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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매그넘 사진작가 엘라이 리드
김도훈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7-02-14

사진작가 엘라이 리드가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목에 걸린 라이카 M8카메라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라이카 카메라는 비썩 마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손에 들려 있을 때조차 왜소한 기계지만, 엘라이 리드의 목에서는 카메라 모양의 펜던트처럼 가볍게 하늘거린다. 매그넘 사이트에 쓰여 있던 그의 애칭 ‘부드러운 거인’(Gentle Giant)은 그가 남긴 업적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진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가 창설한 매그넘(Magnum)의 멤버 엘라이 리드가 서울을 방문한 이유는 한겨레신문이 창간 20돌을 맞이해 기획하고 있는 사진집 <Present Korea>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프로젝트에 참가할 스무명의 매그넘 작가들은 저마다의 주제를 부여받았고, 엘라이 리드가 선택한 주제는 ‘엔터테인먼트’다. 로버트 알트먼, 존 싱글턴, 스파이크 리 등 할리우드 작가들의 현장에서 스틸작가로 일해온 그에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만큼 먹음직한 먹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엘라이 리드는 목숨을 걸고 베이루트와 니카라과, 수단의 내전 현장으로 뛰어들어온 ‘행동하는 포토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사회적 저널리즘과 엔터테인먼트라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개의 분야는 엘라이 리드의 뷰파인더 속에 같은 무게로 스며든다. 엘라이 리드는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씨네21>의 스튜디오에 들러 영화 <묵공>에 출연한 유덕화와 안성기의 표지 촬영현장을 카메라에 담는 한편, 이명세의 신작 <M>의 현장을 비롯한 한국 엔터테인먼트계의 맥박을 카메라에 담고 떠났다. 그가 방문한 기간 동안 서울의 기온은 디지털카메라의 배터리를 금세 방전시켜 날려버릴 만큼 지독했다. 하지만 엘라이 리드의 크고 두툼한 손은 카메라가 제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충분히 더운 기온을 전해줬을 것이다.

-한국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인상은 어떤가. =가본 적이 없는 장소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것은 대단한 영감을 안겨준다. 지구인들은 아빠와 엄마처럼 공통적인 것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지만, 나라에 따라 다른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화현장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롭다. 감독들은 예산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며 작업하기 때문에 현장은 세계 어디든 바쁘게 돌아간다. 사람들이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걸 지켜보는 건 어디나 재미있다.

-미국 영화현장과 한국 현장의 차이점이 눈에 쏙 들어왔을 텐데. =그거 사실은 대단히 어려운(Heavy) 질문이다. 글쎄. 뉴욕과 LA 영화현장의 차이점을 한번 말해볼까. 뉴욕 현장은 LA보다 좀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도대체 이 영화가 얼마나 돈을 잡아먹을 것인가, 도대체 예산에 맞출 수는 있을 것인가. 그런 고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더욱 영리하기도 하다.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주변에 한국 친구들이 좀 있는 관계로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사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을 때 오고 싶었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영화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관계로 불가능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얼마나 많은 촬영현장을 방문했나. =지난밤에는 이명세 감독의 <M> 촬영장을 방문했고, 도착한 첫날은 드라마 현장을 사진에 담았다. <M>의 세트디자인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건 그냥 세트가 아니라 액션이 흘러가기 위한 장소였고, 나는 그런 영화의 사이드 스토리를 읽을 수 있는 부분들을 좋아한다. 나는 영화를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영화의 내부로 들어가고 싶다.

