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과연 미녀가 괴로울까. 600만 관객을 유혹한 <미녀는 괴로워>는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를 사뿐히 뛰어넘어 한국영화 역대 흥행순위 8위에 그 자태를 아로새겼다. 개봉 8주차에도 여전히 박스오피스 중위권을 달리고 있을뿐더러 흥행순위 7위인 <타짜>의 성적에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니 미녀의 하이힐이 마법 구두는 아니었을까 내심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S라인 미녀’ 제니로 변신해 달콤한 해피엔딩을 맛봤던 한나처럼 당시 캐스팅 후순위였던 김아중은 현재 애타는 러브콜의 중심에 섰다. 외모의 변화로, <미녀는 괴로워>의 성공으로 두 미녀의 인생은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깜깜해질 만큼 바뀌었지만 그 아래 감춰진 그들의 마음은 한결같지 않았을까.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미녀는 괴로워> 열풍의 주인공인 김아중을 만났다. 비비안, 오휘, 롯데 칠성 등과 CF 계약을 연장했다는 사뭇 들뜬 어조의 기사들과 달리 그녀는 ‘충무로의 블루칩’, ‘떠오르는 흥행배우’ 따위의 수식어 세례에도 무덤덤했다. 오히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예전 출연작과 앞으로의 포부를 입에 담으며 더욱 기꺼운 미소를 지었다. “인터뷰는 재미있지만 나중에 기사를 읽으면 고통스럽다”던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여러 번 발뺌하면서도 <미녀는 괴로워> 전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즐거운 미녀, 김아중과의 대화를 여기에 옮긴다.
-<미녀는 괴로워>가 큰 성공을 거뒀는데 소감이 어떤가. =주위에선 다들 좋아하는데 정작 스스로는 모르겠다. 300만명이면 어떻고 500만명이면 어떤지 체감하기 힘드니까. 첫 주연작이 너무 흥행해서인지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근래 김아중에게 시나리오가 쏟아진다는 소문이 있더라. =아직 손에 들고 읽어본 작품은 없지만 많이 찾아주시는 듯하다.
-어떤 감독과 일하든 시나리오는 직접 보고 고르겠다고 말했다. =그 기사를 읽고 내가 무척 당돌하게 느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사실 어떤 기자분이 대다수의 배우들은 박찬욱 감독님, 김지운 감독님 같은 톱 감독님들이 함께하자고 하면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하겠다고 하던데 나도 그러겠냐고 물어보더라.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시나리오는 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기사가 실제 대답보다 조금 강하게 나간 셈이다.
-성형설에 시달렸다는 점에선 <미녀는 괴로워> 출연이 용감한 선택인 것도 같은데. =예전에는 졸업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안타까워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성형을 하든 안 하든 본질적으로 바뀌는 건 없다. 진실은 통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했고 연기자의 삶 역시 그렇다. 여배우에겐 제약 조건이 많지만 그것들에 휘둘리냐 마느냐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가수 데뷔를 준비하다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들었다. 어떤 생각으로 가수 데뷔를 꿈꿨나. =연예인이 되고 싶었고 춤도 워낙 좋아했다. 당시로선 굉장한 프로젝트였다. 성룡이 투자한 최초의 한국 자회사였는데 홍콩, 중국, 일본을 오가는가 하면 홍콩과 일본에서 곡을 받기도 했다. 성룡의 프로덕션에 소속된 배우들이 뮤직비디오에 참여하겠다고 했고. 참고로 그 프로덕션에는 금성무씨도 있었다.
-굉장히 속상했겠다. =그랬다. 학교도 그만뒀으니까.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었는데 적응도 못했을뿐더러 회사에서 앨범 준비를 해야 하니까 나중에 다니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 경험이 이번 영화 작업에 도움이 됐겠다. =그때는 정말 힘들게 녹음 작업을 했기 때문에 무대만 봐도 뛰어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촬영하면서 당시 느낌을 되살렸다.
