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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마르코 벨로키오의 영화세계와 <굿모닝, 나잇>

자유를 염원하는 사형수들의 노래

이탈리아 영화계는 60년대 들어 두명의 ‘천재감독’을 동시에 배출하는 호사를 누린다. 불과 23살의 나이로 <혁명전야>(1964)를 만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바로 1년 뒤 26살의 나이로 데뷔작 <주머니 속의 주먹>을 발표한 마르코 벨로키오가 그 장본인들이다. 두 사람 모두 당시 유럽의 들끓었던 사회변혁 열기를 대변하는 좌파 경향의 젊은이들이었다.

두 젊은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60년대 정치영화의 수작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들이 데뷔할 때, 선배 격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마르코 페레리 등이 이데올로기적 주제가 강한 사회비판영화들을 발표하며 이탈리아 영화계의 좌파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는데, 두 젊은이는 그런 전통을 계속 이어갈 인재들로 인식됐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방송은 우파가, 그리고 영화는 좌파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는 전례를 남겼고, 이는 지금도 이 나라의 문화전통으로 남아 있다.

정치적 리얼리즘을 고집한 작가

베르톨루치가 <순응주의자>(1970), <거미의 계략>(1970) 등을 발표하며 보수우파의 억압과 허위를 비판했다면, 벨로키오는 <아버지의 이름으로>(1971), <괴물을 1면에 실어라>(1972) 등을 발표하며, 그런 우파의 이데올로기가 형성되는 과정에 더욱 주목했다. 다시 말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통용되는 가치관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성되고 재생산되는지 세밀하게 관찰하는 식이다.

아마 알튀세르가 살아 있다면, 자신이 주장했던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성격을 추적하는 영화로 벨로키오의 작품들에 큰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우리의 가치관을 재생산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고 불리는 가족, 학교, 교회 등인데 벨로키오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런 제도 속의 인간관계를 질문해왔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배타적인 관계 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거의 차단된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존재의 모순에 빠지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런 공간의 상징은 가족이다. 그의 정치영화가 특별히 ‘가족 정치드라마’라고 불리는 까닭도, 바로 그의 영화에 가족관계가 표나는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68년 이후 베르톨루치는 정치적 테마에서 한발 벗어나, 에로티시즘과 정치를 뒤섞는 센세이셔널한 작품들로 자신의 작품 방향을 바꾸었다. 반면에 벨로키오는 여전히 정치적 색깔이 강렬한 작품들에 집착했다. 68년 이후 유럽에서는 이미 ‘잔치는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는데, 계속해서 정치적 리얼리즘에 주목한 벨로키오는 교조적인 인물로 비치기 쉬웠다. 벨로키오는 이런 전투적인 좌편향 성향 때문에 외국에서는 더욱더 무명으로 남았다. 1987년 베르톨루치가 좌파적 시각에서 보자면 변절에 가까운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인 스타 감독으로 부상할 때, 벨로키오는 이념에 집착하는 한물간 고집쟁이처럼 비치기도 했다. 바야흐로 두 경쟁자의 승부는 한쪽으로 아주 유리하게 진행됐던 것이다.

유럽 영화계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던 벨로키오가 다시 재발견된 데는, 프랑스 영화인들의 관심이 큰 구실을 했다. 1997년 칸영화제는 <홈부르크의 왕자>를 경쟁부문에 초대, 이탈리아 본국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던 노감독의 건재를 다시 전세계에 알렸다. 딱딱한 정치영화일 것으로 짐작한 영화인들은 벨로키오가 보여준 꿈과 몽유병에 관한 경쾌한 역사 코미디물을 보고 노장의 능란한 솜씨와 품위에 다시 매력을 느끼게 된다. 칸영화제쪽은 이 작품에 이어 연속해서 두 작품을 다시 경쟁부문에 초대한다. 90년대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표주자는 틀림없이 난니 모레티인데, 이때의 분위기로 보자면 이탈리아의 진정한 ‘작가’ 감독은 단연 마르코 벨로키오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 작품은 <유모>(1999)와 <종교시간>(2002)이다.

