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윌 스미스의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홈리스에서 백만장자 증권 브로커가 된 크리스 가드너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뤘다. 말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의 장본인이다.
스미스는 이 작품에서 본래의 장난기 많고, 스타일리시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흰머리가 간간이 보이는 짧은 ‘아프로’ 헤어스타일에 얼굴 절반을 가릴 만한 뿔테 안경도 쓰고 나온다. 의학기구 세일즈 상품에 잘못 투자해 돈도 잃고, 아내도 잃고, 집도 잃은 크리스를 연기한 스미스는 이 때문에 작품 전반에 걸쳐 5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홈리스 셸터를 전전하고, 지하철 화장실에서 자는 등 눈물나게 힘겨운 생활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찢어지게 고생하는 모습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말연시 들뜬 기분이 느껴지던 지난해 12월15일 개봉한 이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2월4일 현재 미국 내에서 1억5735만1천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고, 세계적으로는 2억550만3978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일간지 <뉴욕포스트>가 “브리프케이스를 든 록키”라고 표현한 <행복을 찾아서>는 주로 가벼운 코미디 연기로 알려졌던 스미스에게 영화 <알리>에 이어 연기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물론, 흥행 배우로서의 입지도 다시 한번 확고하게 다지게 해주었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한 평론가는 스미스를 “할리우드의 모던 캐리 그랜트”라며, 어떤 역할을 맡아도 편안함을 주고 정감이 간다고 평했다.
홈리스 아빠의 눈물겨운 성공담
80년대 샌프란시스코. 새로 나온 의학기기 세일즈에 얼마 안 되던 전 재산을 투자한 크리스는 이 기계의 기능이나 비싼 가격 때문에 외판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한달에 1개 팔기도 힘들지만 동분서주하는 크리스. 그동안 아내 린다(탠디 뉴튼)는 막노동 직장을 두곳이나 다니며 일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제 습관처럼 계속되는 크리스와의 부부싸움 끝에, 5살짜리 아들 크리스토퍼(제이든 스미스)를 데리고 친척이 있는 다른 주에서 새롭게 시작을 하고 싶다며 결별을 선언한다. 그러나 어릴 적 아버지한테 버림받았던 크리스는 자신에게 한 약속이 있었다. “절대로 내 아이를 버리지 말자.”
결국 아들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시작한 크리스는 우연한 기회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엘리트 증권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알게 된다.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두뇌가 명석하고, 늘 반듯한 모습이 눈에 띄던 크리스는 이 증권회사에서 6개월간의 훈련기간을 거쳐 단 한명을 선발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뽑혀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6개월간 전혀 월급이 없다는 것.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크리스와 아들. 당장 잠잘 곳도 없지만, 아들에게 좀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어 인턴십을 시작한다. 수입이 없어진 이들은 문을 열자마자 꽉 차버리는 홈리스 셸터에 들어가기 위해 늘 뛰어다녀야 했고, 셸터가 안 될 경우에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숨어 자기도 한다. 늘 짐을 들고 다녀야 하는 크리스를 보고 증권회사 직원들은 “주말에 어디 놀러 가요?”라고 묻는다. 술 취한 사람들이 잠긴 화장실 문을 발로 걷어찰 때, 잠든 아들의 귀를 가리고 크리스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아들을 화장실 세면대에서 목욕시키며, 또다시 세상으로 나선다.
크리스 가드너의 이야기는 2003년 <ABC> 뉴스 매거진 프로그램 <20/20>에 보도되면서 미 전국에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던 프로듀서 마크 클레이맨은 너무도 감동한 나머지, 크리스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고. 문제는 방송 뒤 클레이맨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TV, 영화 관계자들이 연락을 했고, 대부분이 황당한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실제 크리스 가드너는 “마크가 전화하기 전 한 TV프로듀서가 연락을 했었다.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리얼리티쇼를 하자더라. 나보고 심사위원이 되어서, 우승자에게 직업도 주고, 집도 사주고, 상금도 주는 쇼라고. 너무 화가 나서, 미국 내 홈리스 실정은 게임쇼가 아니다라고 소리를 질러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상당히 회의적인 상태에서 클레이맨의 전화를 받은 가드너는 그의 진지함과 정직함이 마음에 들어 동의를 하게 됐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영화 <아이, 로봇>을 촬영하던 중 <행복을 찾아서>를 제안받은 스미스는 24시간 뒤 오케이 사인을 했고, 이후 영화 <웨더맨>을 쓴 스티븐 콘래드가 각본을 담당하고, <리멤버 미> <라스트 키스> 등으로 알려진 이탈리안 감독 가브리엘레 무치노가 연출을 맡게 됐다. 스미스를 비롯한 프로듀서들이 무치노가 감독을 맡는 것을 만장일치 동의하게 된 이유가 이었다고 한다. 무치노 감독은 “미국인으로서, 당신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한다. 진정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본질을 절실히 느끼려면, 당신은 외국인이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윌 스미스, 친아들과 함께 연기
<행복을 찾아서>는 한 미국인의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전 세계적인 이야기가 맞다. 홈리스 현상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작품은 부자간의 사랑을 다룬 ‘여자없는’ 러브 스토리다. 이들 부자간의 관계는 역할을 맡은 윌 스미스와 제이든 스미스가 실제로도 부자지간이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지 않았을까.
