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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계수 감독의 <삼거리극장> 뮤지컬 코멘터리
정리 김현정 2006-11-22

‘우린 모두 밤의 유랑극단’, 노래로 주문을 걸어!

전계수 감독은 대학 다닐 때부터 가끔 시를 썼고, 김동기 음악감독은 거기에 곡을 붙여 노래를 했다고 한다. <삼거리극장>의 뮤지컬 장면들은 그처럼 오래된 호흡 때문인지 가사와 음악과 무대가 서로 떼어놓지 못할 천생연분으로 만난 듯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하나의 색으로 녹아드는 삼원색의 판처럼 정신없는 와중에 하나가 되어버린다. 발랄하거나 처연하거나 허풍에 찬 가사를 직접 쓴 전계수 감독에게 어쩌다 이런 마술 같은 장면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한곡 한곡 코멘트를 부탁했다.

<밤의 유랑극단>

“피로 물든 만월의 밤은 다시 찾아와/ 죽은 혼령들의 차가운 심장을 두드리는 시간 무엇을 망설이느냐 때가 가까웠느니라/ 오늘밤 상상도 못할 끔찍한 공연을 계속하자 우린 모두 밤의 유랑극단/ 희극을 노래하는 비극의 자식들”

원래 오프닝 곡은 따로 있었지만 비오는 밤에 야외 뮤지컬 장면을 찍기가 힘들어서 뺐다. <밤의 유랑극단>이 오프닝처럼 되어버렸는데, 위협적이면서도 뭔가 어긋나고 우스운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가사는 거창하지만 사실은 별로 하는 일도 없는 사람들 아닌가. (웃음) 무대는 이어지는 법정장면을 염두에 두고 고대 그리스 비극 무대처럼 만들었다. 신전 같고, 광원도 직접 드러나고, 이교도의 느낌도 조금 묻어나고. 바닥에 은화를 깔았어야 했는데, 제작비 때문에…. (웃음)

<더 라스트 프린세스>

“그는 거울처럼 슬퍼보였다네/ 말해봐요, 귀여운 아저씨 내게 원하는게 뭐죠?/ 그이는 정말 귀여웠어”

에리사는 진짜 조선의 마지막 공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더 라스트 프린세스>는 에리사가 생전에 유랑극단에서 부르던 레퍼토리였고, 그녀의 첫사랑 이야기처럼 들린다. 에리사는 위압적이고 자아도취에 빠진 인물이지만 이 노래로 그녀 뒤에 감춰진 순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 에리사라는 이름은 한국 이름 ‘애리사’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일라이자의 일본식 발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소단이는 캔디인 거다. (웃음)

<자봐라 춤을>

“외롭고 힘들 때/ 두 눈을 꼭 감아 눈을 감으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지 두려워하지도 마 슬퍼하지도 마/ 거기서 네모습을 발견해”

소단이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 혼령들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삼거리극장>은 원래 노래도 많았지만 노래마다 버전도 많았다. 그래서 화음이 맞지 않는 소단의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지금 <자봐라 춤을>보다 음악적으로 뛰어난 버전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상황을 겪고 있는 소단이 함께 춤도 추고 서툴지만 노래도 부르는 게 영화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모든 노래가 자기만 내세우면 영화가 누더기가 되지 않을까. 이 장면에서 염두에 두었던 음악은 에미르 쿠스투리차와 주로 작업했던 음악가 고란 브레고비치처럼 경쾌하고 난장판의 느낌이 나는, 집시풍 음악이었다.

<똥싸는 소리>

“이런 천하의 씨발놈을 봤나/ 이런 천하의 개새끼를 봤나 난 그새끼 자지를 걷어차고/ 유랑극단을 따라나섰지 너 지금 날 갖고 노는 거야/ 너 지금 날 갖고 노는 거야 사랑한다며 삽입할 때는 언제고”

<똥싸는 소리>는 완다가 자기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소단에게 혼령들이 왜 저승에 가지 못하고 극장을 떠도는지 힌트도 주는 노래다. 완다의 어처구니없는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강렬한 하드록을 쓰려고 했다. <헤드윅>에 나오는 <Tear Me Down> <Angry Inch>처럼. 배우들을 어떻게 꾸밀까가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는데 완다는 초고부터 존재했던 <똥싸는 소리>에 맞춰 컨셉이 결정된 셈이다. 배우마다 다른 스타일을 주고 컬러도 다르게 가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모스키토가 너무 <비틀쥬스>와 똑같아진 느낌이 있다. 캐릭터가 비슷해도 외모는 좀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웃음)

