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예술로 할까, 오락으로 할까?
2001-09-26

[추석영화] 방콕파를 위한 영화 릴레이 (2)

반칙왕

1999년, 감독 김지운 출연 송강호 <SBS> 10월2일(화) 밤 11시 ‘코믹잔혹극’을 표방한 장편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을 만든 김지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은행원과 레슬러, 이 두 가지 상반되는 삶을 사는 어느 남성의 이야기를 블랙코미디로 포장하고 있다. 소심한 은행원 임대호는 실적도 저조하고 일에 통 적응하질 못한다. 부지점장은 그에게 ‘헤드록’을 비롯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괴롭히곤 한다. 우연한 기회에 레슬링을 배우겠다고 결심한 대호는 관장의 딸에게 훈련받기 시작한다. 부지점장의 횡포는 점차 심해지고 직장 동료는 그 와중에 퇴출당하고 만다. 링 위에서 최고의 레슬러가 되고 싶은 대호는 더욱 열심히 연습에 몰두하고 드디어 무대에 오르는 기회를 잡는다.

<반칙왕>은 캐릭터의 묘미를 극대화한 코미디영화다. 영화에서 레슬러가 된 대호는 똥침과 밀가루 공격, 그리고 포크로 상대방을 찍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칙을 일삼는다. 슬랩스틱과 말장난 같은 대사의 재미를 함께 살리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이렇듯 다양한 영화적 재미를 살려내면서 <반칙왕>은 결국 어느 샐러리맨의 일탈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한국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유쾌한 고찰을 펼쳐보인다. 겉으로는 엄숙하게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내면 폭력과 유치함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에 관한 냉소적인 스케치인 셈이다. 김지운 감독은 “<조용한 가족>은 그 절묘함 때문에 웃지 않고 못 배기는 그런 상황을 가져온 시추에이션 드라마의 성격이 강했다. <반칙왕>의 모티브는 여자 앞에서 복면 쓰고 사랑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의 매력이다. 그가 보여주는 따뜻함, 뭔가 몸부림치는 안간힘 등 캐릭터를 쫓아가다보니 시각 자체가 전작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말한다.스위티

Sweetie 1989년, 감독 제인 캠피온 출연 캐런 콜스턴 <EBS> 10월6일(토) 밤 10시 “대부분의 영화에서 사람들은 영화 속 장면을 실제라고 믿질 않는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스위티>는 특이한 여성영화다. 이 영화에 나오는 가족들은 정상적인 구석이라곤 좀처럼 보이질 않고, 자매지간도 그리 평온하지만은 않다. 심지어 한 여성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평화를 되찾는 충격적인 결말을 지니기까지 한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감독의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문 작업인 <스위티>는 마치 기존의 가족영화와 여성영화의 범주에서 멀리 도주하고자 만든 작업처럼 비치기도 한다. 케이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어느날 이마에 물음표가 있는 남자를 만날 거란 점쟁이의 말을 듣는다. 앞머리를 물음표 모양으로 늘어뜰인 루이스를 만난 케이는 그를 유혹해서 자신의 남자로 만든다. 이미 여자친구가 있는 몸이지만 케이에게 그런 사실은 별로 중요치 않다. 동거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케이와 루이스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진다. 제멋대로인 성격의 언니 스위티가 나타나자 케이의 삶은 더욱 혼란스럽게 변한다. 게다가 어렸을 적 스위티만을 편애했던 아버지가 방문하자 스위티의 지나친 행동은 도를 더해가고 가족들은 스트레스를 감수하게 된다. <스위티>는 매끈한 장편영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서사는 때로 덜컥거리고 흑백화면의 도입이라든가 내거티브 화면 등 실험적인 기법도 간혹 눈에 띈다. 스위티라는 엽기적인 언니, 그리고 케이라는 인물을 통해 제인 캠피온 감독은 여성들의 ‘모호함’이라는 특성에서 신화적 기운을 삭제해버린다. 모순과 불안정한 기운을 내뿜으면서도 하나의 완결적인 구조를 지향하는 여성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이같은 여성 내면을 향한 영화적 여정은 차기작 <내 책상 위의 천사>(1990)으로 이어진다.

