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애완쥐 로디(휴 잭맨)는 아쉬운 게 없다. 주인이 휴가를 떠난 뒤, 대형 평면TV를 독차지하고, 온갖 장난감들에 둘러싸여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하던 그에게 시궁창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시궁창쥐의 계략으로 변기에 빠지고 하수구를 통해 쥐들만의 지하세계 래트로폴리스에 도착한 로디는 우아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터프한 암컷쥐 리타(케이트 윈슬럿)를 만나고, 리타와 두꺼비 토드(이안 매켈런) 일당의 대결에 휘말리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더욱 큰 음모를 막으면서 로디는 자신이 미처 깨닫지도 못했던 결핍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일련의 소동극 끝에 그는 함께 살아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플러쉬>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성장극으로 정리될 수 있는 영화지만, 3D애니메이션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은 볼거리. 관객은 리타의 배 ‘제미 도저’호를 따라 하수구 곳곳을 누비며 수상액션의 주인공이 된다. <월래스와 그로밋> 등을 제작한 클레이애니메이션의 아드만 스튜디오와 <슈렉> 등으로 3D애니메이션의 신세계를 개척한 드림웍스가 손잡은 이 영화가 월래스와 그로밋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주인공을 3D로 부활시킨 가장 큰 이유 역시 클레이애니메이션으로는 불가능한 현란한 액션에 있었을 것이다. 물론 패러디는 기본. <플러쉬>는 <슈퍼맨> <니모를 찾아서> 등의 장면이나 대사를 끼워넣은 것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걸작의 매너 혹은 스타일의 패러디까지 선보인다. 온갖 재활용품으로 런던을 복사하여 래트로폴리스를 완성한 것은 LA를 옮겨놓은 <슈렉>의 ‘겁나먼 왕국’을 떠올리게 하고, 변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향한다는 설정과 인간이 사라진 뒤 애완동물 혹은 장난감의 세계를 묘사한 초반부는 각각 <니모를 찾아서>와 <토이 스토리> 등을 연상시킨다. 중요한 설정인 월드컵과 관련해서 끝내 ‘잉글랜드, 페널티킥으로 지다’ 같은 에필로그를 첨가하는 등 따뜻하게 냉소적인 영국식 유머로 성인 관객을 배려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결국 <플러쉬>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무난하게 조합한 영화로 완성됐지만 서로 다른 풍의 작품을 선보였던 애니메이션 명가의 결합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관객에게는 부족한 2%를 향한 아쉬움을 계속해서 환기시킬 것이다. <월래스와 그로밋>을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었던 ‘손맛’, 색다른 영국식 유머는 빛을 잃었고, <슈렉>을 채우고 있던 적나라한 풍자의 묘미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휴 잭맨, 이안 매켈런, 케이트 윈슬럿에 장 르노까지 끌어들인 화려한 목소리 출연진 각각의 매력을 영화 속 캐릭터와 연결시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한편 한국 개봉시 유명 배우의 목소리를 빌리는 최근 애니메이션의 경향을 따라, <플러쉬> 역시 정준호, 정웅인, 정운택, 김상중 등 <투사부일체>팀을 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