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6일부터 16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서
“당신이 신선한 공기를 원한다면 여기에서는 찾지 말아요.” 존 휴스턴의 <아스팔트 정글>(1950)에서 변호사 에머리히가 자기 부인에게 하는 이 유명한 대사는 그 자체로 필름 누아르의 ‘공기’를 간명하게 일러준다. 불안, 부패, 타락, 욕망의 기운이 짙게 깔려 있는 곳이 그 영화들의 세계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40년대와 1950년대의 필름 누아르가 바로 그런 흐릿한 공기 속에서 혹은 그 덕택에 시선과 형식 면에서 이전까지의 할리우드산 영화들로부터 멀리 나아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2월6일부터 16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열리는 ‘필름 누아르 걸작선’은 ‘불안의 향취’ 가득한 필름 누아르의 매혹적인 세계로 안내하는 자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선 필름 누아르의 원형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제 더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남았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사의 고전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년, 119분)은 일차적으로는 영화적 표현의 수준에 혁신을 가져온 영화로 거론되지만 필름 누아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영화로도 평가받는다. 비록 이 영화에 범죄의 요소는 빠져 있었지만 여기서 쓰인 구도와 조명은 분명 필름 누아르의 시각적 매뉴얼을 만들어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미로와도 같은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 역시 이어서 나올 어두운 영화들에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에드워드 드미트릭의 <안녕, 내 사랑>(Murder My Sweet, 1944년, 95분)은 필름 누아르의 또 다른 원형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영화다. 영화는 인물, 동기, 플롯, 스타일 면에서 필름 누아르의 전형이라고 할 요소들을 활용해 부패와 타락이 들끓는 암울한 세계를 어둡지만 아름답게 그려낸다. 이것은 드미트릭이 레이먼드 챈들러의 원작에서 배어 나오는 기운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려 시도해 나온 산물이었다. 험프리 보가트가 그려낸 것에 비해 연약한 면이 있는 이 영화 속의 필립 말로우에 대해 챈들러도 자기가 생각한 바에 가장 근접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1940년대 초반에 시작된 ‘사이클’로서의 필름 누아르는 대략 1950년대 중반에 이르면 그 종착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 발걸음은 절망의 폭발 지점을 향해 고통스럽게 뛰는 것과 비슷했다. 로버트 알드리치의 <키스 미 데들리>(Kiss Me Deadly, 1955년, 106분)는 폴 슈레이더가 “필름 누아르 시대의 정수”라고 했던 바로 그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첫 시퀀스부터 이미 숨차게 만드는 이 영화는 폭력과 스피드를 주요 원동력으로 삼아 마지막까지 그야말로 쉼없이 달려나간다. 그리고는 이 세계가 얼마나 우리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장르의 폭발을 경험케 해준다. 한편으로 쇼비즈니스 세계를 그린 알렉산더 매켄드릭의 <성공의 달콤한 향기>(Sweet Smell of Success, 1957년, 96분) 역시 50년대의 냉소적인 걸작 필름 누아르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이 밖에 리타 헤이워스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길다>(Gilda, 찰스 비더 감독, 1946년, 110분), 라울 월시의 박진감 넘치는 ‘누아르 웨스턴’ <추적>(Pursed, 1947년, 101분), 줄스 다신의 생동감있는 ‘다큐 누아르’ <네이키드 시티>(The Naked City, 1948년, 96분) 등의 상영작들은 필름 누아르가 가진 매혹의 꽤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