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사토시(야마자키 마사요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 료지는 서른을 눈앞에 둔 히사토시에게 “언제까지 아버지와 단둘이 살 거냐”며, 좋은 처자가 있으니 이 참에 선을 보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둔 히사토시는 볼일없다고 잡아뗀다. 책임지지 못할 감정을 누군가에게 안기기 싫은 히사토시. 다른 사람과 결혼한 뒤 고향을 떠났던 첫사랑이 돌아와도 그런 그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히사토시의 사진관에 임시 초등학교 교사 유키코(세키 메구미)가 찾아든다. 장례식에 다녀온 뒤 심신이 지친 히사토시는 사진인화를 급히 부탁하는 그녀에게 짜증을 내고,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를 아주, 조금씩 알아간다. 죽음을 앞두고 찾아든 사랑은 죽음을 기다리며 생의 흔적을 지워가던 히사토시를 혼란에 빠트린다.
제목에서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는 허진호 감독의 동명 영화가 원작이다. 지난해 <어둠속의 심장박동>이라는 영화를 들고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나카사키 슌이치 감독은 “한류 열풍 때문에 기획된 영화다. 보면 알겠지만, 스토리나 분위기 모두 원작에 충실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날아든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정밀 모사라도 하듯이 원작의 설정들을 고스란히 옮겨낸다. 한석규가 연기한 원작의 정원처럼 히사토시는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고, 누나(영화에선 동생이다)와 마루에 앉아 함께 수박씨 뱉기를 하고, 만취한 상태에서 친구와 노상방뇨를 하고,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일러준다. 유키코 또한 원작의 다림과 직업은 다르지만, 다림만큼 씩씩하고 활달하다. 연정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까지 똑 닮았다.
“원작에선 죽음을 공포스런 상황으로 본다. 반면에 난 생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부드럽게 가져가고 싶었다.” 단지, 감독의 바람으로 그친 것일까. 히사토시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원이 그러했듯이, 히사토시 또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꺽꺽 운다. 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일본산 <8월의 크리스마스>가 관객에게 더 친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친절함이 긍정적이진 않다. 원작의 마지막에서 다림은 정원의 부재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반면, 유키코는 히사토시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결국 받아보고야 만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서성거리던 이들의 발걸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던 원작의 공명은 그만큼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