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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베를린, GO, 이스트!

아시아 영화에 대한 진정한 이해 보이기 시작한 베를린 영화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2월8∼18일)는 “아시아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에서 칸영화제 다음 두 번째로 크고 풀서비스를 제공하는 베를린영화제에서 해마다 상영되는 150편 정도의 최신작과 최근작 중 21편이 아시아영화들이며, 그중 9편은 월드 프리미어다. 비록 아시아영화가 1950년대 초부터 유럽영화제에서 상영되긴 했지만 베를린은 서구에서 아시아영화를 가장 일찍이 꾸준하게 옹호해왔던 영화제이며, 장이모의 <붉은 수수밭>이 중국영화로는 처음으로 1988년 황금곰상을 타면서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영화제는 1993년 중국영화(시에페이의 <향혼녀>)와 대만영화(리안의 <결혼피로연>)에 황금곰상을 공동수여함으로써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전반에 이르기까지 주목할 만하게 베를린이 아시아영화를 옹호한 것은 어느정도 당시 집행위원장이었던 모리츠 데 하델른 위원장의 전략적인 움직임에 기인한다. 동유럽에서 정치적 긴장 완화가 이뤄지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늘 동유럽영화(특히 금지된 것이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화제작들)의 플랫폼이 됐던 베를린영화제는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 최전선의 분단도시였던 베를린은 그저 유럽의 또 다른 대도시나 마찬가지가 될 것 같아 보였다. 아시아영화에 대한 공감을 분명 지니기도 했지만 데 하델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덤벼들었던 것이다. 그의 조치는 또한 영화제의 다른 섹션들, 특히 울리히와 에리카 그레고르가 한때 진행했던 진보적인 포럼부문에서 오랫동안 아시아에 대해 지녔던 관심을 보완하기도 했다.

노만 왕과 같은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은 데 하델른의 조치는 더이상 동서로 나뉘어 있지 않은 유럽에서 종잡을 수 없었던 1990년대를 베를린이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영화관료였으며 상대적으로 유럽 중심적인 새 집행위원장 디이터 코슬릭이 2002년 영화제를 인계했을 때, 이런 기반은 얼마간 사라져버렸다. 코슬릭이 아시아를 무시했다기보단 그쪽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얼마간 부산영화제의 단골 게스트였던 코슬릭은 지난해에는 베이징, 홍콩, 도쿄를 방문했으며 24시간가량 평양도 방문했다. 경쟁부문작으로 그가 선택했던 첫 영화 중 하나는 몽골을 배경으로 하는 장률의 <히야쯔가르>다.

영화제 전체에서 여섯편이 상영되는 한국영화는 베를린에서 돋보인다. 박찬욱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경쟁에 올랐으며, 그외 부문에 이윤기의 <아주 특별한 손님>, 이재용의 즐거운 <다세포 소녀>, 이송희일의 수작 게이영화 <후회하지 않아>, 홍상수의 노련한 <해변의 여인> 등이 들어갔다. 또한 일본, 중국, 홍콩, 대만,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 영화들 중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 니키 S. 리의 (그녀 자신에 대한) 영화가 상영되기도 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후회하지 않아>

그렇지만 비록 훌륭할지라도 이중 많은 것은 아시아영화의 포괄적인 그림을 제공하려면 멀었다. 지난해 최고의 한국영화로 손꼽히는 세 영화- 신동일의 뼈저리게 예리한 관찰을 보여주는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유하의 노련하고 확신있는 <비열한 거리>, 최동훈의 연기 쇼케이스 <타짜> 등이 보이지 않는다. 코슬릭은 또한 장이모의 <황후花>가 유럽 프리미어를 받을 수 있었지만, 받지 않기로 택했다. 심지어 <돈>(Don)도 꽤 흥겹긴 하더라도 지난해 최고의 발리우드영화라고 하긴 힘들다.

올해 베를린의 아시아영화에 박수를 보내자. 그렇지만 수많은 아시아의 중요한 영화들(이창동, 임권택, 장원, 구창웨이, 리안, 허우샤오시엔 등과 같은 감독의 것)이 이미 칸을 목표로 줄을 서기 시작한 가운데, 베를린엔 아직 겨룰 싸움이 남아 있다.

번역 조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