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영화, 투쟁, 그것이 우리의 미래다!” 영화를 횃불 삼아 노동운동의 내일을 밝히려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가 올해로 열돌을 맞았다. 1997년 초겨울 서울국제노동미디어 행사의 부대행사로 출발한 서울국제노동영화제는 노동영화를 즐기려는 일반 관객은 물론 카메라를 통해 노동현장을 기록하는 미디어운동가를 위한 축제의 장으로 성장했다. 11월16일부터 19일까지 고려대학교 4·18기념관에서 열리는 이번 영화제는 11개국 노동자들의 피땀이 어린 28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 영화제 홈페이지(www.lnp89.org/10th) 메뉴인 ‘이 동지가 궁금하다’의 운영에서도 알 수 있듯, 올해는 미디어운동가들의 활동에 주목하는 것이 특징이다. 5개 섹션으로 나뉜 전체 상영작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 역시 노동자영상패의 영상물로 꾸려진 제3섹션. KTX 여승무원을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세계를 담은 제3섹션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청사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10주년을 기념해 제1섹션에선 지금까지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 중 반향이 컸던 9편의 앙코르작을 골라 선사한다. 영국 리버풀에서 항만노동자들이 벌였던 외롭고도 치열한 싸움을 다룬 켄 로치 감독의 <명멸하는 불빛>, <감량경영>의 출간 이후 순회 강연을 펼치는 감독 자신의 행적을 추적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빅원>, 미국 7대 기업으로 꼽히던 엔론의 파산을 소재로 한 알렉스 기브니 감독의 <엔론: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등은 영국, 미국, 캐나다를 포함해 전세계 노동자들이 이끈 투쟁의 증거다. 특히 킴 바틀리, 돈챠 오브리에인 감독의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베네수엘라 위고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한 쿠데타와 그의 정권 재탈환 과정을 좇는 문제작. 대통령의 귀환을 요구하는 열성적인 함성과 함께 상업방송의 미디어 플레이를 숨가쁘게 배치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해외신작을 소개하는 제2섹션에는 이라크 노동자들의 반미운동을 담은 오사무 기무라 감독의 <나아가라!>, 멕시코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의 고통을 내세운 사울 란도, 소니아 아우굴로 감독의 <마킬라도라: 두 개의 멕시코 이야기>, 노조활동가들의 평탄치 않은 일상을 그린 실비아 마리아 호요스 감독의 <죽음의 위협: 콜롬비아 노조활동가들의 삶> 등 6편이 포함됐다. 영국 국철의 민영화 반대 움직임을 다룬 <철도는 민영화에 저항한다>는 철도 민영화를 추진 중인 우리나라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운 한편, 베네수엘라의 다섯 공장에 초점을 맞춘 <5개 공장: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의 공장자주관리>는 반복적으로 들리는 “노동자 참가”(co-management), “협력”(cooperation) 같은 단어처럼 노동자가 중심이 된 새로운 형식의 노동활동을 펼쳐 보인다.
한국 노동운동의 실정을 보고하는 영상물들은 제3섹션, 제4섹션, 그리고 제5섹션에 담겼다. 거리로 나앉은 KTX 여승무원들의 모습을 찍은 <우리는 KTX 승무원입니다>를 선두로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1년6개월간 뒤쫓은 <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기> 등 제3섹션에 포함된 6편은 노동자들이 직접 촬영한 영상물로 하나같이 열렬한 음성이 엿보인다. 한편 <21세기>는 ‘위대한 투쟁이 여기서 시작됐다’는 마지막 자막처럼 방글라데시 의류사업 노동자들의 암울한 삶을 비추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유일한 외국작. 제4섹션의 <정종태> <우리 하자> 등은 영화제 주최쪽인 노동자뉴스제작단에서 만든 작품들이다. 특히 <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는 한동안 논란이 됐던 삼성의 노동자 위치 추적 문제를 과감하게 건드려 눈에 띈다. 전문 다큐멘터리 작업자들의 작품을 품은 제5섹션은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질긴 투쟁담인 지혜 감독의 <얼굴들>을 비롯, 3편을 상영한다.
이번 서울국제노동영화제는 같은 기간 광주의 광주국립박물관 소강당, 울산의 삼산 전교조교육관에서도 동시에 진행된다. RTV와 함께한 노동자뉴스제작단 이야기 <노동자 노동자> 등은 각종 케이블방송을 통해 선사될 예정.