공산당 당수 베르링게르의 영화 속 모습

모순의 상처를 드러내는 인물 키아라

알도 모로의 영화 속 모습

<굿모닝, 나잇>이 진정성을 확보한 이유

특히 <종교시간>은 죽은 어머니가 바티칸에 의해 성녀로 추대되는 과정을 놓고, 그 가족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가치관의 모순을 마치 명상하는 종교화처럼 묘사해 벨로키오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에 접근한 작품으로 종종 해석됐다. 다시 돌아온 노장의 발걸음은 더욱 당당해졌고, 또 그를 기다리는 이탈리아 관객의 마음도 자긍심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작품으로 발표된 게 바로 <굿모닝, 나잇>(2003)이다. 제작단계부터 다루는 내용 때문에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이탈리아인들이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어하는 70년대 테러리즘의 대표적인 사건인 알도 모로 전 총리의 납치와 살인에 관한 이야기다.

아마 벨로키오가 좌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이 영화의 진정성을 믿지 못할 것이다. 당시 모로 전 총리를 죽인 인물들은, 별 모양으로 상징되는 극좌파 테러리스트 ‘붉은 여단’의 멤버였기 때문이다. 사건의 가해자가 어쨌든 좌파인데, 좌파의 대표적인 감독인 벨로키오가 그 사건을 다룬다고 하니 자기 성찰의 엄숙한 분위기마저 느끼게 된 것이다.

모로는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최초로 좌우합작의 연정을 이끌어낸 탁월한 협상가였다. 우파인 기독교민주당 리더인 그는 당시 엔리코 베르링게르가 이끄는 제2의 정당 이탈리아공산당에 권력의 일부를 양도하여 좌우가 함께 정부를 책임지는, 대단한 정치실험을 단행했다. 그래서 그는 노련한 정치가로 추앙받기도 했고, 동시에 우파로부터는 빨갱이와 놀아난 배신자로, 좌파로부터는 무산계급을 현혹하는 악마와 같은 존재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가 총리에서 물러나 기독교민주당의 리더로서만 활동하고 있을 때, 그는 납치됐고, 또 2개월 뒤 살해됐던 사건이 바로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이탈리아 영화계는 이런 민감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리얼리스트 감독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감독 본인이 그 시절을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남은 장본인이 아닌가. 그래서 벨로키오의 리얼리즘은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고, 요즘은 이런 감독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2001년의 뉴욕 사건 이후 세계의 관심은 테러리즘에 쏠려 있었는데, 모로 사건을 다루는 테러리즘 영화가 발표되어 이탈리아 좌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는 않았다. 좌파들은 붉은 여단과 자신들과의 관계를 시종일관 부정하지만, 시민들은 반드시 그렇게만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모로의 납치와 살해에 이르는 약 두달간에 한정돼 있다. 붉은 여단의 네 멤버 중 여성인 키아라(마야 산사)와 에르네스토(감독의 아들인 피에르 조르지오 벨로키오)는 부부로 가장하여 아파트를 하나 빌린다. 다른 두 멤버는 리더인 마리아노(루이지 로 카시오)와 행동대원 프리모(조반니 칼카뇨)이다. 1978년 3월16일 이들은 로마 시내에서 총격전을 벌인 끝에 5명의 경찰과 경호원을 살해하며 알도 모로 전 총리를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이름으로 부르주아의 상징인 전 총리를 납치했으며, 프롤레타리아의 재판에 따라 모로에겐 사형이 언도됐다. 이들은 자신들이 빌린 아파트에 밀실을 만들어 모로를 감금한다. 단, 감옥에 갇혀 있는 붉은 여단의 동료들을 석방한다면, 전 총리의 목숨도 협상 가능하다는 여지는 남겨둔다. 전세계의 자유국가가 경악했던 납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자신들의 신념에 갇힌 죄수들

자그마한 노인으로 나온 알도 모로(로베르토 헤를리츠카)가 화면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 이탈리아의 관객은 경악했다. 모습도 그렇지만, 분위기가 죽은 모로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바싹 마르고, 지적이며 예민하고 불안한 눈빛 등 과거의 그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한 배우였다.