-이명세 감독과 이야기를 할 기회는 충분했나. =조금. (웃음) 그는 너무 바빠 보였다. 그래서 말을 많이 걸어서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에 미국에서 작업한 영화현장은 어디인가. =이완 맥그리거와 나오미 왓츠 주연의 <스테이>에서 스틸작가로 일했다. 재미있는 일은, 영화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사진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봅 호스킨스는 무려 3대(!)의 라이카 카메라를 갖고 다녔고(웃음), 라이언 고슬링도 사진을 좋아했다. 이완 맥그리거는 당시 모터사이클로 세계 여행을 하기 직전이었는데, 내게 어떤 카메라를 가져가야 좋을지 물어보기도 했다. 사실 맥그리거는 영화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때 스틸작가가 사진 찍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는다. 나도 그걸 이해한다. 내가 배우라도 그럴 테지. (웃음)

-그렇다면, 혹시 스틸작가로 일하면서 가장 일하기 힘들었던 배우를 말해줄 수 있을까. =정당한 이유없이 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배우는 없다. 영화의 스타는 내가 아니라 그들 아닌가. 그들은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현장의 모두가 그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그래야 그들도 연기를 잘할 수 있고 나도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다만 존 싱글턴 영화 <로즈우드>에 출연했던 빙 라임스는 문제가 좀 있었지. 그는 사진 찍히는 걸 너무너무 싫어했으니까. 덤불 뒤에 숨어서 사진을 찍어야만 했는데 한번은 소리를 치더라고. “당신, 나 당신 보이거든. 거기 덤불 안에 숨어 있잖아! (웃음)” 하지만 존 싱글턴의 다음 영화 <베이비 보이>를 작업할 땐 완전히 달라졌더라. 클로즈업을 찍어야 하는데 망설이고 있으니까 “이리 와서 사진 좀 찍어줘!”라고 외치더라고. (웃음) 새뮤얼 잭슨과 일하는 건 재미있다. 그는 사진찍을 시간을 30초 주겠다고 말하는데, 그건 실상 15초를 의미한다. (웃음) 어쨌거나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거다.

-그나저나 배우들은 왜 그렇게 사진 찍히는 걸 두려워할까. =당신이 지나치게 세세한 트레일러를 본다면, 그것들은 본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조금 앗아갈 수도 있다. 스틸사진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최대한의 존경심을 품고 배우들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그 같은 일급 배우들과 일하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기 때문에 까다롭더라도 언제든지 일하고 싶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영화에 참가했나. =적어도 30편 정도. 그리고 아마도 15편 정도를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만 했다. 개인적인 작업으로 바쁠 때 들어오는 일은 거절할 수밖에 없다.

-가장 고생스러웠던 현장은 어디였나. =론 하워드의 <미싱>이었다. 멕시코 현장이었는데, 어찌나 외진 곳인지 첫날 점심 먹으로 가는 것조차 엄청난 하이킹을 요했다. 매일매일 하이킹을 반복해야만 했는데, 눈이 내리는데다가 ‘정말정말정말정말’ 추웠다. 게다가 9천 피트 고지대였던 관계로 숨도 하악∼ 하악∼ 다스 베이더처럼 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꼭 살아남고야 말겠어. 나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웃음) 나는 괜찮았다. 하지만 나보다 몸도 좋고 젊은 카메라 기사는 스테디캠 장면을 한번 찍고 나더니 응급실로 실려가버렸다. 영화란 게 때로는 목숨도 거는 거다. (웃음)

-당신은 매그넘 안에서도 매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작가 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스틸작업은 그것과 전혀 거리가 먼 세계처럼 들린다. =사진작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두편의 영화가 있다. 하나는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다. 피터 오툴이 언덕에 올라가서 다가오는 적들을 바라보는 장면 기억나나. 나 역시 그가 보는 것을 보고 싶었다. 결국 보고 말았지. 내전이 한창이던 베이루트에서의 어느 날 아침. 군인들이 라이플총을 들고 언덕을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으니까. 로켓은 매일 아침 8시30분만 되면 날아와서 터지고, 하늘은 구름으로 검게 물들고. 다른 영화는 코스타 가브라스의 <Z>다. 사건현장에 있던 사진기자가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냄으로써 정치 암살의 음모가 드러난다는 내용은 사진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두 영화는 내가 장래에 뭐가 되고 싶어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생각해봐라. 영화는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만약 네가 뭔가를 바르게 만들고 싶다면, 살고 있는 동안 그냥 지나쳐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영화는 (사회적, 정치적) 영감을 준다.