-연기로는 어떻게 방향을 전환했나. =재수를 하던 중에 고민하다가 연극영화과를 선택했다. 음반 준비하면서도 노래와 연기를 병행할 생각이었다.
-영화 <어깨동무>로 연기에 처음 도전했다. =무지하게 노력했다. 몇줄 안 되는 대사를 계속 펜으로 체크하면서 연구하고 분석했는데 그래도 형편없었다. 기술시사 보고 펑펑 울었다. 아, 내가 저것밖에 안 되나 뼈저리게 느꼈다.
-연기자들은 드라마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점에서 조금 독특한 출발이었다. =영화로 데뷔하고 싶었다. 우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또다시 음반을 준비할 마음은 없었다. 드라마도 분명 있었지만 호흡이 빨라야 하니까. 영화로 데뷔하면 그래도 차근차근 배우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김아중이란 이름을 알린 건 짝짓기 예능 프로그램이 아닌가. =그러니까 말이다. (웃음) 하다하다 안 돼서 나는 재목이 아니라는 생각에 그만두려던 차에 짝짓기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예능 프로그램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가수 비와 커플이 되는 바람에 안티팬들도 생겼다. =내가 출연했던 시기에 비씨가 바로 그 프로그램으로 컴백했다. 사실 컴백만 해도 큰 이슈인데 나랑 파트너까지 되니까 팬도 없는데 안티카페가 7개나 생겼다. 그 다음주에 현빈씨, 그 다음주에 김종국씨의 파트너가 됐고 3주 동안 네이버 검색순위 1위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몇신 안 나오지만 그렇게 열심히 했던 영화는 사랑 못 받아서 처참하게 외면당하고. 참 달콤쌉쌀했다, 그때. (웃음)
-방송사 PD들이 대부분 ‘센 인상이다’, ‘눈꼬리가 너무 올라갔다’고 평가했다던데 <별난 남자 별난 여자>에선 시집 가서 아이까지 갖는 다소 의외의 캐릭터로 출연했다. =종남이는 고아에 산전수전 다 겪은 털털한 아이다. 많은 분들이 아중이에겐 콧대 높고 도회적인 역할이 더 어울리지 않겠냐고 그러셨다더라. 그런데 막상 부츠 신고 카고 바지에 머리를 하나로 묶고 오토바이 타는 극중 모습을 보시곤 그것도 괜찮다고 하시더라.
-극중 임신한 모습으로 웨딩드레스까지 입었는데 그러고보면 분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드라마 <해신> 속의 모습도 어떻게 보면 분장이잖나. 진짜 그런가보다. (웃음) 분장과 뭐가 있나.
-드라마 데뷔작인 <해신>에는 어떻게 출연했나. =오디션을 봤다. 네이버 검색순위 1위를 계기로 미팅을 가졌고 배역을 맡았다.
-<해신> 출연으로 얻은 게 있다면. =정말 어머니 같은 작품이다. 최수종 선배님과 채시라 선배님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많이 배웠다. 그리고 굉장히 춥고 배고프고 졸렸다. 춥고 배고파서 운 건 난생처음이었다. 무사 역할이라 날렵해야 했고 액션신도 소화해야 해서 옷을 많이 못 입었다. 말도 타보고 불화살도 쏴봤다.
-원래 몸을 쓰는 데 일가견이 있나. =그런가보다. 액션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당시 완도에는 극장이 없었다. 숙소 내려가면 할 일이 없어서 배우들끼리 칼싸움을 하면서 놀았다.
-누구랑 그렇게 칼싸움 대련을 했나. =아무래도 우리 독수리 오형제. 최수종 선배님, 이원종 선배님, 흥수씨, 그리고 도기석씨.
-<어깨동무> 이후 10개월 동안 연기 활동을 못했으니 <해신> 촬영하며 무척 신났을 것 같다. =너무너무 신났다. 9회부터 출연한다고 들은 이후로 대본이 나올 때까지 진짜 매일 기다렸다. 아, 드디어 드디어 나도 나오는구나, 신나서 완도에 내려갔는데 내 촬영분이 그거더라. 3분간 7명의 산적과 열심히 싸우다가 모두 해치우고 채정안 선배님이 내리는 지시에 ‘네’라고 한마디로 대답하는. (웃음) 그래도 재미있었다.