납치범들은 여전히 그를 ‘총리’(이탈리아어 대사로는 ‘프레지덴테’인데 영어의 President에 해당하는 말로, 이탈리아에선 총리를 그렇게 부른다. 말 그대로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므로)로 부르고 예우하며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하나씩 공개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뭔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게, 이들 납치범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시민 대중에 의해 찬양받을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문, TV를 보니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거사’에 기뻐하지 않으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는 단체 하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이탈리아공산당 당수 베를링게르가 나와, 이들의 행동을 테러리즘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멍청한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대목에선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들기도 한다. 극단주의 좌파들은 베르링게르를 우파와 타협한 변절자라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좌파들은 그를 자신들의 친구이자 영웅으로 대접했다. 다시 말해, 좌파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베르링게르에게 비판받는다면 이들은 고립된 소영웅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인 것이다. 벨로키오의 인물들이 늘 그렇듯 붉은 여단 멤버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맹신하며, 불행하게도 타인의 다른 생각에는 별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테러리스트 리더인 마리아노는 “우리는 신념에 따라 항상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도 말한다. 모로는 “당신들 코뮤니스트들 이전에 기독교인들이 그랬지(신념에 따라 죽었지)”라고 답하며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감지한다.

신념에 의해 혹은 대의에 의해 자신들의 목표를 행동에 옮겼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음 한구석에선 모순의 갈등이 밀려오는 것으로 영화는 전환점을 맞는다. 그 모순의 상처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유일한 여성대원인 키아라다. 레지스탕스의 딸로, 그녀의 아버지도 극우 파시스트들에게 죽음의 공포에 늘 위협받으며 살았다. 아버지가 딸에게 읽어주던 책이 하나 있었는데, 파시스트들에게 사형선고를 받은 빨치산 대원들이 아내와 연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들이다.

붉은 여단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알도 모로도 아내에게 마지막이 될지 모를 편지를 쓰고 있고, 키아라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빨치산 활동을 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이 남긴 편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키아라는 모르긴 몰라도 그 슬픈 편지들을 읽으며 수없이 눈물을 흘렸을 테고, 우파 파시스트들의 잔인함과 완고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이 결과적으로는 과거의 파시스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느낄 때면 키아라는 환상을 보곤 한다. 흑백의 환상은 레닌 시절과 스탈린 시절의 민중의 모습, 그리고 바다 위에서 사형집행을 당하는 빨치산 대원들의 비참한 모습들로 이어진다. 핑크 플로이드의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연주에 맞춰 보여지는 잔인한 다큐멘터리풍 화면들은 붉은 여단의 행위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저들 파시스트들은 더욱더 악질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키아라는 자신의 행위에 자긍심을 느끼기는커녕 더욱더 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천부의 자유에 대한 염원

어쨌든 영화는 테러리스트의 입장에서 서술됐다. 이들은 명백히 한 정치가를 납치하고 살해했는데, 그들의 행위를 파시스트들의 원죄와 연결하여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파들이 불편해하는 점이 바로 여기다. 감독이 좌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폭력분자들에게 동정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감독은 붉은 여단의 신념을 완고한 어리석음이라고 (자기)비판을 하며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그럼에도 <굿모닝, 나잇>은 좌파의 시각에서 서술한 최고의 정치드라마로 남을 것 같다. 감독은 쉬쉬하며 감추고 있던 부끄러운 부분을 과감히 드러내어 자신들의 과거도 한때는 맹신주의로 치달을 때가 있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키아라의 눈물은 자기반성에서 나온 연민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녀의 환상 속에서, 죽은 알도 모로가 유령처럼 밀실에서 빠져나와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에 맞춰 발걸음도 가볍게 거리를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 모두의 ‘천부의 자유’에 대한 염원으로 해석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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