앱솔루트 파워

Absolute Power 1997년,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SBS> 10월7일(일) 밤 10시50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국영화에서 신화적 존재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막강한 스타 이미지, 제작자 겸 감독으로서의 통찰력이 스며 있는 작품을 중단없이 만들고 있는 거다. 일본의 평론가 스즈키 사토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 극히 간략하게, 그러면서 핵심적인 사항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결코 강함을 맹목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약함이나 악의 가능성을 내부에 지니고, 절실한 공포감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를 응시하는 윤리적인 작가”라고 말이다. <앱솔루트 파워>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을 맡은 영화치곤 장르적인 재미가 골고루 배어 있다. 이 영화는 미국사회의 치부를 건드리는 정치스릴러물이자 특유의 느린 호흡을 자랑하는 감독의 인장이 찍혀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루터는 상류층만을 표적으로 하는 도둑이다. 어느날 그는 정계의 실력자인 설리번의 집에 잠입해 들어간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설리번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밀회를 갖는 장면을 목격한다. 문제는 상대가 바로 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 현장에선 변태적인 행위가 행해지고, 심지어 살인까지 벌어진다. 현장을 빠져나온 루터는 TV에 나온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혐오감을 느껴 직접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앱솔루트 파워>는 히치콕 영화를 연상케 하는 스릴러물이지만 조금 특이하다. 현직 대통령의 사적 범죄를 추적해가는 도둑의 이야기를 지극히 정감있게 풀어가고 있다. 정치인들의 추악한 범죄에 관한 언급도 흥미롭지만, 부녀 사이의 에피소드가 특별한 매력을 발산한다. 범죄자인 아버지와 그의 애정을 거의 받아보지 못한 딸의 서먹한 관계가 그것.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영화에 대해 “스릴러영화를 단순한 스릴로서 채우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는데 생기있는 캐릭터, 그리고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들 대사에 배어 있는 유머와 시정(詩情)을 유심히 살필 만하다.중앙역

Central Do Brasil 1998년, 감독 월터 살레스 출연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MBC> 10월7일(일) 밤 12시25분 참 이상한 일이다. 기실 <중앙역>의 드라마는 너무나 진부한 종류의 것이며 <엄마찾아 삼만리>의 모티브를 그대로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가 뭘까? 아마도 <중앙역>이 아버지를 찾는 아이의 드라마일 뿐 아니라, 어느 냉정한 ‘독신녀’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라라는 여성은 남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을 하지만, 편지를 제대로 부치진 않는다. 글씨를 모르는 사람들이 제각기 그녀 주변에 몰려들어 눈물겨운 사연을 털어놓지만, 막상 도라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 돈을 받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 편지를 북북 찢어버리곤 한다. 그러던 그녀 생활에 변화가 생긴다. 얼결에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조슈에라는 소년이 도라 곁을 맴돌면서. 처음에 이 나이먹은 독신녀는 아이를 입양원에 팔아버릴까 고민하지만 어느새 둘은 가까운 친구가 되어버린다. <중앙역>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여럿 지닌 영화다. 감독인 월터 살레스는 아역배우를 우연한 기회에 발탁했는데 원래 공항에서 구두닦이를 하던 소년이었던 것. 최근 브라질영화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라고 할 만한 <중앙역>은 비전문배우의 기용이나 휴머니즘의 주제 등에서 브라질 시네마누보의 적자라고 평할 만하다. 영화에선 몇몇 ‘마법’과도 같은 장면이 있다. 브라질 도시의 풍경이라든가 도라가 어느 운전사에게 순간적으로 연모의 정을 느끼지만, 차갑게 거절당하는 장면이 그렇다. <중앙역>은 평이한 로드무비이지만 보는 이에게 ‘공감’의 공간을 선뜻 제공하는 드문 영화이기도 하다. 나이먹고 마음에 묵은 먼지만 쌓인 여성이 차츰 따스한 애정에 눈떠가면서 아이와 심정적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영화는 관조적이면서 형제애를 담은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추석영화] 방콕파를 위한 영화 릴레이 (1)

▶ [추석영화] 방콕파를 위한 영화 릴레이 (2)

▶ [추석영화] 방콕파를 위한 영화 릴레이 (3)

▶ [추석영화] 방콕파를 위한 영화 릴레이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