-왜 하버드에서 전쟁사회학(Social Analysis of War)을 공부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중앙아메리카의 상황을 목도하고 나서 조금 더 확실히 알고 싶어졌다. 그런데 내가 배우고 목격한 것의 결론은 이거다. 전쟁을 사회적으로 분석해보자면 결국 모든 것은 돈 때문이다. 종교? 신념? 그건 전쟁의 허울이지 진짜 이유가 아니다. 돈을 따라가보면 결국 문제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당신은 국제아동인권보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과 ‘국경없는 의사회’ 등을 위해 일해왔고, 아프리카 수단과 레바논 내전 등 문명의 그늘을 뷰파인더로 수호해왔다. 사진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언제나 확신하고 있는가. =당연하다. 이를테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서 일할 당시, 샌프란시스코 몇몇 동네의 치안과 거주문제는 정말로 끔찍한 상황이었다. 시당국조차 손을 대지 못했고, 그 동네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무서워했다. 하지만 나와 리포터는 그 동네의 상황을 찍고 취재해 기사를 썼고, 그 스토리가 <뉴욕타임스>의 에디토리얼에 실리면서 치안과 시민들의 거주 상황에 대한 정책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이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구나. 정말 대단한 이야기다. =나는 내 본능을 믿는다. 가야 할 장소가 있다면 가면 한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베이루트로 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표를 사고, 비행기에 오르고,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 원하는 장소로 가서, 그리고 하루 이상 견뎌내는 거다. 그냥 마음을 편하게 먹은 뒤 두뇌와 몸을 열어버리면 된다.

-전쟁과 같은 현실을 찍을 때와 엔터테인먼트 현장을 찍을 때 사진가로서 느끼는 기분은 꽤 다르지 않나. =어떤 점에서는. 하지만 비슷하기도 하다. 에미넴의 첫 주연작인 <8마일>의 스틸작가로 참여했을 때는 마치 베이루트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웃음)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가사를 혼자서 쓰곤 했는데, 나는 주위에 슬쩍 다가가 몰래 사진을 찍어야 했다. 아주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동시에 한손은 주머니에 넣고서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마침내 포스터컷을 건졌군!”이라며 환호했다.

-사진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충고는 무엇인가. =니가 아끼는 대상을 먼저 찍기 시작해라. 이를테면 가족 구성원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즐겨라. 네가 하는 일을 진정으로 좋아해야만 점점 나아질 수 있다. 그리고 사진뿐만 아니라 다른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보도록 해라. 한 가지 분야에만 온통 매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최근 세잔 같은 인상주의 작가들의 그림을 자주 들여다보곤 한다. 그런 역사적 예술품들은 당신을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로 데려갈 수 있다. 또한 언제나 사진을 찍어라.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된 지금에 와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하는 데 대한 변명거리는 더이상 없다. 그리고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항상 하는 충고가 있다. 네가 만약 아침형 인간이면 새벽 2시에 거리로 나가서 사진을 찍고, 네가 야행성 인간이면 아침 5시에 일어나서 거리로 나가라. 평소에 네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찍어보아야 한다. 그러면 지금껏 해온 일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작가란 그런 거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시차 적응 상관없이 곧바로 일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적응해라.

-당신은 매그넘의 첫 번째 흑인 사진작가다. 당신에게 이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겠지. =처음 매그넘 소속이 되었을 때 사진계 사람들 사이에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다. 아니. 그들이 놀란 이유는 내가 첫 번째 흑인 매그넘 사진작가여서가 아니라 매그넘의 첫 번째 신문기자 출신 사진작가이기 때문이다. 그게 매그넘의 역사에서는 더 큰 사건이었다. (웃음)

-언제나 매그넘의 멤버가 되기를 바랐나. =매그넘에 들어가기 위해서 계획을 세웠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매그넘은 중미에서의 내 작업물들이 흥미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받아들인 것이다. 처음엔 매그넘으로 오라기에 딱 하루만 고민을 더 해보겠다고 말했고, 다음날 가기로 결정내렸다. 한번도 매그넘 일원이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놀랄 만한 일이었다.

-삶이란 게 언제나 그처럼 기회와 우연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찬스(Chance)라고 부르잖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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