<정든 꿈>

“이제 빛나던 별들의 운도 다해/ 악몽은 현실로 다가와 바람이 불고 꽃잎이 떨어지고/ 누이가 죽고 사슴이 죽고 사라지네 잊혀지네/ 이세상 정들 데 없어 꿈에 정드네 꿈이 깊어 병도 깊어/ 매일밤 차디찬 구름 속에 잠드네”

<정든 꿈>은 <삼거리극장>에서 가장 이질적인 노래다. 영화가 이어온 리듬이 있는데 그걸 애수에 찬 느낌으로 한번에 죽여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 넣어야 할지 끝까지 고민했지만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나 스탭들이 남겨두자고 주장했다. 나도 혼령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간을 반복하며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한번쯤은 보여주고 싶었고.

<야만의 환영>

“극장은 저주 속에 침몰하고/ 내 운명도 그와 함께 끝이 나겠지 아무도 찾지 않는 꿈의 폐허/ 넋을 잃은 혼령들의 무덤 귀를 찢는 아우성만이/ 내 귓가에 가득해”

<야만의 환영>은 애초 <삼거리극장>의 토대가 되었던 데빌 돌 음악에 가장 가까운 노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우기남 사장은 <소머리 인간 미노수 대소동>을 상영하자는 소단의 청을 거부하지만, 사실 자신도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하고, 그렇게 사라져버릴 영화는 아니라고 믿고 있다. <야만의 환영>은 그 모순된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도 부르기 힘든 노래라 천호진 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 보컬의 볼륨감으로 치자면 아마 혼령으로 등장하는 뮤지컬 배우들보다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목마른, 목이 메는 듯한 창법이, 사장의 절실한 심정을 더 잘 표현해준 것 같다.

<삼거리극장>

“삼거리극장에서 살아가는/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 시체들의 파티/ 새롭게 열리는 환희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들/ 죽어도 죽지 않는”

<삼거리극장>은 주요 캐릭터들만 쇼를 벌이다가 처음으로 관객과 얽히면서 대소동이 일어나는 장면이다. 혼령들의 장난기를 펼쳐놓고 싶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을 보면 캐릭터들이 엽기적이면서도 귀엽고 활기찬 느낌을 주지 않나. 그런데 그걸 사람으로 하기가 어렵더라. (웃음) 영화에 삽입된 노래는 에리사가 외계어처럼 알아듣지 못할 말로 멋대로 부르는 가사로 바꿨다. 에리사 역의 박준면씨가 즉석에서 나오는 대로 불렀는데, 그게 에리사가 자기 먹고 싶은 음식 이름을 늘어놓았다는 설도 있고…. (웃음)

<내게로 와>

“내게로 와/ 내게로 와 검은 강을 거슬러/ 두개의 그림자를 끌고서 내가 여기 있어/ 내게 침을 뱉어 내가 날아갈 수 있도록/ 내게로 와”

소단 역의 김꽃비가 부른 <내게로 와>는 주문과도 같은 노래다. 저주받은 운명으로 봉인됐던 영화가 주술이 풀렸다가 다시 봉인되면서, 미노수를 불러들이기 위한 주문. 너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이젠 여기로 와라, 이런 다독거리는 느낌이 났으면 싶었다. 꼭 염두에 두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검은 강은 레테의 강처럼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이라고 생각했다. 소단과 우기남과 영화의 모든 캐릭터가 두개 이상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두개의 그림자를 끌고 이곳으로 돌아오라는 뜻이다.

<소머리 인간 미노수>

“미노수, 비극의 심장을 가졌네 미노수, 가난한 소녀를 사랑한 미노수, 공주와의 동침을 거부했네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오직 한사람, 아랫네 미노수, 한 소녀만을 사랑했네”

<소머리 인간 미노수>는 진혼곡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레고리안 성가의 멜로디를 참고했다. 미노수가 아랫네를 안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 흐르는 노래니까. 그래도 웃기는 가사는 있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미노수, 근대 농업을 위해 태어난” 같은. 나는 눈에 띄지 않더라도 모든 장면에 코믹한 긴장이 존재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노래 부르는 사람들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런지 관객이 아무도 웃지 않았다. 웃기는 가사가 맞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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