-‘S라인 미녀’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듣는다. =그런 이미지를 부각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무계획. (웃음) 그런데 운좋게 출연한 작품이나 광고마다 이슈가 됐다. 왜, 가만히 있어도 시끄러운 아이가 있지 않나. 그런 팔자가 아닐까. 가만히 있어도 미움받을 땐 미움받고 잘하면 잘한다고 많이 칭찬해주시는 듯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이어트를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계기로 그랬는지 궁금하다. =길거리에서 잡지 모델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당시 57kg으로 그렇게 뚱뚱한 몸매는 아니었는데 어쨌건 그 사이즈로는 패션 모델을 못한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살을 뺐다.
-요즘에는 몸매 관리에 더 힘쏟을 것 같다. CF도 그렇고 S라인 미녀 이미지가 워낙 확고하니까. =생각보다 진짜 그렇지 않다. 왠지 피부관리실에 없으면 미용실에 있을 테고 미용실에 없으면 성형외과에 있을 테고. (웃음) 내가 그런 캐릭터로 보여지지 않나. 사실은 전혀 아니다.
-2006년 개봉작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영화들로 <가족의 탄생> <달콤, 살벌한 연인> <천하장사 마돈나>를 꼽았다. =특히 <가족의 탄생>은 뭔가 하나씩 부족한 사람들이 지렛대처럼 서로 기대어 산다는 설정이 좋았다. 사실 공효진씨 나오는 부분에서 굉장히 많이 울었다. 공효진씨 캐릭터는 가장 현실적인 듯하지만 한편으론 또 그 사람만한 로맨티스트가 없다. 하나하나 내뱉는 말들도 그렇고 나랑 너무 닮았다.
-영화 보면서 잘 우는 편인가. =그렇긴 한데 의외로 멜로영화에는 강하다.
-무한경쟁인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전략이 있다면. =글쎄, 원래 그렇게 계획적이고 전략적이지 않은데 그래도 하나 있다면 이런 거다. 연기자는 이미 존재하는 대본과 시나리오를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우체부와 비슷하다. 연기자로서 내가 전하는 편지가 감동적이어서 관객이 두고두고 간직했으면 좋겠다.
-“모험을 하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할 위치”에 있어서 <미녀는 괴로워>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런 모험에 다시 뛰어들 마음은 있는지. =나는 소극적인 A형이라 모험을 두려워하지만 돌아보면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됐다. 정면 승부를 하는 대신 그렇게 모험이 필요한 영화라면 감독님과 충분히 상의하고 싶다. 어떤 영화 리뷰에 따르면 여배우와 남자감독의 조합은 남자배우, 남자감독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더라. 예의, 친절, 규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에 작품을 두고 소통하는 걸 포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인이라 그런 게 아예 없었던 것 같다. 처음에 김용화 감독님을 뵙고 그랬다. ‘다른 배우에게 5분간 디렉션을 내리신다면 저한텐 15분 투자해야 하실지도 몰라요. 어떤 배우분은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다고 하시지만 저는 숟가락을 올려놔도 못 떠먹을지도 몰라요.’ 그만큼 나에겐 나를 이끄어줄 사람이, 감독님에겐 신뢰하며 따라줄 배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연기자로서 고비 하나를 넘겼다는 느낌이다. =이제 고비가 오는 거 아닌가.
-어떤 면에서 그런가. =어디다 짜맞추든 정말 쓸모있는 배우가 나왔다고 인정받으려면 다음 작품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앞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은 있는지. =내가 꼽은 2006년 톱3 영화를 만드신 감독님들은 모두 좋다.
-특별히 한분만 꼽으라면. =이해영, 이해준 감독님.
-그분들 영화라면 김아중이란 배우의 이미지와도 잘 맞을 듯하다. =(갑자기 기뻐하며) 역시 그렇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