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감독에 대한 할리우드의 구애 공세가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 에이전시들은 지난 10월의 부산국제영화제와 아시안필름마켓을 기점으로 좀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펼치고 있다. 미국 최대 에이전시 중 하나이며 한국 강제규 감독과 이병헌의 소속사 CAA는 부산영화제 기간 중 켄 스토비츠 등 두명의 에이전트를 파견해 한국 감독들과 면담을 가졌다. 당시 김지운, 봉준호, 이재용 감독이 CAA 에이전트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지만 “CAA 에이전트들이 어떤 감독을 만났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는 박광수 아시안필름마켓 공동운영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이들과 접촉한 한국 감독은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만남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그들은 내가 CAA와 계약을 하고 할리우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원했다”면서 “차차기작인 <설국열차>의 미국 배우 캐스팅이나 영어 시나리오작가 찾는 일을 도와주겠다는 제의도 했다”고 밝혔다. 김지운 감독도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것을 할 생각인지 등의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실 이들 감독이 할리우드 에이전시와 접촉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을 끝낸 뒤 해외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은 <괴물>이 상영된 올해 칸영화제에서 이들과 만났다. 박찬욱 감독 또한 <올드보이> 이후 할리우드 에이전트의 제안을 받아왔다. 또 CAA와 쌍벽을 이루는 윌리엄 모리스나 ICM 같은 다른 할리우드 에이전시도 이들 감독과 수차례 접촉한 상태. 이들은 한국 감독들에게 현재도 정기적으로 시나리오나 원작 소설 등을 보내면서 꾸준히 할리우드로 손짓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할리우드 에이전시와의 계약에 대한 감독들의 반응은 소극적인 편이다. 박찬욱 감독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할리우드로 가서 작업할 만큼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몰라도 현재까지 그런 건 없었다”고 말한다. 김지운 감독도 “편집권 등이 보장된다면 진출할 생각이 있긴 하지만, 당분간은 아니다”라는 입장. 봉준호 감독 또한 “윌 스미스가 출연하는 프로젝트를 제안받기도 했는데 당장은 벌여놓은 프로젝트를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결국 당장의 현실성은 없어 보이지만 에이전시들의 한국 감독에 대한 지극정성을 고려하면, 한국 감독의 할리우드영화를 볼 날이 그리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