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의 진동음이 음산하게 울리는 가운데, 아름다운 여성이 넋나간 얼굴을 하고 알 수 없는 노래를 읊조린다. “거기 털 많은 창녀야, 너랑 하도 심하게 해서 내 거시기가 너무 아파.”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발 아래로 왈칵 양수가 쏟아진다. 헐떡이는 숨소리는 세탁기 소음에 묻히고, 곁에서 다림질을 하던 여자는 무심하게 다가와 바닥을 훔칠 뿐이다. <천국의 나날들>의 오프닝은 이 영화가 결코 제목에 부합하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으리란 걸 예고한다. 헝가리영화인 <천국의 나날들>은 2002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은표범상 수상을 비롯, 유럽의 각종 영화제의 이목을 끈 작품이다. 이 영화를 통해 서른살의 코냐 먼드루샤 감독은 동구권영화의 대표적인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방금 감옥에서 나온 피터(토마스 폴가)는 누이 마리카(카타 웨버)가 운영하는 세탁소를 찾는다. 그곳에서 피터는 막 아이를 낳으려는 마야(오르소냐 토스)를 발견한다. 마리카가 태어난 아기를 3천유로에 사들이는 장면을 훔쳐본 피터는, 어딘가 상처입은 듯한 요염한 눈빛의 마야에게 점점 매혹된다. 피터는 그녀의 정부의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하고, 두 사람의 섹스를 훔쳐보거나 그녀의 집에 숨어들며 곁을 맴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마야에게 손찌검까지 하게 된 피터는 그녀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를 알게 되면서 더 깊은 고통에 시달린다.
<천국의 나날들>의 남자들은 시종 여과없는 유아성을 드러낸다. 친구와 페니스 크기를 재며 킬킬거리는 피터는 아직 폭력의 스킨십과 애정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여성이란 어리광의 대상과 욕정의 대상, 둘 중 하나일 뿐이다. 피터와 마리카는 함께 목욕을 하며 성인 남매로서는 부자연스런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감독은 분명한 내러티브나 구체적인 상황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다리 사이로 머리를 내미는 피묻은 아기나 부어오른 음부 같은 충격적인 장면을 감정없이 응시할 뿐이다. 인물들은 자신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다만 침묵하거나 불가해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인물들의 어긋난 관계와 피폐한 비전이 절제된 연출로 제시되지만, 단 하나 절제되지 않은 건 갈수록 심화되는 주인공들의 불편한 치기다. 절망이 극에 달하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 예상 가능한 수순에 해당하는데, 남성들은 자신의 좌절을 폭력으로 표현하고 여성은 그에 희생당할 뿐이라는 익숙한 풍경이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