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스’(bobos)는 ‘부르주아’(bourgeois)와 ‘보헤미안’(bohemian)의 스펠링에서 각각 ‘bo’를 하나씩 떼어 몇년 전에 태어난 족이다. 가수 르노는 최신 곡에서 정신지체 대학생 차림의 이 부유한 족속들을 조롱했다. 노래 속에서 그들은 일본 식당을 드나들고 “한국영화를 좋아하지”라고 한다. 광고나 커뮤니케이션에 종사하고 갤러리와 고급 바를 드나드는 이 부류를 뛰어넘어 한국영화를 알리려는 모든 시도는 사실 대부분 실패했다. 가장 최근의 예로 <괴물>을 들 수 있다.
모든 것은 칸영화제의 열렬한 환영으로 시작됐다. 따라서 사람들은 기술적으로 눈부시고 오락거리로도 뛰어난 이 지적인 영화의 밝은 미래를 점쳐볼 수 있었다. 6개월 뒤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대적으로 잘 진행된 홍보전략에 힘입어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아시아영화로선 엄청난 조합인 250개관에서 개봉됐다. 보보스족을 벗어나기 위해 몇개 관에서는 불어 더빙판도 볼 수 있게 했다. 더빙판은 또한 <쏘우3>와 뤽 베송 감독의 블록버스터 <아더와 미니모이>와 어깨를 맞대고 파리 동쪽의 대형 영화관 렉스에서도 개봉됐다. 예컨대 <괴물>은 헤비급으로 분류됐다. 그런데 첫 라운드부터 전광석화 같은 어퍼컷이 작렬했고, 보름 뒤에는 객석점유율이 겨우 30%에 불과했다. 상위 10위에도 못 든 채 <괴물>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스크린 수를 차지한 <섹시 댄스> 다음에 가까스로 올랐다.
한국영화로 프랑스에서 대중적 성공을 거둬보려다가 실패한 작품으론 <괴물>이 처음은 아니었다. <장화, 홍련> <올드보이> 등과 같은 다른 작품들도 헤쳐나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운명이 한국에 대해서만 가혹하다 볼 수도 없다. (<화양연화>나 <포켓몬> 같은) 몇편의 예외를 빼고는 아시아영화가 보보스족 동네를 벗어나는 일은 드물다. 프랑스 관객에게 알려진 어떤 스타도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 상위권에 진입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얘기할 수도 있고, 영어제목 때문에 대중이 작품 정체성을 알아보기 힘들다고 아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점은 다른 곳에 있다.
<괴물>이 개봉되던 날, <올드보이>를 소개하기 위해 파리 근교의 중산층 위성도시에 초대받아서 갔다. 불이 다시 켜졌을 때 400석 가운데 3명의 자리만 차 있었다. 행사 기획자 두명과 본인. 프랑스 제작자 필립 카르카손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한국에서 <올드보이>가 흥행에 성공한 것에 놀랐다. 그가 무척 높이 평가한 이 작품은 시나리오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연출, 조명 같은 ‘영화언어’적 측면에서 매우 복잡해 보였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배급업자가 아닌 영화 제작자가 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 ‘영화언어’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프랑스 관객에게 대중적으로 이해되기 위해 불어로 더빙하는 것 갖곤 부족할 일이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관객이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모여들지 않는다고 놀라기 전에, 과연 몇편의 프랑스영화가 한국 관객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지 자문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올드보이>와 마찬가지로 <괴물>도 DVD 판매와 대여 덕에 손익분기점을 잘 맞출 것이다. 내년 보보스족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발견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