실제 관계를 영화 속으로 가져왔다는 윌 스미스는 “코트와 책가방을 내려놓는 것도 우리만의 시스템이 있다. 제이든은 늘 손을 위로 들고 빙글빙글 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사를 할 때도 자연스럽게 입술에 키스를 해준다고. 이 모든 것이 영화에 스며들어갔다. 스미스는 “다른 아역배우와 연기했으면, 이렇게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패라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크리스 가드너. 그 역시 포기할 생각을 했었다. “단돈 18달러가 없어 전기가 끊어졌을 때, 촛불을 켜고 아들을 목욕시키면서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들의 “그거 알아?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야”라는 한마디 때문에 용기를 찾게 됐다고. <행복을 찾아서>의 한 프로듀서의 말처럼, 어떤 슈퍼히어로는 실존하는 것 같다. 가드너뿐만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희생을 아끼지 않는 모든 부모가 진짜 슈퍼히어로가 아닐까.
"윌 스미스이즘을 깰 수 있었다"
크리스 가드너 역의 윌 스미스 인터뷰
-이제 코미디 연기는 줄이려고 하나. =나한테 코미디는 자연적인 본능이다. 그렇지만 한 장르에 얽매이고 싶지는 않다. 미국에서는 가을에 아카데미를 겨냥해 개봉되는 영화들을 ‘좋은 영화’라고 말한다. 여름영화는 ‘팝콘영화’라고 하고. 하지만 난 이들이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겸비한 하나로 말이다. <글래디에이터>나 <포레스트 검프> 등을 보면 CGI와 예술적인 연기가 어우러져 있지 않나. 지금 준비 중인 <아이 앰 레전드>도 그런 영화다.
-가브리엘레 무치노 감독과 작업은 어땠는지. =<알리> 때 마이클 만 감독처럼 무척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 두 감독은 ‘윌 스미스이즘’(즉 나만의 고정 이미지)을 깨트려주었다. 가브리엘레가 한번은 (이탈리안 악센트를 흉내내며) “너 내 카메라 보고 포즈 취하고 있잖아. 아픈 것처럼 얼굴 표정을 지으려고 하네. 저리 가서 진짜 아픔이 느껴질 때 다시 와”라고 호통을 쳤다.
-친아들과 함께 연기하니 어떤가. =제이든이 아니었으면, 작품 속에서 실제로 자연스러운 에너지가 느껴지기 힘들었을 것 같다. 특히 아들이 사람들의 감정을 실제로 이해하기 때문에 극중에서 우는 장면들은 모두 진짜다. 아내도 나도 연기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참 희한하게 잘하더라. 우리 둘이 한 거라곤 멕시코에 가서 데킬라 마신 것밖에 없는데. (웃음)
-아들이 계속 연기를 할 예정인지. =솔직히 제이든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속았다고 생각했을 거다. 내 영화 <맨 인 블랙>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와 시트콤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에어>를 봤었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영화는 다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전혀 아니었거든. (웃음) 당분간 쉰 다음에 코미디나 가라테 영화에 출연한다고 할 것 같다.
-극중 주인공이 겪은 어려움이 많은데 언제가 가장 힘들었을까? =아마도 사람들이 문을 시끄럽게 두드리던 지하철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 잘 때가 아닐까 한다. 나라면 그때 무너졌을 것 같다. 그런데 크리스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싱크대에서 아들을 목욕시키고 또 하루를 시작했다. 생각만 해도 너무 존경스럽다.
-당신에게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음식과 셸터, 그리고 약이다. 나머지는 더 큰 보호지역(bigger buffer zone)을 만들어줄 뿐이다. 돈은 그런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음악을 계속할 생각인지. =17살짜리 조카가 랩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는 조카가 가족 대표로 노래할 거다. (웃음) 난 이제 그만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