서 <잃어버린…>의 5편인 <갇힌 여인>은 그녀에게 아주 적합한 소재가 된다. 그런데 갇힌 여인의 시몬(소설의 마르셀)은 아리안느(소설의 알베르틴)를 물리적 공간은 물론 자신의 머릿속에 감금하고자 한다, 감히! 그는 말한다. ‘나는 네가 뭘 생각하는지, 네가 누구인지, 뭘 숨기고 있는지 알고 싶어. 말해줘.’ 그녀의 대답은 간단하다. ‘생각한 게 있어야 말하지.’ 아리안느에 대한 시몬의 집착과 강박증을 두고 일부 평자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과 연결짓곤 한다(애커만은 <갇힌 여인>을 찍기 전 <현기증>을 다시 봤으며, 어느 정도의 영향도 인정한다). 그러나 게임을 벌이고 있는 여자를 추적하는 <현기증>의 스카티와 자유로우며 멈춰 서지 않는 여자에게 집착하는 시몬은 본질적으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시몬은 아리안느를 품에 안고 있을 때조차 그녀 영혼의 한줄 실오라기도 소유하지 못한다. <갇힌 여인>을 잇는 6편의 제목은 <사라진 알베르틴>이며, 소설의 마지막에서 마르셀은 ‘그렇다, 이제야 이별할 때이다’라고 생각한다. 영화 <갇힌 여인>은 시몬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아리안느를 떠나보내야 했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DVD는 화질 편차가 큰 게 단점이지만, 애커만의 <카우치 인 뉴욕>을 재평가했던 평론가 도미니크 파이니와 애커만이 나눈 대화(27분), 여배우 실비 테스튀와의 인터뷰(9분) 등 실속있는 부록이 아쉬움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