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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탈리아의 채플린, 노래로 환생하다

사후 40년 만에 영화인 토토의 노래 수록한 음반 발견돼

40여년 전 타계한 토토가 처음으로 부른 노래 두곡을 수록한 음반이 빛 속으로 나왔다. 1940년 컬럼비아가 제작한 것으로 이 귀한 음반을 찾은 이는 로마의 개인 수집가인 코랄도 비텔리다. 이 음반은 그동안 흔적조차 없어서 완전하게 잊혀져 있었던 것으로 최근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토토의 딸인 릴리아 데 쿠르티스는 “이 음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우리 아버지는 항상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했다”고 말했다. 음반에 수록된 두곡은 프라냐 케루비니가 쓴 <마주르카 델 벤탄니>와 라 콰드릴리아 디 파밀리아의 노래를 토토가 부른 것으로 그의 세 번째 영화인 <산 조반니 데콜라토>에 삽입된 곡들이다.

본명인 안토니오 데 쿠르티스보다 토토(1898∼1967)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토토는 나폴리에서 태어나 2차대전 이후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코믹 배우와 연극 제작자로 활동했으며 1928년부터 1956년까지 공연한 연극만 50여편에 이른다. 토토컴퍼니를 만들면서 적극적으로 연극에 몰두한 토토는 이탈리아에 전위공연(아반스펙타콜로)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토토는 전쟁 전후의 어두운 세계상을 희극화하며 관객의 배고픔을 웃음으로 달랜 배우다. 입에서 입으로 그의 활약이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토토는 영화와도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37년 <손을 멈춰>(Fermo con le mani)를 시작으로 68년까지 100여편의 영화에 연기자, 제작자, 감독으로 이름을 남긴 그는 독백에 가까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연기로도 유명하다. 토토는 50년부터 60년 말까지 황금기를 누린다. <나폴리의 황금>(l’oro di Napoli, 1954), <나쁜 여자>(Toto, Peppino e… la malafemmina, 1956), <흔한 이름없는 사람들>(I soliti ignoti, 1958), <두 사령관>(I due marescialli, 1961), <나쁜 새와 작은 새>(Uccellacci e uccellini, 1966) 등의 영화는 토토를 최고 배우에 올려놓았다. 이외에도 영화 속에 삽입되는 노래 40여편을 직접 작사, 작곡하기도 했는데 최근에 발견된 음반은 그가 처음으로 부른 노래들을 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에는 찰리 채플린이 있고 이탈리아에는 토토가 있다고 할 정도로 이탈리아의 코믹 배우로서 전성기를 누린 그는 유명인이었지만 유명인답지 않은 것으로 더 유명했다. 50년대 이탈리아는 가톨릭 정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다. 토토의 강한 반사회성과 대중성은 그를 위험인물로 낙인찍히게 했고 10여년 동안 TV에 출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대단히 수다스러웠던 토토는 67년 눈을 감으며 이런 말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나는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때에 다다랐다. 그런데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촉망받는 배우가 될 수도 있었다. 100여편의 영화를 했지만 5편의 영화조차도 가치가 있을까 말까 하다. 촉망받는 배우가 되었더라도 뭐가 변했을까? 우리 배우는 잡담을 파는 사람들이다. 목수는 우리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적어도 목수가 제작한 책상은 목수보다 더 많은 삶을 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